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에게 바란다] 이순신(충무공)에게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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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에게 바란다] 이순신(충무공)에게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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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성리학을 선택한 문약한 조선왕조 500년 동안 거의 유일한 상승장군이자 임진왜란에서 게임 체인저였던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순신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즉,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대과(문과)에 지원한 경력이 있다. 조선은 사대부 사회로 대과 만이 입신양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훗날 문무겸비, 전략학습, 학습하는 지도자, 연합작전(명나라)이 가능하게 하는 '신의 한 수'가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에겐 무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결국 뒤늦게 무과로 전과를 하게 된다. 전과는 무려 십년에 가까운 혹독한 시련으로 이어지고 무과급제후 십수년 동안 동북면 국경지대에서 하급장교로 고초를 겪게 된다. 청령했던 그에게 타락한 상급자들은 뇌물을 요구하고 관직박탈 등 어려움을 겪게 된다. 

승진을 위해 한성에 연줄을 포기했던 그에게 파격적 승진이 주어진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동문수학한 서애 유성룡이 천거를 했기 때문이다. 임진난 직전 무려 7단계를 넘는 승진으로 전라우수사에 임명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군에서의 경험도 없었고 고향의 연고도 없었으나 준비된 장군이었다. 전쟁의 냄새를 맡았던 그는 수하의 수군을 재빠르게 변신시킨다.  거듭된 훈련과 거북선 건조 등과 함께 장수들을 통솔하며 단번에 최강의 전단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마침내 일본이 침략하자 그의 수군은 육군과 달리 상승군으로 위명을 떨친다.

하지만 그에게도 내부의 적이 있었다. 다름아닌 동문수학한 원균이다. 원균은 신립 처럼 어린시절 책과 거리가 있어 무과에 급제한 전형적 무인이었고, 벼락출세한 이순신에게 선배행세를 하려는 인물이었다. 조선의 무인들은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솔선수범과 학습이 겸비된 것이 아니라 중국처럼 학습력이 빈곤한 관료형 무리였다. 원균은 난중일기에 거듭되어 언급되는 동료이전에 적이자 빈곤한 컨텐츠의 인물이자 최후는 최후의 일전(칠천량전투)으로 조선수군을 재기불능에 이르게 한 인물이다. 

임진왜란은 쇠퇴하는 조선과 달리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국력 격차를 보인다. 사무라이 사회의 전통과 전국시대를 거치며 마침내 스페인의 화승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일거에 수도 한양을 위협한다. 선조는 피난길에 오르고 백성들은 한양을 불태운다. 그러나 일본군을 기다린 것은 혹독한 추위와 기풍이 전혀 다른 이북이었다. 무엇보다 전선이 길어졌지만 이순신군에 의해 보급이 끊어진 상황이었다. 마침내 북진했던 일본군은 해상보급로를 확보하기위해 남하하여 이순신군과 대전하기에 이른다.

이순신의 조선수군은 한산대첩, 부산포전투 등 상승군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감당키 어려울 정도였다. 정부의 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병사들은 역병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전투가 무서워 도망가는 병사들도 부지기수였다. 

이에 이순신의 리더십은 엄격한 신상필벌을 두었다. 전투에 용감한 병사들을 일일이 칭차하고 포상하며 기록을 남겨 조정에 알리는 한편 도망가는 병사들에게 가혹할 정도의 벌을 내렸다. 장병중 우수한 자를 선발하여 군관으로 승진시켰다. 한편 그는 팀웍의 중요성을 알고 부대별 시합을 장려하고 부하  장수들과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순신군에게 거듭 패배하자 일본군은 해전을 피하고 해안진지를 구축하고 기습을 노리는 한편 장수들에게 끝없이 간섭하는 조선왕조의 약점을 활용한 역정보를 통해 선조를 조종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우매한 선조는 무모한 부산포원정을 명령하나 전략지형의 변화를 꿰뚫은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항거한  것이다. 

이순신이 삭탈관직 당하고 호송되어 죽음의 경계를 넘는 사이에 지휘권을 승계하고 선조의 무모한 명령에 동진하던 조선수군은 칠천량기습으로 궤멸되고 원균은 살해된다. 상승수군을 잃은 선조는 이순신을 방면하고 다시 통제사에 복직시키나 이미 수군은 복구 불능상태였다. 

이순신의 위대함은 최악의 상황에서 대반전을 도모하는데 있었다. 그는 남해안 일대를 순행하며 패잔병들을 모으고 마지막 남은 12척 전선을 인수한다. 상승장군 이순신의 위명에 수많은 피란민들과 승려들도 합류한다. 마침내 명랑에서 일본군에 맞서 기적의 승리를 만들어 낸다. 

이순신 이야기가 갖는 교훈은 특정 시대, 특정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또한 일본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위대한 장군이자 전략가로 추앙받고 있다. 무엇보다 전쟁이 갖는 압축성과 상징성 나아가 적군(왜군)까지 존경받는 인품, 약군을 강군으로 변화시키는 신츤귀몰한 전략이 후세를 열광케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순신의 리더십은 국가지도자에게 주는 잊을 수 없는 교훈도 빠트릴 수 없다. 

예컨대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빠른 시일내 지도력을 확립하는 방법, 신상필벌을 정립하고 전투와 훈련을 결합하는 방법, 한계상황에서 조직을 운영하고 확대하는 방법, 정보와 순찰을 통한 끊임없는 적정탐지와 새로운 전략개발  등 오늘날 전략경영학의 구루(guru)뿐 아니라 정치지도자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순신의 인생역정도 김문수 장관에게 투영될 수 있다. 김문수 장관은 운동권에서 보수권으로 대변신을 하게 된다. 이것은 대과에서 무과로 전향하고, 국경(육군)수비대장교에서 전라우수사로 바꿘 대변신과 유사하다. 또한 초기에 어려움을 자초하고 성공적으로 변신한 점도 유사하다. 하지만 이순신은 500년전 최후의 전장에 뛰어들었으나 김문 수장관은 오늘 수많은 동료와 국민들의 지지 속에 최후의 전장에 뛰어든 것이다. 이순신이 외적(왜군) 뿐 아니라 내적(선조, 원균)과 싸운 점도 보수정부가 북괴 뿐 아니라 종북주사파란 음험한 내부의 적과 싸우는 점도 동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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