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김병철 기자] 도시는 행정기관의 계획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웃과 해결책을 논의하며, 필요한 사업을 직접 선택할 때 도시는 비로소 시민의 삶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안산시가 관내 25개 동에서 36일간 진행한 2026년 주민총회는 단순한 지역행사를 넘어 시민이 마을의 미래를 함께 설계한 주민자치의 현장이었다. 역대 최대인 2만5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안산형 주민자치가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산시는 지난 6월 20일 상록구 사동 주민총회를 시작으로 7월 25일 단원구 신길동 주민총회까지 25개 동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올해 주민총회는 ‘주민의 목소리를 모아, 마을의 퍼즐을 완성하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주민들은 2027년도 자치계획과 주민참여예산사업을 함께 논의하고 사전투표와 온라인투표, 현장투표를 통해 추진 우선순위를 직접 결정했다.
올해 주민총회에서 제안된 사업은 자치계획사업 90여 건과 주민참여예산사업 130여 건 등 모두 220여 건이다. 에너지 자립을 위한 주민 인식 개선, 어린이·청소년 문화체험 프로그램, 취약계층 마음건강 지원, 주민 주도의 마을환경 개선, 주민 화합을 위한 문화예술축제, 지역 자연자원을 활용한 건강증진 프로그램 등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의제가 폭넓게 다뤄졌다.
제안된 사업에는 주민들이 생활 현장에서 느낀 고민과 바람이 고스란히 담겼다. 아이들이 가까운 곳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마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마음까지 살피는 공동체, 주민이 직접 깨끗한 생활환경을 만들어 가는 지역, 이웃이 함께 만나고 소통하는 마을을 만들자는 요구다.
이처럼 주민총회는 행정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생활 속 문제를 시민의 시선으로 찾아내는 통로다. 행정이 사업을 정한 뒤 주민에게 설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이 먼저 의제를 발굴하고 토론하며 우선순위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민은 행정서비스를 제공받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정책 주체로 참여한다.
안산형 주민자치회의 성장세는 주민총회 참여 인원의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참여자는 2022년 1만3천318명에서 2023년 1만6천353명, 2024년 1만9천337명, 2025년 2만2천598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올해는 2만5천여 명이 참여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22년과 비교하면 약 1만1천700명이 증가한 것으로, 주민자치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신뢰가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참여 인원이 해마다 늘어난 배경에는 안산시와 주민자치회의 꾸준한 노력도 있었다. 시는 사전투표와 온라인투표를 병행해 시민들이 시간과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총회 당일 현장을 찾기 어려운 직장인과 청년, 이동에 제약이 있는 시민에게 참여 기회를 넓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다.
청소년과 청년, 직장인, 다문화가정,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확대하려는 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안산은 산업도시이면서 다문화도시이고, 원도심과 신도시가 함께 성장하는 도시다. 지역별 인구구조와 생활환경이 다른 만큼 여러 계층의 목소리를 고르게 담아내는 것은 주민자치의 대표성과 포용성을 높이는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이 자신이 살아갈 마을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들이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는 경험은 미래의 시민 역량을 키우는 기반이 된다. 다문화가정과 장애인, 고령층의 참여 확대 역시 서로 다른 주민이 지역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포용도시 안산을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올해로 전면 시행 5년 차를 맞은 안산형 주민자치회는 제도 도입 단계를 넘어 성숙한 주민자치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총회 개최가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고 주민 스스로 지역 문제를 찾고 해결 방안을 제안하는 일상적인 자치문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총회의 가장 큰 가치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 있다. 주민들은 한정된 예산 가운데 어떤 사업이 더 필요하고 시급한지를 함께 고민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조정하며 공동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경험은 지역사회의 신뢰를 높이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한다. 주민총회는 투표를 넘어 마을의 문제를 이웃과 함께 풀어 가는 민주주의의 학습장이자 실천의 장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선택한 의제가 정책과 예산을 통해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일이다. 안산시는 주민총회 일정과 제안사업에 대한 사전 홍보를 강화하고 온라인 참여를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의제 발굴 단계부터 주민 참여를 확대해 주민 제안이 정책과 예산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도 구축할 방침이다.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행정이 전문적으로 검토하고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발전시킨다면 주민총회의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관련 부서가 사업의 법적·재정적 조건을 주민에게 설명하고 필요한 부분을 함께 보완하는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주민의 현장 경험과 행정의 전문성이 결합될 때 실효성 있는 마을사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선정된 사업의 추진 과정과 결과를 시민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안된 사업 가운데 어떤 사업이 예산에 반영됐고, 언제부터 추진되는지를 주민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 이유와 가능한 대안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러한 환류 과정이 안정적으로 마련된다면 시민의 참여는 더 큰 신뢰로 이어질 것이다.
동별 우수사업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 지역에서 성과가 확인된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마음건강 지원사업, 마을환경 개선사업을 다른 동의 특성에 맞게 적용한다면 주민총회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발굴하는 실험장이 될 수 있다. 주민의 아이디어가 한 마을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안산시 전체의 정책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원을 활용한 사업 역시 안산만의 주민자치 모델을 만드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안산은 대부도와 시화호, 갈대습지 등 다양한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업과 문화, 다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다. 각 동의 특성과 자원을 주민이 직접 발견하고 사업으로 발전시킨다면 지역 정체성을 살린 차별화된 자치계획이 가능하다.
주민총회를 통해 발굴된 공동체 사업은 도시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된다. 에너지 자립과 환경 개선, 취약계층 지원, 건강증진, 문화예술 활동은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모두 시민의 삶의 질과 지역 공동체의 회복력을 높이는 과제다. 주민들이 지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이 쌓이면 행정에 대한 의존을 넘어 주민과 행정이 함께 책임지는 협력적 도시 운영이 가능해진다.
이민근 안산시장은 주민들이 제안한 의제에는 마을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민의 바람이 담겨 있다며 정책과 예산에 충실히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시민이 원하는 답은 현장에 있다는 믿음으로 주민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은 주민자치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지역의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곳에서 매일 살아가는 주민이다. 행정이 시민의 경험과 의견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을 때 사업의 실효성은 높아지고 불필요한 시행착오는 줄어든다.
이민근 시장과 안산시가 주민총회를 시민 중심 행정의 중요한 축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안산형 주민자치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시장과 공직자는 주민총회에서 나온 제안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주민자치회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지속해서 모아야 한다. 안산시의회도 주민이 선택한 사업이 예산과 제도에 합리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살펴야 한다.
주민총회는 주민자치회만의 행사가 아니다. 주민과 행정, 의회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 함께 완성하는 지역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주민은 의제를 제안하고 선택하며, 행정은 이를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의회는 예산과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한다. 세 주체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할 때 주민의 아이디어가 실제 지역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안산시가 추진하는 온라인 참여 확대도 주민자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시민이 주민총회 일정과 제안사업을 쉽게 확인하고, 의견 제시와 투표에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된다면 참여 기반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선정된 사업의 검토와 집행 상황까지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면 정책의 투명성과 시민의 신뢰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온라인 참여가 현장 토론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주민총회의 강점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웃이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고 공동의 결론을 찾아가는 데 있다. 온라인 참여의 편리함과 현장 숙의의 깊이가 조화를 이룰 때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면서도 의사결정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앞으로 안산형 주민총회는 참여 인원 확대와 함께 의제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단기적인 문화행사뿐 아니라 보행안전, 돌봄, 주차, 환경, 고령화, 청소년 활동공간 등 주민 생활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 여러 해에 걸쳐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중장기 자치계획으로 관리하고, 성과가 확인된 사업은 지속해서 보완해야 한다.
주민자치회 위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지원도 중요하다. 의제를 구체적인 사업으로 발전시키려면 지역조사와 회의 진행, 갈등조정, 예산 편성, 성과평가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주민자치회가 행정의 사업을 대신 수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주민의 의견을 모아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대표기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36일간 이어진 안산시 주민총회는 시민들이 도시의 주인임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주민들은 자신이 사는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말했고, 이웃의 의견을 들었으며, 투표를 통해 공동의 선택을 만들었다. 220여 건의 제안에는 더 안전하고 따뜻하며 활력 있는 안산을 만들고자 하는 시민의 희망이 담겨 있다.
이제 안산시는 주민이 건넨 제안을 정책과 예산으로 연결해 시민의 참여에 응답해야 한다. 주민이 선택한 사업이 마을의 변화로 이어지고, 그 변화를 경험한 시민이 다시 주민총회에 참여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져야 한다. 제안과 결정, 집행과 평가가 끊임없이 이어질 때 주민총회는 안산의 미래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자치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
2만5천여 명의 시민이 함께 맞춘 마을의 퍼즐은 안산시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주민의 참여와 행정의 책임, 공동체의 연대가 있다. 이민근 시장이 강조한 현장 중심 행정이 주민총회를 통해 구체화되고, 주민의 작은 제안 하나가 도시의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시민이 말하고 행정이 듣고, 다시 시민과 함께 실행하는 안산형 주민자치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모델로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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