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의 도마위에 오른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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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의 도마위에 오른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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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각자의 주관에 맡겨야 한다

^^^▲ 1979년 10월 26일, 아직도 비밀인가?
ⓒ 뉴스타운^^^

지난 3일 국민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이 MBC 100분 토론의 주제로 선정돼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동안 많은 논란이 됐던 몇 가지 테마들을 바탕으로 벌어진 토론에 참석한 논객들은 영화의 상업적 의도, 정치적 목적, 악의성, 표현의 자유 억압 등을 중점적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100분동안 뜨거웠던 “그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

법원은 박지만씨가 낸 소송에서 “일부 장면 삭제를 하라”고 결정했고, 조희문 교수(상명대 영화학과), 우종창(월간조선 편집위원), 전원책 변호사 등은 찬성의 입장을 밝히며 “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악의적인 메시지가 담긴 영화”라며 100분 토론에 출연해 비판을 가했다.

이에 대해 오기민 위원장(영화제작가협회 정책위원장),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 이동직 변호사 등은 “재판부의 판결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행위”라며 아직도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예술에 대한 사전 검열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화를 제작한 임상수 감독은 전화인터뷰를 통해 “법원과 여러분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의 의미를 묻고 싶다”며 “영화내용에 책임이 있다면 감독에게 묻지 왜 영화를 가위질하느냐”고 비판했다. 또 악의성 논란에 대해 “재판부는 ‘악의성도 엿보이기도 했다’고 판결내렸는데, 그것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코멘트다”라고 하며 악의성 문제는 각자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박지만씨의 변호사인 이승환 변호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여자 문제, 친일문제 등을 구지 거론한 것이 악의성이 아니면 무엇이냐. 왜 영화에 박대통령이 일본 노래를 즐기고 일본 말을 사용하는 허구가 나오냐? 사실과 허구를 혼란하게 만든 것이 악의성이 아닌지”에 대해 임감독에게 물었다.

임감독은 “어떤 악의성도 없었다. 사실 1979년 10월 26일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은 없다. 심수봉씨의 책을 봐도 그렇고, 사건일지도 그렇고,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자 다르다”며 “진실 규명되지 않은 사건의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의미함을 시사했다.

이에 이 변호사는 “철저하게 공적인 활동에 대한 평가를 했다면 관객들이 사실과 허구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사실이 아닌 장면과 개인 인격과 관련된 장면뿐인 영화인데 악의성이 없고,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피력했다.

^^^▲ 1979년 10월 26일, 아직도 비밀인가?
ⓒ 뉴스타운^^^
아직도 “그 때 그 사람들”의 시대인가

100분 동안의 토론을 보며 아직도 “그 때 그 사람들”의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토론장에 나왔던 이들은 예술에 있어 검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이들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술에 있어서 검열이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검열을 통해 표현을 하고 싶은 자유의지는 차단된다. 그러나 검열의 과정을 통해 생기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술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텍스트의 상호보완적인 소통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데에 있다.

예술의 상호보완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것은, 수용자(관객이나 독자)가 받아들이는 관점의 차이를 배제하고 금지시킨다는 의미다. 즉,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에 반해, 검열을 거친다면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지극히 객관화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였느냐 아니었느냐”에 논의 이전에 이뤄졌어야 할 것으로, 현 재판부의 결정이 “예술의 독재적 결정이었는가, 아닌가”를 논의해야 했다. 물론 이승환 변호사의 말처럼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하는데 있어 사적인 왜곡이 들어갔어야 했느냐는 의문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의 말을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인 부분을 다룬 다큐부분이 삭제된 것은 ‘공적인 부분임에도 가위질된 장면’이다. 결국 그들이 지적한 “사적인 문제에 대한 왜곡 또는 악의성이 담겨있다”는 주장은 실제 재판부의 판결과 상반된 결과다.

아직도 우리 나라는 예술의 텍스트를 받아들이는데 있어 검열과 과정이 많다. 물론 예술을 받아들이는 미성숙한 인식 단계이기 때문이라고 판단되지만,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굳게 닫아놓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가령,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는 오랫동안 참여시의 대표적 전형으로 알려져왔다. 특히 문학시간을 통해 배운 지식에 의하면 “풀=민중,약자”, “바람=권력,강자”로 해석됐다. 이러한 해석은 단순한 알레고리적 차원에서 머무르며 다른 상징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러나 최근 이것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해석에 불과하다며 이 시가 섹슈얼리티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는다”는 정황 자체가 권력이 소수의 민중을 탄압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남녀의 성관계를 묘사한 장면일 수도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처럼 예술은 교과서적인 해석에 의존한 학문이 아니다. 삶의 진리를 모두 담고 있는 듯한 철학도 아니다. 현실과 시대를 비판하고 깨우치고자 하는 계몽가는 더욱 아니다.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조화, 그리고 그것을 나타내는 상징이 예술을 만들어간다는 이해가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단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블랙코메디를 통해 그 시대를 풍자하고 싶었다”고 의도를 밝혔지만,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져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상업적,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혹평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쨋든 “표현의 억압”과 “사전검열”의 탈을 쓰고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많은 수용자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장을 구축하기 위해, 창작자는 책임있는 시선을 던져야할 것이며 제작자는 공정한 원칙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예술을 하나의 울타리에 가둬두고 모두 하나의 평가를 할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다양한 의견을 펼칠 수 있게 수용자들과 텍스트를 함께 방목해줘야 한다.

그 텍스트에 대한 의견을 차단할 권리는 감독에게도, 정부에게도, 특정한 개인에게도 없다. 이제 보다 성숙한 예술관이 확립될 수 있도록, 모든 판단은 관객에게 맡겨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 때 그 사람들”에 대한 가장 올바른 판단이며 두 발의 총알에 맞은 진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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