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미래지향적 성장을 위한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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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미래지향적 성장을 위한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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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등 석학 5인의 '기독교인을 위한 메시지'

^^^ⓒ 시흥교회^^^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서울 금천구 소재 시흥교회가 100주년이 되어서 창립을 기념하는 포럼(forum)을 개최했다.

첫날 강의에서 이만열(국사편찬위원장)은 시흥 교회가 보수성향의 교회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의 교회들이 거의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시흥교회 역시 100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진보성향보다는 보수적인 교회였다는 것을 말하였는데 그것에 대해서 공감한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된 것이 120여 년 전(1880)이라고 하면 시흥 교회가 100년 전에 설립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랑거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흥교회가 과연 무엇을 위해 일했나를 생각해 보면 크게 부각시킬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 점을 이만열은 다만 보수성향의 교회라는 점으로 지적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어서 외세의 침입을 수도 없이 받았다. 지금까지 무려 1700번에 가까운 외세의 침범을 받았지만 우리를 굳건하게 지키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종교의 힘이 컸었고, 특히 기독교는 한국의 지주적인 역할로 많은 일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기독교는 우리의 악습이었던 상반문화를 깨는 원동력이 되었고 민초들의 자각운동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민족독립을 위해서 일어났고 해방 후에는 식민지적 잔재 청산을 했으며, 전쟁 속에서는 하나로 뭉치려는 노력과 전쟁의 아픈 상처를 달래기 위한 수많은 일들을 했다. 시흥교회 역시 그러한 점에서는 다른 교회와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에 불구하고 결과론으로 보면 전쟁이라는 큰 틀이 한반도를 두 동강이로 만들었고 그 속에서 종교의 자유마저도 심하게 침해받게 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북한은 더욱 심해서 지금도 기독교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남한의 많은 교회들이 북한을 위한 선교사업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흥교회는 그러한 점에서도 매우 미흡하다.

스나이더 전 주한 미대사는 "한국은 북한이라는 무거운 짐을 평생 등에 지고 가야한다."는 점을 말한 적이 있다. 독일 역시 통일을 이룩한 후에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하고 있다. 서독과 동독의 화폐가치가 6:1이었던 것을 1:1로 하면서 통일에 대한 비용을 엄청나게 쏟아 붓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그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독은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동독지역에 지원하지만 그것을 받는 쪽은 항상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어서 양쪽이 불만을 토로하고 차라리 분단상태가 더 좋았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그와 같이 늘 부족한 것에 대한 원인은 이데올로기의 이념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경제적 비용부담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러한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게 된다.

국토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진정한 통일을 이룩하려면 이데올로기의 통일, 정치경제의 통일, 사회문화의 통일을 가져와야 하는 점이다. 그러한 점들 중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국토의 통일에 대비한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 힘을 기울이는 측면을 강조하게 되고, 경제지원도 중요하지만 선교사업이나 구제 사업에 더 치중해야 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점을 인정하고 보면 우리를 굳건히 지키기 위한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고 북한을 위한 선교사업이 매우 중한 시점에 와있다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이만열은 이번 포럼에서 시흥교회의 정체성과 보수성향을 지적했다. 다른 교회 역시 그러하다고 자답할 수 있지만 앞으로 시흥교회가 더 많은 일을 하는 참다운 교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존재의 가치성 보다는 하나님의 중심사업을 주도적으로 하면서도 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일된 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사업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둘째 날, 손봉호의 '기독교인의 사회윤리'에 대하여

둘째 날 손봉호(동덕여대 총장)는 '기독교인의 사회적 윤리'라는 주제 발표에서 먼저 <베드로전서>의 한 구절(2:2-12)을 읽고 시작했다. 그는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를 말하고 "좋은 교회에서 좋은 교인이 나오고, 나쁜 교회에서는 절대로 좋은 교인이 나올 수가 없다."는 논리적 말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여러 가지 덕목 중에서 도덕성, 정직성, 공정성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정직운동'을 펴나가자는 말을 한 것이 그의 주제발표 요지다.

그가 전제한 말 중에서 도덕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인륜을 성립시키는 원리로서 모세의 '십계명'은 하나님이 내려준 도덕률이다. 하지만 칸트는 도덕에 대해서 자연법칙과 마찬가지로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으로 보아서 실천이성자체라고 생각했다.

도덕주의자들은 도덕을 다른 어느 것보다 최고의 우위로 보는 것으로 부도덕중의에 반대하여 도덕률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에서 열성적으로 도덕적 정진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잘못하면 종교를 부정하고 도덕의 우위를 존중하는 경향에 빠지게 도리수가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정직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덕목으로서 정직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작은 일에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습관에서 오는 것이며 그것은 나중에 더 큰 거짓으로 변하여서 감당하기 어려운 죄를 짖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러운 때가 끼고 지저분한 먼지가 앉기 쉽다. 시기, 질투, 분노, 탐욕, 교만, 절망, 저주, 모두가 사람들의 마음에 끼는 더러운 때가되고 먼지가 된다.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때와 먼지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속담에 '뿌린 대로 거두고 좋은 씨앗을 뿌리면 좋은 열매를 얻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근본을 모르고 좋은 수확을 얻으려고 해서 문제가 된다. 수고하지 않고 거짓으로 씨를 뿌리고 그 수확을 얻으려고 하면 위선이 된다.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면 마지막 단추는 낄 곳이 없다."는 말을 했다.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을 했다. 이러한 말들 모두가 정직으로부터 나온다. 정직하지 못하면 시작부터 그른 일을 하게 되고 마지막 마무리도 잘못되게 마련이다. 거짓말과 속임수, 욕지거리, 중상모략, 일구이언은 화의 근원이 된다.

거짓말과 허위는 일시의 효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절대로 오래가지 못한다. 거짓말쟁이라고 한번 낙인이 찍히면 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해서 설 땅이 없어진다. 따라서 거짓은 기독교인의 적이요, 참은 반대로 하나님의 친구이다. 기독교인은 허위를 버리고 참과 정의의 반석 위에서 서서 사랑으로 사회에 봉사하여야 한다.

또한 그가 말한 공정성이란 공평하고 정대함을 말한다. 어떤 일이 공정하지 못하면 불평이 생기고 분열이 생긴다. 누구든지 노력하지 않고 얻은 이익은 불로소득이 되어서 공정하지 못한 일이 된다.

어떤 일이 지나치면 반드시 실수를 하고 해악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는 것이 지혜이고 중용이다. 남을 끌어내리고 자기 이익을 취하는 행위도 지나침에서 생긴다. 중용은 그러한 지나침을 억제하게 하는 것으로서 적시성(適時性)과 적소성(適所性)을 주어서 공정성과 조화를 가져다준다. 공정성이 없는 사회는 망하고 부패한 국가는 망한다.

정직한자의 몫이 부당한 자의 몫보다 작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목소리가 큰 삶이 이기고 열심히 일한 자의 몫이 적게 되는 사회라면 존재가치가 없는 국가이다. 인간이 사리사욕에 노예가 될 때에 절대로 공정한 판단과 올바른 처사를 할 수가 없다.

청렴성이 있어야 공정한 일을 할 수가 있고 자기를 높이지 않아야 높임을 받을 수가 있다. 공평한 마음을 가져야 세상의 모든 일이 명명백백해 지고 어느 쪽도 불이익이 없는 사회가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공정성과 청백리 정신이다.

손봉호는 한국의 기독교인이 전체인구의 20%가 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지수가 세계적으로 높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는 없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사회의 부패지수를 끌어내리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그 방법은 간단하나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말을 했고, 나부터 솔선하고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큰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실천해야 한다. 수평적, 수직적 협동관계를 가져야 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진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상호이익을 주지만 거짓은 서로를 망가지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손봉호는 기독교인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거시적이고 명시적이며 거창한 것보다는 우선 시행하기 쉬운 것부터 해야함을 말하며,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정직운동'을 펴나가자고 강조했다.

셋째 날, 이동휘의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대하여

이동휘(전주 안디옥 교회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행1:6-8)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을 들어 선교의 종류와 방법 및 그 중요성을 말했다. 그는 선교 장소로 가정, 직장, 길거리에 대한 선교와 해외 선교를 말하고, 물질적, 문화적 선교에 대해서 언급했다.

선교의 사전적 의미는 종교를 선전하여 전도함을 말하는 것으로서 성도라면 누구든지 그 의미와 실천방법을 알고 있는 일이지만 행동으로 보여 주기는 쉽지 않다. 이동휘 목사가 그 점을 설명한 것은 긍정적이다. 근세 해외 전도는 영국의 침례파 케어리 목사가 인도선교를 한 것이 처음이고, 그 후에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에 의해서 해외선교 열기가 고조되었다.

한국은 1884년 미국 북장로교의 알렌 선교사, 그 이듬해에 아펜젤리와 언더우드 선교사 등의 활동으로 개신교 전도의 문이 열렸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선교활동과 아울러 교육, 계몽, 여성지도, 고아원 설립운영 등을 통해서 우리 나라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교회의 역사는 전도의 역사'라고 말한다. 좁은 의미의 선교는 비신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게 전도하는 일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선교활동을 통해서 사회봉사를 하거나 교육활동을 하는 일이다.

독일에서는 사회복지 활동을 '국내에서의 전도(innere Mission)'라고 말하고 사회봉사나 교육활동을 하는 것을 선교로 본다. 미국의 선교사인 K.S. 라투레트가 쓴 <그리스도교 선교사(1937-45)>에 의하면 전도활동은 대개 성립이래 지금까지 7기에 걸쳐서 각각 그 시대상에 따라서 발전기, 후퇴기가 교차하면서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늘 중심에 서있는 문제는 그리스도의 지상목표인 '전 인류의 구원'이다. 선교 역시 시대나 장소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사랑의 실천'이 중심과제이다. 따라서 학문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전도, 교육전도, 구휼(救恤)전도, 맹인전도, 의료전도, 교도소전도, 군경전도, 오지나 낙도전도 등을 하나님의 과업으로 전도하는 일에 주력하게 된다.

넷째 날 조홍식의 '교회 사회복지를 제대로 실천하기'에 대하여

조홍식(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교회의 5가지 역할을 예배, 교육, 봉사, 선교, 성도의 교제라고 전제하고 그 바탕 위에서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이웃에 대한 봉사를 충실히 실천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바람직하지 못한 교회는 개별교회의 교세 확충, 시설 확충, 물량적 성장을 우선적으로 하는 교회라고 말하고 이웃을 위한 사회복지 활동을 위해서 수입대비 복지예산을 모든 교회들이 십일조 방식으로 채택하도록 권장했다.

한국의 교회가 쓰는 년간 복지사업 예산은 평균적으로 전체 수입의 7%에 미치지 못함을 언급하고 10% 이상을 복지사업에 사용할 것을 언급하고 우리 시흥 교회 역시 이에 미치지 못하면 그러한 예산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복지사업의 실천 방법으로 먼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수요욕구조사를 실제로 해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실천 가능한 것으로 예산범위를 고려하여 추진하고, 성공을 거두면 점진적으로 확대해야함을 제시하고, 물량적으로 큰 교회보다는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될 것을 제시했다.

도시의 대형교회가 실천할 수 있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노숙자 쉼터, 직장알선, 실직가정지원센터, 어린이 집 운영, 청소년 유해환경 감시와 상담 및 신문제작, 탁아시설, 근로청소년을 위한 야간학교, 장학사업, 가출아동 공동체 건립 및 운영, 소년소녀 가장 돕기 캠페인, 장애인 그룹 홈 운영, 노인관련 출판물 제작, 농촌의료봉사, 시민대학, 생활문화상담 등이 있음을 언급했다.

또한 한국교회들이 복지사업을 추진하는 유형별로 교회가 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추진하는 전문형, 자신의 교회에서 전문적 또는 비전문적으로 추진하는 유형, 교회가 직접추진하지 않고 교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추진하는 유형으로 구분하고 복지사업이 반드시 물질적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 성도들이 얼마나 사랑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작은 교회에 대해도 언급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실천하기 위해서 함께 뭉친 회중 집단이 모여서 사랑을 실천하는 장소이다. 물량적으로 큰 것이 좋은 면도 있지만 교회는 네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는 곳이 되어야함을 강조했다.

교회가 진정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교회와 교인수의 급증이나 교회 건물의 확장 등 눈에 보이는 양적 성장만 가지고 교회가 온전히 성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이 같이 일어나야 한다. 성경에서는 교회성장이란 키도 자라고 지혜도 자라는 상태(누2:52)을 가리키며, 이 때에 비로소 교회는 성숙한 교회로 사명을 다하게 된다.

또한 C.W. 윌리암스는 교회의 생명력은 교회의 건물이 커지거나 교인수가 많이 늘어나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그 생명력은 그들 속에서 역사 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 순수한 신앙으로 응답하는 신앙사건(faith event)에 있으며 여기서부터 교회성장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교회성장이란 질적, 양적으로 구분하여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조화되어 이해될 때에 가능하며 신앙사건과 조직, 기구라는 두 측면이 서로 상호관계 속에서 공존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작은 교회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런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선교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선교가 개인의 구원과 교회확장의 수단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1960년 이후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신학'이다. 선교는 인간과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근원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주장해서 선교개념이 교회확장수단으로 의미되었던 종전까지의 개념을 부정하고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선교 도구이다.'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생각하게 되었다.

또 다른 편으로는 교회의 존재 이유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불리 움을 받은 선교공동체가 되도록 이끄는 역할이지 주로 선교의 사명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 복음 사업의 문제는 학문적 연구가 아니라 어떻게 실천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그러한 예를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장애인 켈러(H.A.Keller)이지만 그녀는 은혜를 입은 만큼 남을 위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맹농아로서 삼중고의 성녀라고 불린다. 생후 19개월에 큰 열병을 앓고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었다. 앞을 가리고 말못하며, 듣지도 못하고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통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못하고 누워 있다가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굴의 정신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도했다.

그녀는 7살에 가정교사 설리번의 헌신적인 교육지도와 본인의 불굴의 투지로 장애를 극복하여서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바드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하여 세계 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농아자로 1904년에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그녀의 노력과 정신력은 많은 세계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다양한 선교활동으로 빛의 천사라고 불려졌다.

미국전역과 해외를 돌며 신의 사랑, 섭리, 노력을 역설하였다. 우리 나라에는 1937년에 방문했었다. 그의 저서로는 <나의 생애> <암흑 속에서 벗어나> <나의 종교> <신앙의 권유> 등이 있다. 그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맹농아자의 교육과 사회복지시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등, 맹농아자 복지사업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테레사 수녀는 하나님의 복음을 세계에 가장 많이 전한 사람 중에 하나다. 그는 1910년에 태어나 18세 나이로 수녀회에 들어가 20년 동안 교사로 일하다가 인도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사랑의 선교자회를 만들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집, 고아의 집, 나병구제 활동 등의 시설을 인도 각지에 개설하고, 죽을 때까지 오직 배고프고 굶주리며 갈곳 없는 생명들을 보살피는 사회봉사 일을 죽을 때까지 했다.

이들처럼 하나님의 복음 사업은 실천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 이론적, 학문적 연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남을 네 이웃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를 위한 새로운 제안들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은 시흥 교회가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진보성향보다는 보수적인 교회였다는 것을 말하고 향후 더 많은 일을 하는 참다운 교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존재의 가치성 보다는 하나님의 중심사업은 물론이고, 선교사업에 주력하면서 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일된 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사업에 앞장서야 함을 말했다.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은 "좋은 교회에서 좋은 교인이 나오고, 나쁜 교회에서는 절대로 좋은 교인이 나올 수가 없다."는 논리적 말로 시흥교회가 좋은 교회지만 더 좋은 교회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말하고, 우리 시흥 교회가 사회부패를 척결하는데 앞장 서줄 것을 당부하며, 이에 대한 실천방안으로 '정직운동'을 펴나가자고 제안했다.

이동휘 전주 안디옥 교회 목사는 선교의 중요성과 실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선교방법들을 사례별로 설명함으로써 참여 성도들의 선교에 대한 총괄적 이해를 재인식시키는 성과를 주었다.

조홍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웃을 위한 사회복지 예산기준으로 십일조 방식을 채택할 것과 시흥교회가 이미 그것을 초과하고 있다면 어느 교회보다도 많이 배정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복지사업의 실천 방안으로 먼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수요욕구조사를 실제로 해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실천 가능한 것으로 예산범위를 고려하여 추진하고 성공을 거두면 점진적으로 확대해야함을 제시하고 물량적으로 큰 교회보다는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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