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에게 바란다] 양김(YS, DJ)이 반자유 인사임을 통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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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에게 바란다] 양김(YS, DJ)이 반자유 인사임을 통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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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햇볕정책'이란 미명 하에 천문학적 대북지원으로 빈사에 놓인 북한을 존속과 핵개발이 가능케
김영삼,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했던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통합은 결국 IMF로 이어져
김대중은 2001년 재임시절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북이 핵을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라, (만약 북에 핵이 개발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말했다. ⓒ뉴스타운
김대중은 2001년 재임시절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북이 핵을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라, (만약 북에 핵이 개발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말했다./채널A

한국은 반자유 민주주의 망령이 오랫동안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민주주의는 역사적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체제이다. 민주주의 원조국 아테네는 페르시아 침공에 맞서 시민들의 투쟁으로 나라를 지켜냈고 마침내 유럽문화의 원형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로마는 민주주의에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아테네 민주주의는 페리클레스의 지도력이 있었기에 전성기를 누렸고 지도력이 실종되자 중우정으로 전락했고 결국 패망했기 때문이다. 

실지로 아테네는 민주정으로 부흥했고 민주정으로 몰락한 것이다. 아테네의 몰락을 예견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70이 되어서야 대중과 교육에 나선 늦깍이였다. 그의 눈에 아테네는 지적 혼란과 지도력의 실종이 비쳐졌다. 소피스트로 대표되는 진리를 주관적이고 상대적으로 해석하는 논리는  페리클레스 당시 보수적이고 귀족적 전통에  반하는 것이었다.  

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아테네의 몰락을 이끈 진보적이고 개인적이고 비판적인 흐름은 한국의 민주화에 투영된다.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주도한 민주화는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 대통령의 반명제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를 겪은 빈곤과 문맹의 조국을 자유와 번영을 위한 자주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90평생을 바친 성인이자 위대한 지도자인 동시에 탁월한 외교관이자 교육자였다.

건국자로서 이승만 대통령의 위업은 시중에 떠도는 이승만 대통령의 30대 업적 등으로 쉽게 확인된다. 또한 위대한 부국강병의 지도자이자 조국근대화의 수호신 박정희 대통령의 위업도 30대 업적 등으로 확인가능 하나 박 대통령의 면모는 실은 18년 재임기 동안의 수많은 여타 업적을 가능케 했던 위대한 팀 빌더임도 깨달아야 한다. 그의 민족중흥을 향한 항심에 기업인, 과학자, 관료, 군인들이 기꺼이 동참했던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의 옥타비아누스 였다. 김재규(중정부장)가 기획한 대통령 시해와 계엄령 시도는 거사 1년 전 육군참모총장의 추천처럼 결코 우발적이 아니었다. 보안사령관으로 그리고 합동수사본부장으로 김재규(긴급체포)와  계엄사령관에 대한 조치는 국난 극복의 중심이었다. 원자력, 과기통신 등 국부창출을 위한 대통령으로 그가 취한 여러 과학정책은 선례를 남겼고, 신무역정책과 연좌제 폐지 등 그의 재임시절 취한 자율주의는 유신체제를 승계한 지도자로서 최고의 성과였고 이것은  민주화속에 포퓰리즘에 빠진 브라질 등 남미제국과 비견되었다. 

1988년 올림픽은 한편으로 위대한 한국의 지도자들에 대한 제관식이기도 했다. 서울올림픽의 충격은 이듬해 동구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한국은 자신의 성공과 그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없었고, 미증유의 경제호황에 취해 있었다. 이윽고 양김(김영삼,김대중)이 지도자가 되자 '한국병'이란 국가지도력의 총체적 실종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국근대화의 전환점인 한일국교정상화, 월남전 참전, 고속도로건설, 중화학건설 등에  반대를 위한 반대에 앞장선 전력이 있었다. 

무능하고 부패했던 김영삼에게 민주화는 역대 정부 허물기였다.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했던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하고, 하나회를 척결하여 안보를 뒤흔들었다. 기획원(정책)과 예산처(재무부)로 분리된 경제기구는 견제와 균형 나아가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박 대통령의 원모심려였으나, 원칙없는 통합으로 경제부처의 내분과 혼선으로 이어져 결국 IMF로 이어졌다. 

김영삼의 탈주는 3000억 비자금이 폭로되자 야권과 결탁으로 이어진다. 여론의 조작을 위해 홍준표(검찰 특수부)와 권영해(안기부장) 같은 협조자를 동원해 광주사태를  군인들(신군부)에 의한 국가전복으로 규정하고 전역한 엘리트장교들을 사법조치하는 한편, 당시 북한특수군의 개입의 결정적 증거인 평양과 광주에 오간 통신감청자료들을 의도적으로 폐기했다.  

타고난 반역도이자 정상배인 김대중은 1960년대부터  은밀히 김일성의 비자금을  받고 진보적 안보정책 등으로 박대통령을 자극했다. 월남전 패전과 북한의 위협이 증대되자 선택한 유신체제는 강요된 병영국가였다. 해외에서 본격적 반체제운동을 하는 김대중은 김일성의 "보이지 않는 긴손"이었고, 강제 납치되어 구금된다. 김대중은 레닌의 후예였고, 차베스의 선배였다. 

한국의 (국가)정보사에서 1970년대는 흑역사였다. 1960년대 지속된 대규모 게릴라전이 연속하여 실패하자  김대중과 호남을 새로운 출구로 삼았고, 성과도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의 비자금에 고무되고 '김일성전집'을 훈장으로 삼기도 했다.

이들에게 박 대통령 유고(10.26)는 최고의 기회였다. 김일성은 방중으로 제2 한국전쟁을 모색했으나 거부를 당했다. 결국 북한군과 내부 협조자(DJ추종자)들이 합작한 광주사태는 세계정보사에 남을 전격작전을 펼쳤고 결국 어의없는 작전(광주교도소 습격)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6.25를 개전초부터 북침으로 조작하는 공산당식 방식으로 폭동을 민주화로 주장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김대중은 집권하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기부 대공요원들을 집단해고하고 국정원으로 개칭한다. 비자금에 덜미가 잡혀 '햇볕정책'(독일 동방정책의 여적개조)이란 미명 하에 천문학적 대북지원으로 빈사에 놓인 북한을 존속과 핵개발이 가능케한다. 광주폭동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유공자대우로 집단 기생충을 양산하고, 전교조, 민노총, 언론노조 등 반국가세력을 제도권에 편입시켜 국가예산으로 지원받게 했다. 이 외에도 집단방북으로 기쁨조의 공작에 의한 간첩을 집단 양성하고, 한일어업협정으로 수산업을 붕괴시키고 독도문제를 한일외교의 난제로 만든다. 

결국 양김의 민주화는 국가이익 뿐 아니라 남북대치에 맞는 진정한 자유, 즉 자율과 권리에 앞서는 질서(규율), 자율과 규율 및 권리와 책임의 창조적 결합과 대치된다. 양김에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서독(독일)헌법 제2조 1항은 언감생심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역대정부(독재)가 실은 자율과 규율, 권리와 책임, 지성과 산업이 창조적으로 결합된 진정한 자유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너무나 지적으로 떨어지고 북한에 예종된 존재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양인(YS, DJ)은 문화(지적)으로도 저열하고 반역적인 반지성의 상징이었다. 선천적으로 책을 싫어했던 김영삼은 평소 남 이야기만 한 인물이고, 국가경영을 위해 노심초사했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학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고출신 김대중은 호남과 북한만 관심이 있었으나 정작 북한으로부터 "상고출신으로 돈만 아는 정상배"라 비난을 받았다. 이들의 반지성(금권/종북)정치는 이미 이건희 회장의 4류정치 언급에서 예정된 것이고, 문제는 이들의 반(무)지성을 지적하는 지성인이 없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반지성을 보여준다. 

실지로 YS(김영삼)가 겉으로는 반공주의자이고 기독교 신자이나 결국 역대 대통령을 비난한 인사이고 원칙없는 개혁병으로 IMF를 유발했고 대통령으로 비자금 문제가 발생하자 반역도 DJ와 결탁한 것이다. 또한 김대중(DJ)는 북한커넥션이 본질이었고 사후 밝혀진 천문학적 비자금(13억불/1조5천억)이 미국에서 나온 반역과 부정부패의 상징인 것이다. 호남전역에 산재한 김대중기념물은 한국의 수치이자 반역(여적)과 국가위기의 상징이고 민주화의 추악한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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