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에게 바란다] 책사를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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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에게 바란다] 책사를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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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의 조건은 무엇인가. 머리가 좋아야 한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 덕목은 사심과 야심이 없어야 하는 것
진정한 책사는 '지위(권력)지향적이 아니라 과업(소임)지향적' 인물이며 현명한 주군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
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책사란 봉건왕조 시대 군주의 통치를 위해 채용한 싱크탱크이다. 동양에는 널리 알려진 인물로 제갈공명을 든다. 그러나 책사는 동서양에 공통적으로 존재했으며, 특히 제갈량 경우와 같이 새로운 왕조의 창건이나 전쟁 중에 중용되었고 지도자와 운명을 같이하는 경우가 흔했다. 책사가 흔히 군사로도 전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도자는 지성, 설득력, 자제력, 지구력, 지속적 의지 등의 자질이 요구된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자질을 두루 갖추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또한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에 따르면 일반 정치인과 달리 지도자는 비전, 카리스마, 그리고 국정운영 능력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위대한 지도자들은 변화를 주도하려는 조증(hypmania)를 가지며 지적 호기심이 남다르며 일중독성(workholic)을 가진다고 한다. 결국 지도자는 카이사르(Julius Caesar/시저)처럼 최고의 참모를 두게 되며, 위대한 제왕들도 훌륭한 책사를 필요로 했다.

실제로 최근 주목받는 지도력의 요체는 특정 특별한 분야의 전문성과 경력이 아니라 종합적인 판단력을 주목하게 된다. 특히, 국가경영에서는 바람직한 방향의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끄는 능력(leading)과 함께 정치지도자가 스스로 초래할 수 있는 부정부패, 정책 및 외교실패, 자원배분의 왜곡, 정국불안정으로 압축되는 지도자리스크의  관리를 조합한다. 

특히, 국가지도자의 비전은 국가경제 성과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점은 대개 경제개방에 대한 '생산 함수 모델링'성에 어떠한 지도력의 역할도 고려하지 않거나, 혹은 지도력을 외부함수로 여기기를 선호하는 개발 경제 학자들에 의해 간과 된다. 체코수상 비츨라프 클라우스(Vclav Klaus)에 따르면, "능력있는 지도자들은 미래 사회의 긍정적 비전을 만들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로널드 레이건의 공급 측면 경제혁명,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라지브 간디의 '21세기로의 전진', 등 사오펑의 신중국,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 등은 모두 '경영능력을 갖춘 이상주의자,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신념있게 제시하는 정치인'이란 역할을 창출한다.

그러나 비전은 그것이 현실정치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성공하게 된다. 이를 위한 카리스마와 국정운영능력이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동양과 달리 서구사회는 지도자 일인의 능럭도 중요하지만 지도자를 성공시킨 참모진의 중요성도 결코 간과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전제정과 관료제에 갇힌 동양과 달리 봉건제와 국제주의 속에서 전쟁과 발전을 병행시켜 온 유럽사회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유럽사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참모(전략가), 장군, 재상들의 이야기는 서구 역사의 다양성과 문화적 풍부함과 함께 국왕중심주의란 동양적 전제정과 대비되는 것이다.

거대 규모의 민족국가가 하나의 전통체제로 고착된 아시아와 달리 로마의 멸망 이후 국제적 위계질서가 없었던 유럽은 수많은 국가와 도시 간의 경쟁과 연합의 역사였으며 책사는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또한 유럽을 관통하는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은 그 뿌리였다. 특히, 로마사에서 전환점인 동시에 제왕의 롤 모델이었던 카이사르는 불과 5년만에 제정을 포맷하였으며 새로운 식민지나 지역을 방문하면 언제나 인재를 찾고 영입하며 자신의 사명에 동참시켰던 것이다.

정치를 위한 참모(책사)의 중요성은 중세유럽이 만성적인 침체와 불안정만이 노출된 암흑시대가 아니었던 것의 반증이다. 유럽의 천년 봉건질서를 타파한 혁명의 아들 나폴레옹의 경우 참모진의 중요성을 실증한 대표적인 예이다. 사대질서란 고착된 국제관계를 특징으로 한 동양과 달리 유럽과 일본은 군주를 보좌하는 일이 국가의 명운이 걸려있기에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는 군주의 총명함과 지성 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동양사에서 뛰어난 책사는 주로 혼란기나 새로운 왕조의 건국과 직결되고 있다. 한고조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군막 속에서 계책을 내어 천리밖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일에는 장량만 못했다"고 술회했다. 유방이 항우와 대결할때 역이기란 유학자가 진나라에 멸망한 6국의 후손을 찾아 과거 영토에 책봉하는 계책을 냈고 유방은 이를 채택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장량은 식사 중인 유방을 찾아가 주군의 젓가락을  빼앗아 휘두르며 그 불가함을 간언하여 이 계획을 취소시켰다. 아마도 역이기의 계책을 실행했다면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유방은 무졸지장이 되었을 것이다. 

주군과 책사라는 왕조시대의 예이지만 현대의 지도자에게도 사심없고 유능한 책사가 있다면 통치의 성공은 확보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사의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머리가 좋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머리가 좋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책사로서 성공한 예가 많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요소가  전제된다고 할 수 있다. 

성공한 책사가 된 것은 그의 주군이 성공했기 때문이고, 주군이 성공한 것은 그가 통치한 국가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주군이 성공한 것은 국가의 성공과 동일하기에 책사에게는 주군에 대한 충성 뿐 아니라 공의에 대한 헌신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책사의 가장 기본적 덕목은 사심과 야심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천하삼분지계로 유랑하던 유비의 기반을 세운 제갈량의 일생이 후세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제갈량은 "한실을 부흥시킨 뒤 돌아오리라"며 남양의 밭을 떠날 때와 촉한의 승상이 되었을 때의 마음가짐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량은 천하통일 뒤 신선이 되기 위해 현세의 명리를 떠났다. 진정한 책사는 '지위(권력)지향적이 아니라 과업(소임)지향적' 인물이며 현명한 주군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이다. 일본  메이지유신의 책사 사카모토 료마는 "나는 일본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을 뿐 다시 태어난 일본에서 영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집권 과정과 집 권이후의 책사의 조건은 다르다. 권력의 형성과정은 전쟁과 같이 결과가 중요시되는 효과성의 논리가 적용되는 반면, 집권 이후엔 효율성(배타성)의 논리가 적용된다. 정치시스템에서 책사란 현재인 동시에 비전이며 미래이다. 왜냐하면 지도자의 비전을 현실화하고 인맥을 총괄하는 콘트롤 타워인 동시에 현재와 미래를 결합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또한 권력이 의지, 전략, 자원의 종합이기에 권력의 승패를 좌우하는 상수인 것이다.

집권 이후 성공한 책사의 전범은 당태종 때의 위징을 들 수 있다. 위징은 당태종 17년을 보필했으나 언제나 쓴소리로 현명한 군주 당태종을 불편케 한 인물이다. 고구려 원정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당태종이 위대한 제왕으로 추앙받는 것은 위징의 사후, 위징의 죽음을 자식 잃은 듯 슬퍼하고 아쉬워하여 절대군주로서 요구되는 현명함, 자제력, 공정함의 필요성을 언제나 깨우쳐주는 위징을 끝까지 중용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대사에도 훌륭한 책사는 있어 왔다. 박정희 대통령에겐 김정렴과 오원철이 대표적이다. 김정렴은 박 대통령이 동지라고 부른 인물이며, 오원철에게는 국보라는 별명을 불렀다. 김정렴은 최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공정함과 자기관리가 완벽하여 10·26 6개월 전 주일대사로 퇴임하지 않았으면 10·26이 나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를 듣는다. 오원철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지휘한 인물로 뛰어난 자질과 빈틈없는 관리로 중공업과 방산의 토대를 쌓은 인물로 김정렴과 함께 신군부의 제안을 거절하고 은퇴한 인물이다. 

10·26, 12·12, 광주사태 등 어려운 상황에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참모진을 본받았다. 무엇보다 군사정부의 특성과 한계를 알고 관료 및 학계의 유능한 인물을 찾아 폭넓은 인재를 영입하고 싱크탱크를 잘 활용하여 오늘날까지 최고의 인재시스템을 구축한 정부로 평가 받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은 군사령관으로 경제학 등 지도자 학습에 몰두한 인물이었고, 여기서 경제 대통령 김재익 수석을 알고 영입한다. 이 외에도 함병춘, 이범석 등 유능한 인물들로 최고의 팀을 꾸린다. 

전두환 대통령 참모진의 비극은 아웅산 사건이었다. 북한 폭파 공작은 단순히 인적 손실이 아니라 미래의 인적 자원을 잃었기에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좁고 협소한 청와대를 고집하며 국가경영에 매진하여 조국근대화를 완성한 위업을 이룬 것이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 '한국병'이란 소위 국가지도력의 총체적 실종이다. 양김(김영삼, 김대중)을 비롯한 역대 정부는 선진국형 청렴과 법치, 신경제 창조는 고사하고 부정부패, 정책 및 외교실패, 자원배분의 왜곡, 정국불안정으로 대표되는 지도자리스크만 노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실패를 거듭하는 역대 정부에 청렴과 역량있는 제대로 된 책사나 참모진의 이야기는 언감생심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낳게 한 위대한 정부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인적 자산, 즉 청렴하고 유능했던 책사와 참모들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일제와 두번에 걸친 대전쟁(태평양전쟁, 6·25)을 겪은 가장 불행한 세대였기에 조국근대화란 비전을 앞세운 지도자와 나라에 대한 헌신이 남달랐던 것이다. 아직도 이 땅 어딘가는 이들의 후예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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