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무섭다." 언뜻 들으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칼은 뽑혀 있어야 위험하고, 칼집에 담겨 있을 때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두려운 것은 칼날의 날카로움 그 자체보다, 칼집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침묵의 위용이다.
칼집 속에 든 칼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는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응축되어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펜 역시 마찬가지다. 펜은 사람의 살을 베지 않고 피를 흘리게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펜 끝에서 나온 한 줄의 글은 때로 누군가의 명예를 무너뜨리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며, 사회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펜은 가만히 쥐고 있을 때보다 함부로 휘두를 때 비로소 무서운 무기가 된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손쉽게 내놓을 수 있는 오늘날, 이 명제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과거 언론인이나 작가, 정치인 등 일부에게만 주어졌던 발언의 영향력이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모두에게 열렸다.
문제는 권한과 영향력이 커진 만큼 책임의 무게도 함께 늘어났다는 점이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처럼 번지고, 분노에 찬 한 줄이 누군가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펜은 칼보다 약해 보이지만, 그 파급력은 훨씬 강하고 멀리 간다. 칼은 한 사람을 겨누는 데 그치지만, 글은 수만 명에게 순식간에 다가간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과 글로 입은 정신적 상처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삶을 흔든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절제'다.
쓸 수 있다고 해서 모두 써야 하는 것은 아니며, 알고 있다고해서 전부 뱉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다는 이유로 상대를 함부로 베어서는 안 된다. 날카롭게 비판하되 사람 자체를 공격하지 않고, 잘못을 지적하되 인격을 짓밟지 않아야 한다. 진실을 말한다는 핑계로 불필요한 상처를 남겨서도 안 된다.
칼을 쥔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칼을 휘두르는 기술이 아니라 '언제 칼을 뽑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절제력이듯, 펜을 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앞서 '왜 써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분노나 공격심 때문인지, 아니면 오류를 바로잡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인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칼집이 칼날을 보호하듯, 절제는 펜을 보호하고 글쓴이의 품격을 지켜준다. 세상에는 목소리 큰 이들이 넘쳐나지만, 진정 강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힘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대학생이 초등학생의 철없는 행동에 매번 힘으로 맞서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펜과 칼보다 진짜 무서운 것은, 그것을 쥔 사람이 자신에게 쥐어진 힘의 무게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다. 오늘 우리가 들고 있는 펜은 누군가를 해치는 흉기가 될 수도, 어두운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도 있다.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글을 쓰는 이에게 가장 위대한 힘은 빼어난 필력(筆力)이 아닌 멈출 줄 아는 절제(節制)일지도 모른다.
쓰지 않아야 할 때 멈추는 정숙함, 그리고 꼭 써야 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써 내려가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펜을 쥔 이가 가져야 할 진정한 책임이자 사명이다.
오늘 밤도 칼과 펜을 언제, 어떻게 뽑아야 할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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