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뀜은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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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지름길이라지만

^^^▲ 아르테미스 여신^^^
철학자들은 다만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지만, 요지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중에서 제11(마지막) 테제-

루브르 박물관에는 들라크르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대형작품이 있다.

나무와 돌로 쌓인 바리케이드 앞으로 몇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자유의 여신이 뒤따르는 시위민중을 돌아보며 오른손에 홍백청 삼색기를 높이 쳐들고, 왼손에 창검이 꽂힌 소총을 쥔 채로 진격하는 장면이다.

이 상황은 1830년 프랑스의 7월혁명을 그린 것인데, 여신은 가상이다.

또 루브르에는 기원 전 4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보이는 아르테미스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도살자"란 뜻을 가진 아르테미스는 숲과 사냥꾼의 신이다. 오른손은 화살을, 왼손은 사슴을 취한 폼을 잡고 있다. 트로이 전쟁의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도 사슴을 이처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다 여신의 분노를 샀다. 여신의 상징은 달이며, 해의 남신 아폴론과 쌍둥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아르테미스 여신이 취한 포즈와 거의 같다. 다만 자유의 여신이 탱탱한 젖가슴을 자랑스레 내놓은 점이 다르다. 여신과 함께 작품의 중앙에 엎드린 남자가 거기를 황홀하게 쳐다보고 있다. 그는 농노(農勞)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외설로 선동됐음을 나타낸 것이다. 숨어서 시위를 조종하던 자들이 구체제의 성적 문란을 민중의 분노로 유도했다.

뿌연 화약연기를 뒤로 하고, 앞에 가로막은 금지선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를 세 명의 사내가 가늠하고 있다. 이들은 혁명을 일으킨 주축세력이다.

1. 부르주아 - 사제와 귀족의 뒤이은 신흥 부자들로 신분상승을 노린다.
2. 아나키스트 - 정부를 타도하자는 과격파이지만 출세기회를 옆 본다.
3. 국비 공대생 - 장래가 보장되어 있으나, 좀더 확실한 환경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가장 이채로운 인물은 쌍권총을 휘두르고 있는 청소년이다. 그는 오히려 여신보다 앞장서 있다. 스케치된 그 십대의 특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신 표정과 변혁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몸 전체로 표출하고 있다. 다수 큐레이터들이 여신에 주목하며 이 낭만파 작품을 설명하지만, 정작 작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모티프는 바로 이 젊은이 같다.

갈루아(1811~1832)는 파리에서 가까운 한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제1공화국을 세운 대혁명(1879) 때 공화주의자로서 가담한 공로로 읍장에 당선되었다. 갈루아는 12세까지 가정교육으로 성장했으며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면서 공화정은 폐지되고, 이후 왕당파의 보복이 이어졌다. 결국 사제의 음모에 빠져 아버지는 자살하고 말았다.

중등교육을 받은 파리의 학교는 갈루아에게 울타리로 둘러싼 감옥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파악하기 힘든 성격으로 야심과 독창의 허울을 쓰고 있음”, 당시 갈루아에 대한 교사들의 평가였다. 그러나 갈루아는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을 해석한 책을 만나며 수학세계에 몰입했다. 이어 교사예비학교로 옮기고, 그의 머리 속에는 "군론(group theory)"이 펼쳐지고 있었다.

1830년 7월 갈루아는 시위에 문을 닫아 건 기숙학교 생활을 접고, 혁명대열에 투신했다. 그는 “민중의 벗”이라 부르는 자유주의자들의 조직 가운데 데르벵빌이 이끄는 국민군 포병대에 입대하였다. “프랑스 수학자 갈루아”라는 전기에 의하면, 그때 갈루아의 한 컷이 들라크르아의 스케치에 잡힌 것으로 보고 있다. 갈루아가 바로 그 겁 없는 십대의 모델이었을지 모른다.

혁명은 민중을 강압하던 샤를 10세를 폐위시켰으나, 각계각층의 타협에 따라 제2공화국 수립에는 실패했다. 불굴의 공화주의자 갈루아는 여기에 반발했고, 이듬해 체포되어 9개월의 징역을 살게 된다. 1832년 봄 가석방된 그는 병원에서 만난 스테파니에게 순진하게 프러포즈한다. 이 일로 여자의 약혼자 데르벵빌의 결투 신청을 받고, 갈루아는 만 20세의 일기로 제거된다.

혁명은 자유의 이름 아래 다른 사람을 제거한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죽기 전날 밤 갈루아는 친구에게 유서를 남겼다. 일반해가 없는 5차방정식의 미지수 x는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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