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30년이 실은 성장과 질서가 사라진 잃어버린 시대이고 책임과 의무가 사라진 '제로 오빌리지(zero oblige)'의 시대가 열린 것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주도한 민주화는 군사정부에 비해 책임감과 헌신이 결여

우리는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박정희 대통령을 들곤 한다. 이것은 건국·호국 대통령이신 이승만 박사님을 결코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근대화란 또 하나의 새로운 과업을 이룬 위업을 강조하기 때문이며, 18년 통치동안 위대한 팀 빌더일 뿐 아니라 치밀한 팀(비서진) 관리도 전설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사후 이병철 회장은 사석에서 박 대통령의 청와대 참모시스템이 실은 삼성비서팀 시스템을 차용한 것이며, 자신의 삼성비서팀은 일본 기업인 세지마 류조의 참모시스템을 모델로 한 것이라 밝혔다고 한다. 세지마 류조는 대본영의 전설적 인물이자 전후 기업인으로 대성공을 이루어 일본의 유명 실화소설의 실존 모델이기도 했다.
세지마 류조의 참모시스템은 독일 합동참모본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진다. 독일 참모본부는 '전쟁론'의 칼 클라우즈비츠의 전통을 이어 '전쟁실(war room)'로 대표되는 전쟁의 모든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운영하여 관리의 최고 효율을 거두어 전후 미국도 도입하게 된다.
박 대통령 정부의 참모진 관리는 인사나 정책 뿐 아니라 민원, 특히 대통령 사설편지에도 우선순위가 주어졌다. 사설편지는 영부인(육영수 여사)이 직접 영부인 담당 비서진을 통해 관리했다고 알려진다. 당시의 여러 증언들은 대부분 극한의 생활고에 시달린 국민들의 마지막 요청이었기에 결코 소홀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국민학생이 보낸 편지에도 일일이 조치하고 결과를 통보했다고 한다.
육 여사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던 것이다. 잘 알려진 에피소드는 여론과 대통령을 연결하고 때에 따라 통치자로서 합리적 접근을 하게 한 역할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후의 보호자 및 옹호자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유신 말기에 공직자 경력이 있는 필자는 당시 놀라운 민원관리시스템을 목격하게 된다. 과세기관으로 민원이 오게 되면 별도의 관리대장으로 접수하고 즉각 담당을 결정하고 내용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처리하고 통보했던 것이다. 결국 유신체제를 관통하는 것은 민원의 중요성과 함께 행정적 효율성을 담보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5공에서도 잘 유지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원관리시스템은 민주화와 함께 무너졌다. 무엇보다 5년 단임이 만든 무책임의 승계이자 확산이었다. 예컨대 필자는 민주화 이후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에 맞추어 인수위 등에 각종 민원을 보내는 것을 보았으나 답장을 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통령실에 편지나 정책제안을 하였으나 답장을 받은 이야기도 듣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화 30년이 실은 성장과 질서가 사라진 잃어버린 시대이고 책임과 의무가 사라진 '제로 오블리주(zero oblige)'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실지로 필자가 만난 한때 청와대 고위당국자는 "민주화 이후 역대정권들은 단임정신(?)으로 권리는 즐기고 책임은 없는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은 "책임과 헌신을 아는 지도자는 드문 사회라 당분간 제대로 된 대통령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주도한 민주화는 군사정부에 비해 책임감과 헌신이 결여되어 있었다. 군사지도자들은 6.25와 월남전을 통해 그리고 사관학교와 미국유학을 통해 인생을 조국에 바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했던 것이다. 박정희, 박태준, 김종필, 전두환을 필두로 그들은 조국근대화에 매진하며 동시에 청렴함도 실천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미국 국방부를 혁신하여 경영학의 아버지가 된 엘리후 루트가 개척한 앞선 제도를 도입하고 실행했던 것이다.
필자는 한국의 미래지도자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국정운영을 맡을 사람을 찾는 것이고, 민원관리가 국정운영의 알파요 오메가로 깨우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지도자는 일하는 자리가 아니고 결정하는 자리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구해서 임명하는 자리이고, 무엇보다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이자 정책제안인 민원을 제대로 챙기는 것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정책이나 법안은 언론에 노출되고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나 민원은 보이지 않는 정치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보이지않는 것이 중요하고 결정적이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보이는 영역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에도 관심을 보였다. 링컨 대통령은 소녀의 편지에 수염을 기르게 되었고, 처칠 수상은 때로 지하철을 타고 민심과 전의를 확인했던 것이다.
민원관리를 혁신하는 것은 정치의 존재 이유이자 정국주도권 확보의 시작일 뿐 아니라 정치혁신의 요체이다. 양김을 비롯한 역대 정부의 부정부패, 외교실패, 자원배분의 왜곡, 정국불안정으로 대표되는 지도자 리스크의 출발은 실은 민원의 소홀에 있었다고 하겠다. 민주주의는 실은 국민의 요구가 제대로 실현되는 것이기도 하기에 민원과 민원처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전설이 된 60년 전 눈물겨운 청와대 민원처리가 되살아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날이 될 것이다. 물론 무한한 서비스가 확대되고 사악한 세력들에 의해 왜곡될 지라도 새롭게 복원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음은 무책임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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