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인 한 장면이 생각난다. 외신 보도에서 본 것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중심가에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키스하는 장면을 그림 벽화가 등장했다.
이같이 2기 임기를 맞이한 트럼프는 민주주의, 공산주의 이전에 ‘거래 주의’를 앞세워 ‘미국 우선주의, 보호주의’를 최선의 가치로 내세우고, 돈이 될 만한 곳은 갈 수 없는 곳이 없다는 듯 행보를 거침없이 하고 나서고 있다. 냉엄한 세계로 치닫고 있다.
그에게는 1944년 ‘브레튼우즈’로 형성된 국제 질서에 대해 ‘힘에 의한 평화’를 부르짖으며, 세계를 새로운 판짜기에 나서고 있다. “한·미·일 vs 북·중·러”라는 기존의 인식에서 트럼프의 최근 행보는 ‘미·러·북 관계를 중시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때로는 중국과도 돈이 되기만 하면 언제든지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트럼프로 보인다. 일단 미-러-북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할 것이며, 이후 중국은 상황에 따라 이익이 되는 쪽으로 끌고 가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마무리되면 한국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젤렌스키 대하듯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분명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종전(終戰) 협상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도운 유럽 역시 종전 협상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푸틴과 브로맨스를 과시하며,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광물에 대해 50% 정도를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푸틴 역시 점령지역이 자기 영토라며 러시아도 광물권 등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젤렌스키는 미-러 양국으로부터 발가벗겨지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우크라이나는 국토가 파괴되고 날마다 엄청난 희생자를 낳아가는 전쟁을 한시라도 빨리 끝낼 필요가 있지만, 힘이 없다. 힘없는 나라의 서러움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트럼프의 독단적인 행보가 매우 위험천만하다. 유엔 헌장의 근본 원칙을 짓밟는 침략의 책임을 러시아에 묻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침략자와 협상을 통해 푸틴의 승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만일 그런 방식으로 종전이 이뤄질 경우, 종전은 끝이 아니라 세계의 미래에 큰 불화의 씨를 남기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국토의 약 20%를 점령했다. 한국(남한)의 면적과 맞먹는 넓은 국토이다. 트럼프는 젤렌스키가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침략자 푸틴 대신 젤렌스키를 몰아붙이고 있다. 약자는 약자 그대로 남는 것이 아니라, 강자의 약탈에 누드가 되고, 국가는 강자에 예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14년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병합시킨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Crimea) 뿐만 아니라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도 모두 러시아영토가 될 것으로 보이며, 우크라이나가 다시 러시아로부터 되찾을 가능성조차 희박하다.
* 독단주의, 거래 주의, 보호주의의 트럼프 귀환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이후 트럼프의 재등장을 상정한 포석을 놓았다. 러시아 남부 크루스크 주로의 국경공격이나 지원국에 지하자원 제공안(案) 등이 그것이다. 거의 현재 상황을 전제로 종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대신 협상의 장에서는 조금이라도 강한 입장에 서서 피점령지의 탈환은 장래의 외교에 맡기는 전술일 것이다.
젤렌스키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은 러시아 재침략을 막기 위한 만반의 조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군사 지원과 다국적군의 종전 라인으로의 전개를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도 트럼프 사로잡기에 필사적이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와 푸틴이 서로 끌어당기는 몸이다. 한마디로 트럼프는 꽃놀이패이다. 지난해 대선 캠페인 도중 저격당했을 때의 트럼프의 행동은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트럼프는 기존의 세계 질서를 다시 짜려 하고 있다.
푸틴에게 있어 종전의 조건은 우크라이나가 다시 러시아를 성가시게 할 수 없도록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푸틴의 편에 서는 듯하다. 최종적으로 그렇다면, 트럼프는 ’돈의 가치와 미국의 이익‘만을 취하는 인물이다.
* 러시아. 전쟁의 승리자로 ’전범국 면제‘ 우려
러시아로부터의 독립 유지를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를 속국화하려는 러시아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그런 가운데 트럼프는 푸틴과 직접 협상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나 유럽 국가들과 충분히 사전 협의 과정 없이 러시아와 직접 협상에 임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과 러시아 장관급 회담에 열렸지만, 우크라이나의 자리는 없었다.
트럼프는 최근 우크라이나 측이 전쟁을 시작한 것 같은 허위 발언을 했고, 젤렌스키를 ’독재자‘라고도 불렀다. 젤렌스키는 지난해 5월 대통령 임기가 끝났으나 전쟁 중이므로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해 오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는 ’선거 없이 대통령을 하는 독재자‘라고 불렀다. 그러자 젤렌스키는 트럼프에 대해 “허위 정보의 공간에 살고 있다”며 맞받았지만, 약소국의 대통령에게는 힘이 없다. 트럼프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처참한 처지이다. 결국 젤렌스키를 푸틴의 손아귀로 밀어 넣는 꼴이 되고 있다.
트럼프 정권에서는 러시아의 침략 행위에 한하지 않고, 아이들의 납치나 민간인 학살, 민생용 인프라 파괴 등 끔찍한 전쟁 범죄에 대한 비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인권, 민주주의 가치, 국제법 등의 본질적인 문제에 눈을 감고, 러시아에 전쟁 범죄 면제를 주려는 것일까? 범죄 면제를 주고 트럼프는 푸틴으로부터도 또 다른 이익을 챙기려 하는 것일까?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원이 끊기면, 전쟁을 유지할 수 없다. 미국과 러시아 양쪽으로부터 전쟁 비용 청구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난감한 처지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요구하는 돈은 천문학적인 규모이다. 720조 원 이상이라는 보도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200~250년 동안 갚아도 힘든 규모이다. 그 과정은 미국의 식민지(?)와 같은 질곡(桎梏) 상태에 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사이 푸틴이 또다시 우크라이나를 넘보지 말라는 법도 없다.
푸틴이 트럼프를 끌어들이는 것은 당연히 우크라이나를 고립시키는 일이다. 또 미국과 유럽 사이에 쐐기를 박는다. 어쨌든 제재의 완화를 이끌어낸다. 이것들이 당분간 푸틴의 목표라면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푸틴과 북한의 김정은이 의기투합을 할 경우, 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깊은 고민의 대목이다.
* 냉엄했던 역사 다시 보기
젤렌스키와 미·일 유럽 고위 관리들이 이달 중순 안보 문제 국제회의에서 모인 독일 뮌헨은 역사에 무거운 교훈을 주는 성지처럼 여겨진다.
1938년 9월 뮌헨 회담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아돌프 히틀러의 요구를 받아들여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서부에 독일계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주데텐란트(Sudetenland) 지방의 나치 독일에의 병합을 인정했다. 이후 1945년에 다시 체코슬로바키아에 반환됐다.
병합 합의 당시 “더 이상의 영토 요구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히틀러는 이듬해에 밟았다. 소련과 밀약을 맺어 폴란드에 공격,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침략에 손을 물들인 독재자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한 귀결이다.
뮌헨 회담에서도 독일과 소련의 밀약에서도 체코슬로바키아나 폴란드 등 당사국은 자신이 배제된 장소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정해져 버렸다.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얄타회담‘이 있었다. 1939년 9월 1일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유럽 대륙에서 나치 독일과의 전쟁이 연합국의 승리로 임박한 시점인 1945년 2월 4일부터 2월 11일까지 흑해 연안 크림반도에 있는 휴양도시 얄타(Yalta)에서 열린 회담이다. 얄타 회담은 일제 패망 후,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는 계기가 마련된 회담으로도 유명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한국인의 시선 역시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위기와 거리를 두는 신흥국의 대부분도 강대국의 전횡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는 일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통 인식을 세계로 넓히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트럼프의 미국만을 상대로 하는 외교는 절망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악수 중의 악수(惡手)일 것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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