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고 싶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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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고 싶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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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이거나 햇살이 하늘거리는 오후가 되면 주체할수 없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그런 날엔 재래시장과 다를 바 없는 근처 야채시장을 간다.

사람들의 발길에 너덜거리는 채소잎과 죽처럼 퍼져 있는 신문지는 숨가쁜 새벽의 풍경을 말해주는 듯 하다. 질퍽대는 발밑의 촉감을 다시는 느껴 볼 수 없을 것처럼 마냥 돌아다닌다. "미나리 한 단이 얼마에요?" "고구마순은요?" 순간 얼굴가득 번지는 기쁨에 그만 사고 만다. 그럴 때면 풋잎에서 느껴지는 속살거림이 있다.

풀잎냄새 같기도 하고, 비릿한 바다냄새 같기도 하고, 흙냄새 같기도 한 바람이 불어와 내 앞에 서면 난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먼 기억의 저편에서 흘러나온 구름 한 조각이 떠 있는 기분이다. 하얀 머리수건을 쓰고 입가에 늘어진 또아리를 물고 시장을 가던 할머니의 종종걸음이 세월을 건너 뛴 것만 같은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일정한 수입이 없어 할머니는 주로 부추를 길러 시장에 내다 판 돈으로 국수며, 밀가루, 쌀, 알사탕까지 사 오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린 동구 밖까지 나가 기다리곤 했다.

가끔은 할머니를 도와 여리고 부드러운 부추의 줄기를 칼로 싹둑 자를때면 밋밋해진 부추밭이 어쩐지 허전한 듯 하여 괜시리 하얀 재를 흩뿌리기도 했다. 부추는 타고 남은 재를 거름으로 뿌려 주어야만 잘 자라는지 마당 한 곳에 재를 모아 두곤 했다. 감자씨를 심고도 마찬가지였다. 하얀재를 손에 가득 담아 훌훌 뿌려줄 때마다 감자밭은 오선지가 되었다.

고추가 빨갛게 익을 때면 익은 고추를 따내느라 정수리가 빨갛게 물들 지경에도 쏟아지는 따가운 햇빛이 즐겁기만 했다. 고추가 하얗게 늙어 버릴 때까지 고추가지도 우리에겐 장난감 구실까지 해 주었다. 벌어진 가지를 이리저리 구부려 집을 만들기도 하고 동물모양을 만들어 누가 누가 잘 만들었나 내기까지 했다.

감자꽃이 하얗게 피고 줄기가 땅 밑을 차고 쑥쑥 올라 올때면 우린 호미를 들고 감자밭으로 가 조롱조롱 매달린 감자를 캤다. 저녁을 하고 온기가 남은 아궁이에 감자를 묻고 한 시간쯤 지나면 알맞게 익은 감자가 되어 나온다. 파실파실한 감자의 구운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저녁을 물리고 출출할 때쯤 꺼내어 먹으면 간식거리로선 그만이다.

머루며 산딸기, 망개까지 들로 산으로 노루마냥 뛰어다녔던 그곳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린다. 망개를 따다가 실로 엮어 목걸이와 팔찌도 만들었고 감꽃이 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담장 밑에 하얗게 떨어진 감꽃의 아름다움을 그 때 처음 알았고 쌉사름한 감꽃의 뒷맛은 아홉 살 소녀의 가슴을 달뜨게 했다.

연산홍 꽃잎의 잔잔한 떨림이 아직도 미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얼마전 여주 가는 길에 보았던 때문일까. 정자앞에 피어 있는 그 꽃은 바람에 흩날려 연못에 간혹 떨어 질 때면 잔잔한 물 표면을 흔들어 놓곤 했다.

구미를 지나 대구를 들어 설 때면 연잎으로 뒤덮인 못을 볼 수 있는데, 할아버지가 계시던 정자 앞 연못에도 여름이면 넓은 연잎이 연못을 뒤덮곤 했다. 심청이가 금방이라도 연꽃 봉우리 속에서 환생이라도 할 듯이 피기 시작하면 어느새 연못은 연꽃밭이 된다.

비가 올 때면 딱히 우산이 없던 때라 연잎을 뚝 떼어 뒤집어 쓰면 우산이 된다. 또르르 구르는 빗방울이 신기하여 비가 오지 않아도 연못물을 고무신에 퍼 담아 놓고 연신 빗방울을 굴렸다.

또 연꽃속의 연밥은 고소해서 땅콩을 먹는 만큼 맛있다. 쇠꼴을 베러 가는 것도 즐거운 놀이중의 하나다. 소를 먹이지 않는 우리집이지만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늘 함께였다.

봄이면 쑥을 캐어 말려놓고 2월에 쑥떡을 해먹기도 했다. 지금은 쑥도 귀하기만 하다. 논둑에 밟히는 것이 쑥이었는데 지금은 농약 때문에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햇살 가득 내려앉은 도랑물의 살살거림도 푸른 보리밭 속에서의 숨바꼭질놀이도 다시 하고픈 놀이 중에 하나다.

마음속에 자리한 그곳은 꿈과 낭만을 실어다 준 영원한 고향인 셈이다. 다시는 그때를 볼 수 없지만 언제던지 볼 수 있는 것도 내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풍경소리처럼 들려 오는듯한 그곳의 소리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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