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아직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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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아직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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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0만 명 정도의 고정지지층은 가지고 있다고 봐야한다

^^^▲ 민주노동당 2 ‧ 3 임시 전당대회의^^^
민노당은 2000년 1월 김대중 집권 이후 정부의 용공적(容共的) 분위기 속에서 출범했다.

公安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북한과 좌익의 소원이었던 『이념정당 출범』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反헌법·反국가 행태로 치달아 온 민노당 출범의 산파(産婆)는 바로 김대중 정권이다.

2000 년 민노당 출범은 우익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상당수 보수단체·보수매체들은 2007년 12월 보수정권 출범과 동시에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좌익들이 97년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이념정당』 건립에 나선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좌익들은 남한혁명의 장기(長期) 목표로 김대중 정권 출범에 만족할 수 없었지만, 적지 않은 우익들은 이것이 없으니 이명박 정권 출범에 자족해 버린 것이다. 보수·우파·애국진영의 역사적 과제가 「북한해방-자유통일-일류국가」라는 장기 목표에 있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지 않은 탓이다.

민노당은 2001년 4월 중앙연수원을 개원했고,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해왔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는 218명이 출마해 기초단체장 2명, 광역의원 11명(비례9인)이 당선됐다. 당시 정당 득표율은 8.13%에 달했다. 권영길 의원은 같은 해 대선에서 3.98%의 지지율, 95만 표를 얻었다.

2004 년 4월 총선에선 탄핵역풍에 힘입어 당 지지율 13.1%를 기록했고, 비례후보 8명과 지역구 2명 등 총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선 799명이 출마해 기초의원 66명, 광역의원 15명(비례10인)이 당선됐다. 이 선거에서 민노당은 12.1%의 지지율, 226만 표를 얻었다.

민노당은 2007년 대선에서 3%의 지지율과 71만 표를 얻어 2002년 대선 때보다 24만 표가 빠져나갔다.

그러나 대선참패가 反노무현 정서에 따른 것이며, 대선 당일 출구조사에서 10%가량이 총선에서 민노당을 찍을 것이라고 답했고, 실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10% 이상의 지지율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4월 총선도 평년작은 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실제 민노당은 지난 해 대선과 같은 날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인천 부평 30.17%(광역의원), 고양 덕양 34.96%(기초의원)를 얻어 각각 2위를 차지했다. 진폭은 있겠지만, 민노당이 10%, 200만 명 정도의 고정지지층은 가지고 있다고 봐야한다. 이것은 향후 분당사태를 고려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민노당은 출범 직후부터 노골적인 親北색채를 보여 왔다. 2000년 8월에는 『애국투사 비전향장기수 환송식』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채 대대적인 비전향장기수 환송행사를 했고, 같은 해 10월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행사 관련 방북에 나섰다.

2005년 8월에는 조선로동당의 友黨인 북조선사회민주당과의 교류를 위해 지도부가 방북했고, 2006년 10월 핵실험 직후에도 당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지난 해 10월13일 광화문에서 열린 「간첩·빨치산 추모제」에는 민노당 소속 의원 전원이 추모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물론 이 같은 從北노선에 대해 당내 소위 PD파(평등파)들은 단 한 번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었다.

- 조갑제닷컴 金成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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