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팔꽃 같았다. 한나절 피었다가 시들어버린.
법리를 따질 때 가끔 그의 논리는 정교하게 빛났다. 정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선무당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주변 정치인들과 갈등이 벌어졌을 때 그의 정교한 논리는 생떼로 변해갔다. 그냥 철부지였다.
윤 대통령 탄핵을 뒤에서 부추긴 당 대표가 “내가 투표했나요?”라면서 버티는 꼴을 우리는 봤다. 마지막 생떼였다. 시작부터 진중하지 못하다 생각했지만,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금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퇴장을 보는 심정은 허탈하다 못해 깊은 자책감이 들 지경이다.
한동훈 사태에 전 당 대표 이준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사람은 더도 덜도 없이 ‘헛똑똑이’라는 말 하나로 묶으면 된다. 국민의힘 수준이 헛똑똑이를 대표로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처참한 지경인가? 그렇다. 처참한 지경이다.
메꽃인 줄 알았더니, 결국 나팔꽃이라니.
사람들은 메꽃을 보며 나팔꽃이라 부른다. 꽃이 많이 닮았다. 메꽃은 연분홍빛 꽃 한 가지만 있지만 나팔꽃은 색이 다양하다. 결정적으로 메꽃은 다년생 풀이며, 나팔꽃은 일년생 풀이다. 나팔꽃은 성질이 급한 식물인지 넝쿨보다 잎을 먼저 달지만 메꽃은 넝쿨을 다 뻗은 후에 잎을 단다.
메꽃에 비하면 나팔꽃은 아주 불안정한 식물이다. 단지 꽃이 화려할 뿐이다. 그래서 나팔꽃의 영어 이름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는 화려함보다 허무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모닝글로리처럼 넝쿨을 이루기도 전에 잎과 꽃을 달려다가 시들어버린 한동훈에게 어떤 에너지와 기초소양이 있었을까, 강한 의심이 든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한 점은 언행만 보면 알 수 있다. 기자들이 질문하면 그는 1초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1초는 물리적인 1초가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빛으로 교감하는 짧은 멈춤(Pause)의 의미조차 그는 화려한 레토릭으로 채우려 한다.
소통(疏通)이 아니라 압도(壓倒)하려는 것이다. 국민을 범죄 혐의자로 보는 검사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 단죄받을 범죄 혐의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는 그와 손을 맞잡고 국민의 신의를 저버렸던 것이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그게 전부였다.
자신에게도 허무했을 법한 짧았던 그의 정치 인생은 다시 꽃피울 수 있을까? 가능하리라 보지만 성공하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확신하게 하는 지점은 바로 그의 경박함 때문이다. 우리는 후(厚)하지 않으면서 롱-런 하는 정치인을 이준석 이전에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정치인이기를 원한다면 그 역시 이준석이 걸어가는 내리막길을 따라 걸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가 남긴 교훈도 하나 있다.
매 맞을 짓을 한 아이에게 떡을 주면 안 된다, 그것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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