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돌석장군 순국99주기 추모제향 개최
스크롤 이동 상태바
신돌석장군 순국99주기 추모제향 개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돌석장군 유적지(축산면 도곡리)에서 추모향지내

^^^▲ 신돌석장군 추모향
ⓒ 이화자^^^
영덕군에서는 일제시대 항일의병장 “신돌석장군 순국99주기”를 맞이하여 추모제향을 6일 오전11시 신돌석장군 유적지(축산면 도곡리)에서 개최한다.

이날 추모제향에는 사공 황 영덕부군수를 비롯한 이희범 경주보훈지청장, 유족, 추모위원회 등 300여명의 기관단체장 및 주민들이 참여하여 장군의 숭고한 애족정신을 본받고 기리게 된다.

^^^▲ 추모향의식중 손씼다.
ⓒ 이화자^^^
군은 장군의 뜻을 기려 매년 추모제향을 거행하고 있으며, 내년 100주기를 맞이해서는 국가보청지청과 협의하여 국가적인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중에 있다.

신돌석 장군은 축산면 도곡리(당시 영해군 남면)에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나 명성황후 시해 사건후 일제의 침략 야욕이 노골화되자 1896년 19세의 나이로 동지들을 규합, 영해의병진을 조직했다.

^^^▲ 사공황부군수 식사
ⓒ 이화자^^^
장군은 이후 10년간 전국을 돌며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했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이후에는 동해안 일대와 경북 및 강원도 내륙지방에서 일본군과 수차례에 걸친 격전에서 크게 승리해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907년에는 영덕일대 농민들과 함께 일진회 등 친일세력을 대거 처단하는 등 신출귀몰한 전과와 명성이 전국에 퍼지면서 농민들의 항일민족 의식과 유림들의 국민항일투쟁을 촉발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추모향 의식중 하나
ⓒ 이화자^^^
장군은 또 영남지역에서 의병항전을 주도하다가 겨울을 맞아 의병진을 해산한 뒤 동지를 규합하던 중 1908년 11월18일 영덕주민에 의해 살해당했다.

정부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1971년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 추모향 의식중 하나
ⓒ 이화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