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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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투르니에의 두 산문집 <짧은 글 긴 침묵> <예찬>

^^^▲ <짧은 글 긴 침묵> 표지^^^
미셸 투르니에의 새로운 산문집 <예찬>은 <짧은 글, 긴 침묵>의 속편에 속한다. 그의 산문집 <예찬>에서도 <짧은 글,긴 침묵>에서 볼 수 있던 그의 특유의 글쓰기와 색깔과 향기,철학과 위트,깊은 사유와 통찰력 등이 나타난다.

"수많은 젋은이들이 그랬듯이 나도 패거리와 부대 편성,군대식 암호같은 것을 몹시 좋아했다. 그러다가 늙어가면서 나는 그런 모든 것을 뒤흔들어 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집단이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들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고독,독립, 그리고 창의에 필연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위험 부담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졌다. 그리하여 마흔 살에 나는 책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책들을 말이다."

미셸 투르니에는 마흔살부터 글 쓰기로 작정했고, 그의 나이 43세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으로 늦은 등단을 했다. 그 해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을 정도로 소설 역량이 뛰어나 등단과 동시에 프랑스 문단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1924년 12월19일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전공했다. 질 들리즈, 미셀 푸코등과 함께 철학을 공부하면서 쌓은 투르니에의 철학적 소양은 그의 인생과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현재 76세의 노인이다. 교외의 끝이며 시골의 시작인 슈와젤 마을의 사제관을 수리해서 고독 속에서 칩거하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그렇지만 일생에 걸친 배움, 경험, 암중모색의 탐구, 인내 같은 것도 중요하다. 처음엔 천부적으로 받은 게 있고 다음엔 그걸 가지고 우리는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짧은 글, 긴 침묵>에서 '찬미'에 관한 짧은 글이 책의 내용 가운데 나온다.

"…왜냐하면 찬미는 사랑보다도 더 위험한 정념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찬미는 근원적인 성운과도 같아서 그것이 훗날 노쇠하거나 차가와지면 사랑이 되어 나타날 수도, 우정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혈기 왕성하고 단순하고 설익은 열정으로 찬미는 빛나고 풍요로운 구원일 수도 있지만, 부패하고 살인적이고 파괴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찬미의 감정이 그 어떤 감정보다도 우세한 나머지 생명을 향한 충동속에서 사랑과 우정을 앞질러 덮어버리는 것이다."(108쪽)

한편, <예찬>가운데 나오는 '예찬'에 관한 글은 이렇다.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의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정은 함께 예찬하는 가운데서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미셸 투르니에는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전전, 전중, 전후를 다 겪은 세대다.

"그 엄청난 시련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한심한 멍청이로 본다"고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짧은 글, 긴 침묵>에서 '밤'에 관한 글 가운데 있는 대목 가운데 이런 글이 있다.

"내 밤의 고독은 어떤 엄청난 기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잠든 자의 기대인 동시에 깨어 있는 자의 기대…이밤, 내 잠든 육체를 스치는 날개짓과 은밀한 박동이 느껴진다. 내 잠자리 속으로 새들이 날아드는 것인가…어젯밤도 잘 잤다. 나의 불행도 잠이 들었으니까."

여기서는 그의 고독한 삶의 한 단면을 엿볼수가 있다. 일체의 관계를 위한 관계나 가식적인 것에서 벗어나 묘지들이 주위에 있는 낡은 사제관을 수리해서 오랜 세월 칩거하며 마흔살 이후에 글을 쓰기 시작한 그의 면면이 그의 글들 가운데 녹아있다. 그가 살아왔고, 그가 겪었고 경험한 지혜와 지식,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녹아있다.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호기심과 사랑과 해학이 묻어난다.

<예찬>가운데 그는 그의 고향 마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역시 <예찬>가운데 "또다른 소제목의 글 '맹물, 혹은 2000년대의 의학'"이라는 글이 있는데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어 소개한다.

"…코트도르 지방에 있는 내 고향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일생동안 맹물은 단 한 방울도 안 마시고 백살까지 살다가 죽는다. 물은 마시라는 액체가 아니라 오로지 몸을 씻고 꽃나무를 축여주라고 생긴 것이다.

물을 마신다는 것은 전혀 유익할 것이 없는 야만적인 행동이다. 부르고뉴 지방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은 원한을 잘 품고 편협해지기 쉬운 체질의 인물로 의심받는다. 어린 시절 동안 줄곧 나는 위장을 물에 빠뜨리는 위험을 경계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는 이렇게 고향마을을 묘사하고 있는데, '맹물,혹은 2000년대의 의학' 내용 가운데 글은 이렇다.

"…내 전임자들이 선생님께 강요했던 캡슐, 알약, 주사 및 그 밖의 각종 장난과 속임수보다 더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효과죠. 맹물이라구요? 맹물의 장점이 뭔지 아세요? 맹물의 싱거움은 존재의 본질입니다.

그 나머지는 우연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포도주, 맥주, 차, 커피, 소다, 과일 쥬스 그 밖의 별의 별 것들을 다 마셔댑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마셔보는 맹물 한 잔이 얼마나 큰 충격일지는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 때 그들은 한 잔의 맹물 속에 담긴 숭고하고 본질적인 싱거움의 정수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짧은 글, 긴 침묵>과 <예찬>에서는 미셸 투르니에라는 작가의 정신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산문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생각케 한다.

저자의 말대로 '핏기없는 한 마리의 새, 반쯤만 존재하는 '새'가 읽는 이들의 심장에 내려 앉아 그 피와 영혼을 빨아들이는 행위인 독서를 통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바닥까지 다 해석되어 또 다른 독자들에게 가득한 내용으로 잉태되어 날 수 있도록 그의 글들을 통해 즐거운 독서가 되시기를!

'다리만 건너면 되는 일 그러면 당장 모험이 시작되네'(<예찬>가운데 나오는 조르주 브라상의 노래 가사)

이제 미셸 투르니에와 그의 사유와 정신이 녹아있는 <예찬>과 <짧은 글, 긴 침묵>으로의 여행을 시작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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