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1월 24일(현지시간) ‘카운터 펀치’에 게재된 글로, 글쓴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중부 출신의 광장공포증 아나코-젠더퀴어 곤조(anarcho-genderqueer gonzo)블로거이자 시스템 공격(Attack the System)의 보조 편집자인 닉키 레이드(Nicky Reid)이다.
멋진 스타일의 날카로운 한 백인 남성은 ‘평화로운 변화’(peaceful change)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변화’(violent change)를 불가피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 멋진 머리 스타일을 한 다른 백인 남성이 싸구려 이탈리아 우편 주문 소총으로 딜리 플라자(Dealey Plaza)를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그 멋진 스타일의 백인 남성은 다름 아닌 ‘존 F. 케네디’(JFK)이다. 그는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 ‘딜리 플라자’에서 암살당했다. 그의 암살자는 리 하(르)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라는 화가 잔뜩 난 키 작은 남자였다.
무슨 무슨 이유를 불문하고, 오스월드의 살인은 케네디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임기를 정의한 ‘소름끼치는 폭력’(ultraviolence)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이 JFK를 더 큰 **(dick)를 가진 마크 트웨인(Mark Twain)처럼 만들고 싶어 하더라도, 시적인 독백과 술에 취한 성적 모험 사이에서 카멜롯(Camelot :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궁정 및 도시)의 왕이 평범한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는 불편한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까지 선출된 공무원들을 때리고 논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이 인물은 피그스 만(Bay of Pigs) 침공과 쿠바 미사일 위기의 엄청난 거의 종말론적인 실패 이후, 미 중앙정보국(CIA)이 훈련시킨 파시스트 산적들이 쿠바의 민간 인프라를 상대로 광범위한 테러 공격을 감행한 이른바 ‘몽구스 작전’(Operation Mongoose)을 벌인 인물이다. (몽구스 작전은 쿠바에서 미국 중앙정보국이 수행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테러 공격 및 비밀 작전으로, 공식적으로는 1961년 11월 30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승인한 작전임)
몽구스 작전으로 현지 정유소는 폭격을 당했고, 철도는 파괴되었으며, 무고한 사람들이 냉혈적으로 학살당했다.
60여 년이 지났지만, 미국은 여전히 카멜롯을 참수한 ‘숙명적인(카르마적) 정치적 폭력’(karmic political violence)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정치적 폭력은 JFK 암살 이후의 분노의 시대(Days of Rage) 이후로 지금 더 심해졌고, 그 조류는 계속해서 더 높아져 왔다.
혼란스러웠던 2024년 미국의 대선 시즌을 간신히 견뎌냈는데, 그 기간 동안 선두 주자는 린치를 가하는 폭도(lynch mob)를 조직하는 데 바빴던 게 아니라면, 그의 목숨을 노리는 심각한 시도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있었다. 새해는 테러 행위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으로 시작되었는데, 두 사건 모두 미국 정부에 의해 오스월드처럼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었다.
1월 1일 오전 3시 15분, 미국 육군에서 13년 차 복무자인 샴수드-딘 자바르(Shamsud-Din Jabbar)는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른바 ‘이슬람국가(ISIS) 데칼코마니 픽업트럭을 뉴올리언스 프렌치 쿼터의 인파 속으로 추락시켜 14명을 죽이고, 35명을 다치게 한 후 경찰에 사살당했다.
그로부터 불과 6시간 후, 매튜 리벨스버거(Matthew Livelsberger)라는 현역 그린베레(Green Beret : 미국 특전 부대 요원)가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정문에 폭죽을 실은 테슬라 사이버 트럭을 주차시키고, 렌트카를 폭발시키면서 자살, 그 과정에서 7명을 다치게 했다.
강력한 사람들이 ’폭력적인 변화‘를 전 세계에 퍼뜨리면서, ’평화로운 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힘에 의한 변화’는 결코 ‘평화로운 변화’를 유인해 내지 못한다.)
위에 나열된 모든 폭력 행위는 광범위한 동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유일한 음모는 이 모든 것이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제국’(violent empire)의 대표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상대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가자지구에서 본격적인 홀로코스트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우크라이나에서 종말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국가가 폭력보다 덜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것은 베스트팔렌 국가(Westphalian nation)가 군주제라는 유령으로 옛 유럽의 왕과 황제에게 적용하려고 했던 거의 신비로운, 이슬에 젖은(슬픈) 눈의 이중 기준과 같은 종류이며, 그것은 잠시 동안 효과가 있었다.
살인자는 왕(王)이었고 왕은 신(神)이었지만, 그 신이 분노한 신하에게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1898년의 엘리자베스 황후(Empress Elisabeth), 1900년의 움베르토 국왕(King Umberto), 1908년의 카를로스 1세 국왕과 루이스 필리페 왕세자(King Carlos I and Crown Prince Luis Filipe). 그것은 모두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1917년 차르 러시아(Czarist Russia)를 천 조각으로 산산조각 낸 10월 봉기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폭력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테러리즘’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무엇이 ‘정치적 폭력’을 구성하는가?
우리는 그것이 명백히 정치적 동기로 저질러진 폭력 행위라고 들었다. 그럼 ‘세금 저항자’(tax resistor)가 전쟁 기계(war machine) 주머니에 든 돈을 주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것은 어떨까? 푸른 옷을 입은 왕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이유로 냉혈하게 총에 맞아 죽은 흑인은 어떨까?
2001년 9/11과 2019년 사이에 미국에서 테러 공격으로 지정된 미국인 549명이 사망했다. 이는 정치적 폭력에 대한 분노로 폭력적인 테러 전쟁을 치르라는 명령을 받은 시대였다. 이러한 사망자는 이 영원한 전쟁이 커진 국가의 비극적인 결과였다. 그렇다면 2023년에만 치명적인 경찰 총격 사건으로 1,164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지만, 그들의 분노는 어디에 있는가? 테러와의 전쟁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수준의 완전히 어지러운 불의(不義)는 더 이상 기존 언론에 의해 침묵되거나, 억눌릴 수 없다. 대법원이 틱톡(TikTok)을 금지하는 것을 무시하고, 일론 머스크와 같은 돼지 같은 과두 정치(pigfucking oligarchs)가 트위터를 매수하는 동안에도, 그들이 통치하기에는 카메라 폰이 너무 많다. 모두는 경찰의 목 졸림과 병원 폭격의 디지털 증인이 되었고, 엘리트들이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 일이나 단순히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가장하면 할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노골적인 탐욕과 오만함을 정당화하려는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이런 “자유세계”에서, 이처럼 편재하고 피할 수 없는 글로벌 기업, 국가, 기구가 있는 곳에서, 분노는 연기처럼 산화되고, 모든 폭력 행위는 ‘정치적으로’ 변해 버린다. 강탈과 파괴는 박스 매장의 대량 신사화가 허공으로 팽개쳐지는 난장판 같은 복수 행위가 행해진다. 직장에서의 총격은 칸막이 독재에 대한 한 사람의 봉기가 된다.
최고경영자(CEO)에게 총알 세 발을 쏘는 건 환상적인 기분이지만 그게 무엇일까? 기계에서 톱니바퀴 하나만 제거하면 뭐가 바뀌나? 그리고 볼셰비키(Bolsheviks : 1917년 혁명 후 정권을 잡은 러시아 사회 민주 노동당의 일원)는 그들의 피의 폭격으로 거대한 죽음의 기계를 다른 기계로 대체하는 것 외에 무엇을 성취했나?
국가 자체가 정치적 대량 폭력의 근원이며, 대체될 수 없다.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 테러와의 진정한 전쟁은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기업 도둑으로부터 상품을 사는 것을 거부하고, 은행이나 선거에 투자하는 것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풀뿌리 운동(grassroots movement)이 될 것이다. 닉키 레이드는 폭력의 정치, 정치의 폭력을 이같이 강하게 비판했다.
조직적인 무력 사용 독점 혜택을 받는 기관의 검증을 거부하는 다른 기관들 사이에서만 거래, 공유, 물물 교환을 하는 자치 공동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이다. 국가의 폭력적인 권위를 완전히 무의미하게 만드는 반(反)정부적인 반(反)문화라고 닉키 레이드는 규정한다.
그의 글은 “진정으로 ‘국가가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를 방어하게 될 때, 그때 서야 우리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반격을 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치적 대량 폭력의 근원인 국가가 진정성이 없이 평화에 대한 테러 방어에 나설 경우, 주변은 그것을 강 건너 불보듯 할 것이다. 물론 국가는 언제나처럼 말로는 정의의 불꽃놀이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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