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이 숨죽인 산중의 봄눈. 교수님과 신입생 재학생이 한데 어우러진 환영회파티. 경건하게 축시 송시가 오가고 산나물 비빔밥에 툭진 막걸리가 인정을 풀어주고 노 교수님의 그윽한 샹송이 공간을 누빌 때 우리는 그것만으로 가슴이 타올랐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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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눈 ⓒ 네이버 자료사진^^^ | ||
억압과 질곡의 80년대-. 그리고 저항. 민중에 대한 순결한 애정과 역사에 대한 든든한 믿음을 담보하지 않는 일체의 양심과 행동은 다 거짓이고 헛것이며 부정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하고 뿌리깊은 애정과 믿음, 그것을 표현해내는 도덕적 행위. 우린 그것을 '운동'이라 했다.
그때 우리의 담론은 늘 치열하고 진지했다. '동지가'를 부르며 함께 부대끼며 느낀 동지애는 늘 각별하고 따뜻했다. 아무도 역사의 대장정에서 비껴난 삶을 살 수 없었다. 굴곡이 많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장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모두가 숨죽였던 80년대. 우리의 과녁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더하여 우리의 '운동'은 필생의 위업으로 청사에 영구히 빛날 것이라 믿었다. 전진도상에서 수없이 흘렸던 뜨거운 눈물과 함께 역사의 금자탑으로 길이길이 기억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시대가 변한만큼 우리들도 조금씩 변했다. 순수하고 절박하여 걷잡을 수 없이 격렬했던 20대의 흥분을 지나 이제는 평온과 진지함으로 사물을 관조할 줄 아는 신중함도 배웠다. 그 많은 흥분과 감정의 소비를 겪고서 말이다.
다시 봄. 왜 이리 봄이 오면 그리운지. 지난 아름다웠던 추억에 자꾸만 눈시울이 뜨겁다. 그시절 입던 청바지를 장롱 옷걸이에서 꺼내 벽에 걸어도 보고 노-트를 꺼내 조용히 그때 내 가슴을 꽉 채워두었던 숙제들을 더듬어본다.
<<에피파니: 새로운 각성, 이미 있었던 일을 어느 순간에 새로이 인식, 새로운 감동 종소리 등 이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가 그 언젠가 계기가 생겨나면 의식 속에 떠오르게 된다. 어떤 환상적 내지 승화된 이미지로서….>>
그렇다. 하나의 문학작품에 있어 시간은 때로 역전, 정지될 수도 있다. 정경묘사일 수도 있겠고 작중 인물의 성찰이 있을 때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문학작품이 아니고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라면 어떨까.
내가 봄마다 꺼내볼 수 있는 것, 한번씩 폭풍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지나온 시절에 전율하여 환희에 젖곤 하는 그런 것, 그리고 이내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그걸 나는 임의대로 삶의 <에피파니>라 명명해본다.
지척에 몇 몇 소식 끊기지 않은 친구들을 불러보고 싶지만 한번 이별한 우리라설까. 만남 하나만으로 웃음 주던 그때와는 사뭇 달라진 우리들이다. 연연해하기 보단 그냥 한 편의 추억에 가까워하리라.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다시 읽으며 부디 설레는 봄을 눌러보리라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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