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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맞은 편에 있는 집안의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내가 이곳에 이사 온 것은 몇 해전이다. 이사와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매일같이 저 감나무를 보아왔다. 감나무는 계절마다 다른 옷으로 갈아 입었다. 해마다 많은 감이 주렁주렁 영그는 저 감나무는 이제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은 사월 초입이었다. 그때 앞집의 감나무는 죽은듯 했던 가지에서 어린 연두빛 새싹들이 소리없는 탄성을 지르며 깨어나는가 싶더니 얼마 뒤에는 연두색으로 온통 물들여 놓았다. 사월이었다. 겨우내 얼어붙은 듯 하던 마른 나무 가지에서 기적처럼 생명의 환희에 찬 침묵의 소리를 내지르며 생명감으로 충만케 만드는 기적의 사월이었다.
나는 매일 감나무의 변화를 바라보았다. 가게 안에서 손님이 없을 때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하면서 이따금 바깥을 쳐다보면 먼저 보이는것이 바로 앞집에 높이 서 있는 감나무였다. 그 위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고 싶어서 밖을 내다 보다가도 나의 시야 안에는 앞집의 감나무가 배경으로 깔렸다. 하늘 빛과 계절마다 바뀌어가는 감나무 빛깔과는 아주 잘 어울렸다.
가게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늘상 똑같은 듯 하면서도 달랐다. 사월의 감나무 잎사귀는 날이 갈수록 무성해지기 시작하더니 유록빛의 물결을 이루었다.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감나무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은 작은 발견이고 즐거움이었다. 피곤하다가도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초록 물결을 이루고 서 있는 감나무에 뻑뻑하게 마른 눈을 씻었다. 이제는 감이 익어가는 가을이다.
어릴땐 시골에 먹을거리가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고 거의 다 가난 하게들 살아서 아이들은 산과 들로 나가 놀면서 자연이 내어주는 각종 먹거리들을 찾아내 먹을 줄 알았다. 풋감도 그 중에 하나였다. 곡식이 여물어 가는 구월 쯤이면 시샘하듯 한바탕 태풍이 휩쓸곤했다. 밤 사이에 비바람에 흔들리다 아래로 툭하고 떨어진 풋감들. 감나무 아래 이리저리 떨어져 있는 풋감들은 제법 먼데까지 떨어져 있는것도 있었다.
한창, 가을에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릴때가 되면 나는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 골목길을 돌아나가 대문도 없는 혹시 있다고 해도 빗장을 걸지 않는 시골집들의 가나무 아래 발소리를 죽여가며 다가갔다. 아래로 떨어지다가 돌에 찍혀서 흠집이 생긴것도 있었다. 그중에 괜찮은 것들만 골라서 소쿠리에 담았다.그러고 나면 또 다음집으로 향했다. 새벽 어스름빛 아래서 감나무가 있는 집을 돌며 풋감을 줍는 일은 이렇게 며칠을 계속했다.^
새벽에 일어나 조용한 골목길을 걷는 것과 감나무 아래 서는 것은 긴장과 함께 설렘을 동반했다. 이따금 들길을 걸어 나가면 불어난 개천의 물 흐르는 소리는 웅얼거리며 노래하는듯 했다. 몇날이 지나 쌀독이나 보리 쌀독을 열어보면 그 안에 묻혀 있던 풋감의 떫은 맛은 사라지고 색깔도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고 말랑말랑해져 있었다.좋은 군것질거리였다.
맞은 편에 있는 집의 감나무에는 해마다 주렁주렁 많은 감들이 열리는 것을 본다. 짙푸른 감나무 앞사귀 사이사이에 풋감이 따가운 햇살 아래 영글어 가는게 보인다. 감나무 위로 높이 펼쳐진 하늘의 표정을 또한 읽을 수 있다.나는 사계절을 앞집 감나무를 보고 읽으며 산다.
오래전에 T시에 살때 오래묵은 가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집이 길 가에 있고 우리집 감나무는 바로 앞 도로 건너 우물가에 있었는데 아이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있어온 감나무였다. 그 큰 감나무는 동네 우물가 옆에 서 있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수도물도 제대로 없던 옛날에는 동네 사람들의 식수원으로 쓰이던 시원한 우물이었다.
해마다 늦가을이 되어 서리가 내릴 즈음이면 발갛에 익은 감을 땄다. 컨테이너 박스를 감나무 아래 두고 긴 장대로 두드려 따거나 감나무 위에 올라 가서 따서 주면 아래 서 있는 사람은 그것을 받아서 담았다. 제일 꼭대기에 달려 있는 몇개의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다. 해마다 그렇게 늦은 가을이면 감나무에 붉은 등잔을 켠듯 밝은 감을 따곤 했는데 그렇게 오래 묵은 감나무는 아파트가 맞은편에 들어 서면서 우리 감나무가 서 있는 땅을 팔았고 한순간에 뿌리째 뽑혀 나가는 것을 보았다.
우리집의 대들보 같았던 정겹고 든든한 감나무였다. 흉측스럽게 생긴 포크레인이 감나무를 쓰러뜨리고 드러난 붉은 흙 속에서 깊이 뿌리 내린 뿌리가 뽑혀 나왔다. 맞은편에 있는 3층의 큰 창유리를 통해 보고있던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감나무가 불쌍한데다 뿌리째 뽑힌 감나무의 수난을 보면서 어린 딸아이와 아들은 목놓아 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창가에서 떨어져 나오게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늘 거기 서있던 감나무였다. 시원한 우물가에 서 있던 감나무는 우물과 연애라도 하는듯 말없이 그리고 사이좋게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왔다. 옛날부터 동네의 식수로 쓰였던 우물도 감나무와 함께 사라졌다. 언제나 든든하게 그늘을 만들어 주며 서 있던 감나무가 사라지자 허전하고 왠지 마음이 아팠다. 매일 창가에 가서 서면마주 쳐다 보이던 감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계절을 나고 세월을 나고 있었는데 다시는 볼수가 없었다.
어린시절을 궁벽한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우리 동네의 대부분의 마당이 있는 집마다 가나무 한 그루쯤 없는집이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수도 시설이 변변찮았던 때라 동네 우물 물을 길어 와서 식수로 쓰던 때였다. 우물이 있는 빙에는 어김없이 우물가에 감나무가 적으면 한그루, 많으면 몇그루씩 있었다. 동네의 몇개 안되는 우물들 가운데 가깝고 맛잇는 집의 우물 물을 양동이에 담아서 이고 오고 했는데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감나무를 우물가에서 바라보는 것은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바로 맞은 편 집의 마당 안에 높이 서 있는 잎이 무성한 감나무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접는다. 그 위로 푸른 하늘이 노스텔지어처럼 걸려 있다. 사계절의 변화와 하루의 날씨를 감나무와 그 위에 걸려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읽는다.
풋감을 푸른 전구들처럼 달고 있던 감나무는 가을을 지나면서 바알갛게 익어 수많은 전구알처럼 밝다. 앞집 주인의 손길에 익은 감들이 떨어지고 저 푸르고 무성한 잎을 흙에 내어 주고 침묵 속에서 인내의 겨울을 날 것이다.
아무 수식어도 달지 않고 빈 몸으로 서 있는 나목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삶에 대한 겸허함을 생각케 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언제까지고 침묵을 지키며 죽은 듯 서 있는 것 같았던 나무에 기적처럼 두꺼운 나무 껍질을 뚫고 나오는 신비의 연두빛 잎새.
그 아름답고도 눈물겨운 탄성의 연두빛 잎새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점점 날이 갈수록 하루가 다르게 잎은 점점 커져 가고 나중에는 온통 연두색 물결로 반 공중에서 출렁이고 있는 모습을 또 발견 할것이다. .
이제 십일월...유난히 올해엔 잦았던 비와 태풍으로 인해서 쨍쨍한 가을볕을 많이 쬐지 못한 탓인지 아직까지도 감잎사귀는 짙푸르다. 곧 주인의 손길에 의해 떨어질 잘 익은 감알들. 나무는 이제 열매를 내어주고 잎도 흙에 내어준 뒤에는 조용히 다가오는 겨울 속에서 침잠할 것이다. 나무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겨울을 나는 법을 안다.
자신을 수식하던 그 모든 허영의 옷들을 아무렇지도 않은듯 내어 주고 빈몸,빈손으로 겸손히 겨울을 나는 나무... 나는 감나무의 인생의 사계절을 이렇게 가까이서 지켜본다. 감나무를 지켜보면서 또한 우리 인생의 사계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지금 어느 계절에 서 있을까. 나는 나의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까. 감나무를 보며 감나무의 말없는 침묵의 언어에 귀를 기울인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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