[김병철 인물탐구] 김보라 안성시장이 걸어온 길…그 시작에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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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인물탐구] 김보라 안성시장이 걸어온 길…그 시작에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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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에스더의 의료·김만덕의 나눔에서 바라본 삶의 궤적
-간호학도에서 의료생협 활동가·도의원·시장까지…직함보다 먼저 있었던 사람과 공동체
김보라 안성시장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정치인의 삶을 선거와 직책만으로 정리하면 정작 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몇 번 당선됐고 어떤 자리를 거쳤는지는 기록으로 남지만, 무엇을 보고 그 길에 들어섰으며 어떤 사람들과 부딪치며 생각을 키웠는지는 이력서 몇 줄로 설명하기 어렵다. 김보라 안성시장의 지난 시간을 들여다볼 때도 현재의 시장이라는 직함보다 그 이전, 정치인이 되기 전의 시간을 먼저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보라의 시작에는 시장실도, 도의회도, 정당도 없었다. 간호학을 공부하던 젊은이가 있었고, 봉사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안성의 농촌마을과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 시절 시작된 안성과의 인연은 졸업 이후 삶의 터전으로 이어졌고, 1994년에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만든 의료생활협동조합 창립에도 참여했다.

정치를 하기 위해 안성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살아가다 보니 안성이 자신의 동네가 됐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이웃이 됐으며,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면서 삶의 뿌리를 내렸다. 정치라는 길은 그보다 훨씬 뒤에 찾아왔다.

이런 김보라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여성의 삶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의학 의사로 평가받는 박에스더와 조선 후기 제주에서 상업으로 얻은 재산을 흉년 속 백성을 위해 내놓았던 김만덕이다.

두 사람을 오늘의 김보라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시대도, 환경도, 삶의 조건도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을 현재 정치인의 이미지에 맞춰 끌어오면 인물탐구는 쉽게 미화로 흐를 수 있다. 다만 박에스더와 김만덕의 삶을 통해 김보라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여기까지 왔는지를 바라볼 두 가지 질문은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다.

박에스더로 알려진 김점동은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조차 충분하지 않았던 시대에 의학을 공부하고 의료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삶을 오늘 돌아볼 때 ‘최초의 여성 의사’라는 수식어만큼 중요한 것은 배운 의술이 다시 사람을 향했다는 점이다. 의료는 결국 사람의 아픔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보라의 삶을 박에스더의 생애와 같은 선 위에 놓을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의 출발점에서 겹치는 단어는 분명하다. 사람이다.

간호 역시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일이다. 병명이나 수치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고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까지 살피는 일이 뒤따른다. 간호학을 공부한 김보라가 안성에서 선택한 길이 대형 의료기관이 아니라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 의료생협이었다는 점은 그래서 그의 삶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단순히 ‘환자’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어르신도 있었을 것이고, 몸이 아파도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하는 주민도 있었을 것이며,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건강은 뒤로 미룬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건강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생활과 가족이 보이고, 조금 더 들어가면 마을과 공동체의 문제가 보인다.

몸이 아픈 이유가 언제나 몸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활이 어렵고 이동이 불편하며, 돌봐줄 사람이 없거나 사회적 관계가 끊기면 건강도 흔들린다. 처음에는 개인의 문제처럼 보였던 일이 가족의 문제로, 다시 지역사회의 문제로 넓어지는 순간이 있다.

김보라가 의료생협과 사회적경제 활동을 거쳐 정치로 이동한 과정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사람을 직접 돕던 자리에서 사람을 둘러싼 제도와 환경을 바꾸는 자리로 활동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2014년 경기도의원이 되면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다. 현장에서 문제를 말하던 사람이 제도와 예산을 다루는 사람이 됐고, 주민과 함께 행정을 바라보던 자리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자리로 옮겨갔다. 2020년 안성시장 재선거에서 당선된 뒤에는 변화의 폭이 더 커졌다. 이제는 행정을 바라보거나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정의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됐다.

이 변화는 단순한 정치 경력의 상승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주민 곁에서 문제를 이야기하던 사람이 그 문제에 직접 답해야 하는 위치로 이동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도의원 시절에는 집행부를 향해 요구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지만 시장이 되면 선택과 책임이 동시에 따라온다. 한쪽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순간 다른 한쪽에는 기다려 달라고 말해야 할 수도 있고, 한 지역에 예산을 투입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형평성을 묻게 된다. 사람 곁에서 출발한 활동가가 도시 전체를 책임지는 행정가가 됐을 때 가장 어려운 지점도 여기에 있다.

이 대목에서 김만덕의 삶이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조선 후기 제주에서 살았던 김만덕은 상업으로 재산을 모았고 큰 흉년이 닥치자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백성을 구휼한 인물로 기억된다. 김만덕과 김보라를 직접 비교할 이유는 없지만 그의 선택은 오늘의 공직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남긴다.

내게 주어진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개인에게 던지면 삶에 대한 질문이지만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던지면 정치와 행정의 질문이 된다. 시장에게 주어진 것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시민이 맡긴 예산과 조직, 행정권한이다. 무엇을 먼저 보고 어디에 먼저 손을 내미느냐는 결국 그 사람이 도시와 시민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준다.

김보라 시장의 개별 정책과 사업성과를 하나하나 평가하는 것은 이번 인물탐구의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들여다볼 지점은 한 사람이 자리에 따라 어떻게 변했고, 그 변화 속에서도 무엇을 놓지 않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의료생협에서 활동하던 김보라는 주민과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도의원이 되면서 주민과 행정 사이에 섰고, 시장이 된 뒤에는 행정의 최종 책임자가 됐다. 문제를 발견하고 요구하던 사람에서 문제를 풀고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으로 이동한 것이다.

사람은 자리가 달라지면 만나는 사람도 달라진다. 하루의 일정이 달라지고 듣는 이야기의 종류가 달라지며 주변에서 건네는 말도 달라진다. 특히 시장이라는 자리에는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가 동시에 몰려든다. 해달라는 사람과 하지 말라는 사람이 같은 문제를 들고 찾아오고, 한쪽의 박수가 다른 한쪽의 불만이 되기도 한다.

그런 자리에 오래 있을수록 처음의 자신을 기억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김보라는 2020년 안성시장 재선거에서 처음 시장에 당선됐고 2022년 재선에 이어 2026년 다시 시민의 선택을 받아 민선 9기를 맡았다. 이제 시장이라는 직함이 낯설지 않은 시간이 됐다. 세 번째 임기는 그래서 첫 번째와 성격이 다르다. 처음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로 평가받을 수 있고 두 번째에는 무엇을 추진하고 있는지가 평가의 대상이 되지만, 세 번째에는 그동안의 시간이 한 사람에게 무엇을 남겼는지까지 함께 보게 된다.

이 지점에서 김보라에게 필요한 질문은 복잡하지 않다. 처음과 얼마나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초심’이라는 말은 흔하게 사용되지만 초심은 첫 선거 때의 연설이나 처음 내놓았던 공약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왜 이 길에 들어섰는지, 처음 누구를 바라봤는지를 잊지 않는 데 더 가깝다.

김보라의 출발점을 찾으려면 시장 취임식보다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간호학을 공부하던 시절이고, 안성의 농촌마을이며, 의료생협에서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던 시간이다.

20대의 김보라와 지금의 김보라 사이에는 30년이 넘는 시간이 놓여 있다. 사람은 그만큼의 시간을 살면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경험이 쌓이면 생각은 깊어져야 하고 책임이 커지면 도시를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져야 한다.

다만 달라져야 할 것과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행정능력은 달라져야 하고 판단의 폭은 넓어져야 한다. 시장으로서 책임도 더 무거워져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바라보는 거리는 멀어져서는 안 된다.

박에스더에게 의료를 통해 사람에게 다가간 길이 있었고 김만덕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공동체와 나눈 선택이 있었다면, 김보라가 걸어온 길에도 의료와 공동체, 사람이라는 세 단어가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과거의 경험만으로 지금의 김보라를 좋은 시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선한 출발이 좋은 행정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현재의 평가를 대신할 수도 없다. 오히려 과거가 분명하기 때문에 현재를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시장 김보라에게 간호학도 김보라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의료생협에서 주민들과 마주 앉았던 사람이 지금도 시민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뿐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의 말까지 끝까지 들을 수 있는가. 시장이 되기 전 쉽게 만났던 평범한 시민들과 지금도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가.

정책 몇 가지보다 이런 질문이 한 정치인의 본모습을 더 선명하게 보여줄 때가 있다.

김보라가 걸어온 길에는 여러 이름이 붙었다. 간호학도였고 의료생협 활동가였으며 경기도의원이었고, 이제는 세 번째 임기를 맡은 안성시장이다. 그러나 그 직함을 하나씩 걷어내면 결국 한 사람이 남는다.

젊은 시절 안성에 들어와 사람을 만났고, 그곳에서 일하고 가정을 꾸렸으며,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다 정치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 자신이 삶의 터전으로 선택했던 도시를 책임지는 자리에 서 있다.

그 긴 시간을 생각하면 김보라의 앞으로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것을 새로 만들 것인가 못지않게 처음 자신을 이 길로 이끌었던 사람들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것인가보다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잊지 않는가가 중요하고, 얼마나 빠르게 도시를 변화시키느냐 못지않게 그 변화의 속도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김보라의 시작에는 시장실이 없었다. 사람이 있었다.

김병철 기자
김병철 기자

박에스더의 삶에서 사람을 향한 의료의 길을 보고 김만덕의 삶에서 공동체를 향한 선택을 돌아본다면, 김보라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도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람이다.

간호학도에서 의료생협 활동가로, 경기도의원에서 안성시장으로 직함은 여러 차례 달라졌지만 그 길의 처음에는 안성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김보라에게 남은 길을 바라보는 기준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처음 만났던 사람을 잊지 않는 것, 높아진 자리만큼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이 왜 이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김보라가 걸어온 길의 시작에 사람이 있었다면 앞으로 걸어갈 길의 끝에도 사람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 김보라보다 ‘사람 김보라’를 더 오래 지켜봐야 할 이유다.

기자메모/ 이번 인물탐구는 김보라 시장의 정책과 사업성과보다 정치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어진 삶의 궤적에 무게를 뒀다. 박에스더와 김만덕 역시 김 시장과 업적을 비교하거나 동일시하기 위한 인물이 아니다. 박에스더에게서는 사람을 향한 의료의 길을, 김만덕에게서는 공동체를 향한 선택을 빌려 김보라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시장이라는 자리에서도 그 출발점을 얼마나 지켜갈 수 있는지를 묻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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