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실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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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실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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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나스는 신을 믿는 것은 어린이가 무엇을 따지지 않고 믿는 것처럼 믿어야 하지만,

신은 존재하고 정말로 전지전능한가에 대한 물음을 늘 받게 된다. 그러나 물음을 해오는 자에게 명쾌하게 압도할만한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철학적 사고로 밝히려고 하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 역시 분명한 대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철학은 근본 신념이나 기초 신념 가운데 옳은 신념을 이성에 의해서 찾아내려는 시도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는 대개 본래의 뜻을 규명하기도 전에 이해되지 못하는 말들의 나열로 인해서 발목을 잡히게 되는 일들이 많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말장난 같은 것으로 변하기 십상이어서 더욱 난해한 명제를 만들어 내게 되어 더욱 그 해답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자기 혼잣말 같은 비의적(秘意的) 주장이나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만들어내서 그것을 다시 규명하거나 분석하려고 하지만, 더욱 어려운 말이나 언어의 나열을 수반하게 되어서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조차도 어렵게 되는 경우에 빠지면 철학의 명제를 밝히기는커녕 더욱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이것이 정말로 내가 규명하려고 하는 것의 명제인지 조차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들을 반복하다보면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철학적 명제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인접학문이 동원 될 수밖에 없게 되어서 상위철학,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인식론, 철학사 같은 것을 동원하게 된다.

이러한 인접학문을 통해서 어떤 명제에 대해 보다 깊고 넓으며 근접함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늘 어떤 것을 화제로 등장시키거나 대입해서 비교 설명하게 된다.

그러한 것을 이해하면서 전제한 '신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가?'를 예로 들어보면 그것을 밝히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이며 어려운지를 알게 된다.

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의 실존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증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지만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그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11세기에 살았던 안셀무스(St. Anselmus)는 자기의 책 <프로슬로기온.Proslogion>에서 신에 대한 정의로 "신은 가장 위대한 존재이며 우리는 그 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생각할 수도 없고, 그 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말은 신의 포괄주의에 초점을 두고 있다하겠다. 하지만 그의 이 말을 인정하게 하려면 그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여야 믿게 되어서 이에 따른 많은 논증이 필요하게 된다.

신은 능력이 있지만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다. 신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지(全知)하다. 신은 선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전선(全善)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신이라는 것에 대한 용어의 분석을 했다.

따라서 이러한 말은 신이 실존한다고 보면 신보다 위대한 것이 없어야 하고, 가능하지 않은 존재가 실존한다고 믿어야 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데, 사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데 의문이 생기게 된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 신보다 더 위대한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존재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가 신이라는 말인가를 생각하면, 정말로 그것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모순이 생기게 되고, 설령 신이 실존한다고 말해도 사실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게 된다. 신보다 더 위대한 것은 생각될 수도 없고, 가능하지 않은 존재가 실존한다는 것이 증명될 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으며, 신의 뜻을 거역하지 않으며 따르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로 참인가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신의 존재론적 논증은 더 위대한 곳으로 올라가는 존재의 위계(位階)가 보다 큰 수로 올라가는 수의 위계와 다르며, 존재의 위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지 하고 있는 구성원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신의 존재론적 논증이, 증명하고자 하는 존재의 위계에 있어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구성원 보다 더 위대한 존재에 위치하며 또한 그것이 생각될 수 없거나 가능하지 않은 가장 위대한 존재가 있다고 보는 것인데 정말로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긴다.

고양이가 담요 위에 앉아 있으면서 동시에 모자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실존과 전능이라고 가정해서,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둘 사이에 논리적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부정과 긍정, 두 개의 답이 나오게 하지 않으려면 그것을 증명하지 않고서는 해결 방법이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고양이는 전(全)존재이며 고양이는 거친 혀를 가졌으므로 전재존재는 거친 혀를 가졌다."라는 것은 수의 순서와 존재의 순서 사이에 성립하는 차이에 관한 난제가 된다. 이처럼 신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철학적 사고로 어떤 명제를 논증하여 증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며 이러한 일이 때로는 매우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신이 정말로 존재하고, 그가 정말로 전지전능하며, 모든 것을 죄지 우지하고, 인간을 모두 지배하는 힘이 정말로 있는가? 그리고 그는 정말로 실존하면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객관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믿고 따른다는데 회를 느끼게 되며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신의 실존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을 믿는 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라는 가설도 존재하고 그 반대의 주장도 성립하게 된다.

하지만 13세기의 철학자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신을 믿는 것은 어린이가 무엇을 따지지 않고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것처럼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신심은 하나님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받아 드리고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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