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년 대인 지금 성매매 여성을 성 매매를 못하게 하면 그들이 무어라 하는가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데모를 하지 않는가. 지금에 비하면 50-60년전인 그 때는 참으로 일자리도 없고 먹을 것이 없었다. 팔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팔아야 했다. (그때는 돈을 받도 팔고 지금은 공짜로 주고 있다.) 당시 정부가 매춘을 강요했는가. 매춘하는 아이들을 건강검진해주고 영어 가르쳐 주었다면 도와준 것 아닌가, 밥 잘 처벌어먹고 이제와서 지랄 발광떤다. 미친년 하여간 쓰레기들이 많다니까.
60년대의 여대생들이 알바를 한다는건 정말 행운 이였다. 밤이면 뻐스에 가득 실려 미군부대에 알바를 하면 행운에 들었다. 운이 좋으면 그들의 눈에 들어 국제결혼을 할수 있었다. 그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고 또한 부양했다. 거의 천만에 이르는 미국 이민의 역사의 한페이지 이다.
실제로 한국여자들이 국제결혼을 하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것은 이태원이나 오산 문산 동두천등 기지촌에 가보면 알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학대받고 사람취급 받지 못하느니 미국에 갈수만 있다면 발가벗고 춤이라도 추리라. 그들은 부끄러움 따위는 사치라고 여기며 오늘도 춤을 춘다 부끄러움이 밥먹여 주는건 아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쎅씨 할수록 눈에띄여 미국으로 갈수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결격 사유에 해당 되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함은 물론 이다.
국제결혼한 어머니들이 항상 친정을 걱정하며 십년이 넘도록 친정을 돕는 일이 허다 하다. 음으로 양으로 친정은 지극지긋한 가난을 벗지 못하니 어쩔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과거 이지만 적어도 부모님이라는 천륜을 어쩔수 없기에 열심히 바닥일이라도 하여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심청이들이 많음을 부인할수 없다. 한국에 무지한 자들은 혼자만 잘먹고 잘사는줄 안다. 자립하려면 일찍 일어나라. 적어도 새벽 5시에 기상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