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집에 황소가 들어오는 꿈”은 ‘큰 부자’가 된다는 꿈의 해몽이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쓸모없던 동토(凍土)가 녹아내리면서 과거 그곳에서 볼 수 없었던 초록빛 새싹들이 솟아나기 시작하면, 많은 생산 활동이 가능해진다. ‘러시아가 멸망하지 않을 이유’의 하나가 바로 ‘지구온난화’이다. 빈집의 황소와 같은 것이다.
러시아는 서방과 끝없는 갈등에 갇히거나 곧 중국에 흡수될 것이라는 예측선(豫測線)을 넘어선 전망까지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 아시아로의 경제력 이동,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과의 관계 단절, 기후 변화, 북극 개방, 그리고 자체적인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통해 러시아는 다른 선택지를 갖게 되었다. 아시아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대중(大衆)과 정부 또한 더 강력한 러시아를 환영한다.
미국 스팀슨 센터의 임원실에서 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는 매튜 버로스(Mathew Burrows)와 덴버 대학 요제프 코벨 국제학 대학원 산하 프레데릭 S. 파디 국제미래연구소에서 지정학적 분석 부문 부소장 콜린 마이젤(Collin Meisel)은 최근 미국의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현재 러시아의 지위를 말했다.
두 기고자는 “냉전 시대의 초강대국 지위는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새로운 힘의 원천과 회복력, 그리고 핵무장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바탕으로 러시아는 국제 정치에서 여전히 막강한 역할수행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초록 새싹’들이 싹을 틔우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예고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집착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유라시아 운명에 대한 오랜 신념을 고수하고 있다. 캐나다 학자 폴 로빈슨( Paul Robinson)에 따르면, "19세기 후반부터 러시아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러시아 문화의 많은 부분에서 아시아적 뿌리를 점점 더 강조했다. 서유럽과의 관계가 압박을 받았을 때, 러시아 보수 사상의 이러한 의지는 특히 강해졌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전환’(The Pivot to the East)은 두 차례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앞서 시작됐다. 푸틴은 옐친(Yeltsin) 전 대통령이 오랜 국경 분쟁을 해결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재건하려는 노력을 지지하며, 우크라이나 남부의 크림반도 침공 2년 전인 2012년 대선 당시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서방 논평가들은 처음에는 이를 일축했지만, 점차 확대되는 동방으로의 전환은 서방의 전면적인 제재 공세로부터 러시아를 구원하는 계기가 됐다. 러시아는 단순한 지정학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함에 따라 이러한 전환이 기본적인 경제 논리에 따른 것이라 생각한다.
* 단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 강화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일방적으로 병합한 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석유 및 가스 회사 가즈프롬과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의 4천억 달러(약 569조 8,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체결한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 계약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 계약을 “획기적인 사건”(epochal event)이라고 부르며 러-중 관계를 공고히 했다.
베이징은 유럽으로 수출되던 천연가스 손실을 보상할 두 번째 ‘시베리아의 힘’ 가스 파이프라인(Power of Siberia gas pipeline) 건설을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2년 이후 양국 간 교역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과의 교역은 러시아의 주요 생명선이 되었다. 2023년 중국과 러시아의 달러화 기준 교역 규모는 2,400억 달러(약 341조 8,800억 원)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26.3% 증가했다.
나아가 2023년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46.9% 증가했다. 같은 해 러시아는 석유 및 석유 제품의 절반을 중국으로 수출했다. 특히 유럽 자동차 회사들의 이탈로 인해,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러시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러시아 엘리트들은 모스크바의 베이징 의존도를 우려하며, 여전히 서구 소비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중국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가 글로벌 사우스에서 더 큰 활동 영역을 구축한다 하더라도 러시아는 향후 10년 이상 중국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된 철도 및 에너지 파이프라인 망과 북극해 항로(NSR=Northern Sea Route)를 통해 모스크바는 중국과의 관계에 더욱 균형을 가져올 부흥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 운송 및 무역 링크
러시아의 유럽 무역이 사실상 중단된 가운데, 아시아 항구들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서부 인구 중심지로 향하는 수송망 확충이 시급하다. 러시아 시베리아 철도망의 수송량은 2024년 말 1억 8천만 톤에 달했으며, 모스크바는 2032년까지 이 수치를 2억 7천만 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작년 보고서에 따르면, 제재,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기록적인 금리로 인해 러시아 철도는 투자 계획을 대폭 축소해야 했고, 이로 인해 확장 목표 달성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상호 무역 증진을 위해 직항 수송망을 구축하고 있다.
인도 역시 러시아와의 환승 노선을 확대하고 있지만, 뉴델리는 현재 중국보다 투자 규모가 적다. 모스크바와 뉴델리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를 연결하는 블라디보스토크-첸나이 동부 해상 회랑 건설에 착수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4년부터 2029년까지 러시아 극동지역의 무역, 경제 연계, 투자에 관한 인도-러시아 협력 프로그램에 서명했다. 또 다른 계획은 이란을 경유하여, 러시아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인 남북 회랑(North–South Corridor)이다.
* 북해 항로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5,600km 해상 항로가 개발되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서방 항구로 향하는 아시아 상품의 현재 운송 시간이 거의 절반으로 단축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항로는 여름철에만 운항이 가능하다. 더욱이 서방 상인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야 이 항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 해상 경로는 풍부한 에너지 및 광물 매장량의 개발 및 운송에 활용되고 있다. 이 지역은 전 세계 미발견 석유의 13%, 천연가스 매장량의 30%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을 통과하는 상업 운송의 대부분은 “러시아 시설에서 특수 선박을 통해 일본과 중국으로 향하는 LNG(액화천연가스)”와 허가된 화물선의 석유 수송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2024년은 “북서해안(NSR)을 통해 러시아 북서부에서 베링 해협을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운송 화물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 북극의 지정학적 중요성 증가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영국 사이의 주요 해상 요충지인 GIUK 갭(Gap)으로 인해 러시아 잠수함의 순찰 및 훈련이 증가했다. GIUK는 Greenland, Iceland, United Kingdom를 말한다. 러시아는 수년간 비행장 개보수, 기지 증설, 병력 훈련, 그리고 북부 국경에 군사 방어 체계망 구축을 통해 북극 지역 주둔 확대를 우선시해 왔다. 중국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10월, 중국 해안경비대와 러시아 국경경비대는 북극에서 최초의 합동 순찰을 실시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자원 채굴, 무역, 과학 연구, 군사 훈련 등에서 ‘포괄적인 북극 협력’(comprehensive Arctic cooperation)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모두 새로운 북극 항로에 매료되어 있다. 푸틴 대통령 에게 북극 항로는 러시아 민족주의의 핵심 주제인 “인간의 자연 정복”(man conquering nature)을 상징한다. 시진핑 주석에게 북극 항로는 현재 미국 함대의 통제를 받지 않는 해상 동맥과 같다.
* 이익 담보 기후 변화
모스크바를 비롯한 우랄산맥 서쪽 러시아 대부분 지역은 이번 세기 중반까지 상당한 기온 상승을 경험할 수 있지만, 강수량이나 가뭄이 크게 감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구 동토층이 녹고 메탄이 지구 대기로 방출될 수 있다.
기온 상승은 농업 수확량과 경작지 증가를 통해 러시아의 경제 생산량을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네이처(Nature)지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중도적 기후 변화 시나리오’(middle of the road climate change scenario)에서 러시아 북서부 지역의 1인당 소득은 기온 상승으로 인해 최대 20%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결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2017년 분석과 같은 이전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해당 분석에서는 러시아 일부 지역의 기온이 1°C 상승할 때마다 1인당 경제 생산량이 몇 퍼센트 포인트 증가할 수 있다는 것들을 추정했다.
* 러시아의 재생에너지 잠재력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03년 경제적으로 회수가능한 재생에너지의 양이 연간 2억 7천만 톤 이상의 석탄에 해당한다고 추산했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재생에너지 기술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요 청정에너지 수출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매스, 수소, 태양열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에너지 소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대부분의 국가가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는 전환을 시작함에 따라, 푸틴 이후의 리더십은 재생에너지의 개발 가속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물이 있다. 에너지 혁신 및 개혁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탈탄소화 전략에는 전국적인 탄소 가격 책정 시스템이나 배출량에 대한 처벌을 위한 다른 수단이 부족하다”
러시아는 탄소 순(純) 배출량 제로 달성에 집중하면서도 재생에너지 대신 삼림의 자연 탄소 흡수원을 두 배로 늘리는 데 의존하고 있다. 바다와 열대우림과 같은 자연 탄소 흡수원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러시아는 또한 기술 주권을 요구하는데, 이는 의무적인 국산 자재 사용 요건을 의미한다. 이처럼 작은 국내 시장과 저렴한 중국산 자재의 점진적인 금지로 인해 러시아의 재생에너지 생산 능력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나아가 재생에너지 비용이 하락하고, 비전통적 에너지 생산업체의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전 세계 수요가 감소 함에 따라, 재생에너지 수출은 화석 연료 수출로 인한 수익 손실을 부분적으로만 상쇄할 것이다. 2000년대 초 모스크바가 제안했던 아시아 에너지 그리드는 러시아의 과잉 에너지 생산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으며, 러시아 동부, 중국, 몽골, 한국, 일본의 발전소를 통합할 수 있다. 그리드 구축 계획은 중단되었지만, 잠재적 주요 투자자인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이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원자력 에너지 분야에서 매우 경쟁력이 있으며, 파이낸셜 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원자력 발전소 수출국”이다. 신규 원자로의 3분의 1 이상이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Rosatom)의 지원을 받아 건설되고 있다.
* 갈수록 환영받는 환경
인도는 러시아에 대한 전반적인 호감도에서 두드러지며, 2025년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 설문 조사에서 대다수가 러시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인도인들은 러시아를 중국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2024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모디-시진핑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중 -인도 갈등을 완화했다. 모디 총리는 2024년에 두 차례 러시아를 방문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2025년에 뉴델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잔혹한 신(新)식민주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파트너로 매우 강하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2023년 1월 ECFR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러시아를 동맹국으로 간주한다. 2024년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 여론조사 에 따르면, 한국, 일본, 호주는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 하지만,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러시아를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 강화는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양국이 2024년 6월에 체결한 조약은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서방의 압력에 맞서는 수단을 제공한다.” 중국은 러시아가 북한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한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 그렇다면 새로운 러시아?
매튜 버로스와 클린 마이젤은 “잠재력과 성취는 별개의 문제이다. 평화가 없다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떠났던 젊고 교육받았으며 숙련된 러시아인들이 러시아의 과거 기술력을 되살릴 만큼 충분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서방과의 지속적인 적대 행위와 증가하는 국방 예산 또한 러시아의 변혁을 위한 자원을 고갈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러시아가 동방으로 선회하고, 기후 변화와 더 유리한 지정학적 환경으로부터 경제적 기회를 거둔다면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및 서방과 정상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면, 국제 금융 및 기술에 대한 문이 다시 열리겠지만, 새로운 러시아가 서방에 대한 도전을 포기할 것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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