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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사진) 여순 반란사건에서 사살된 양민들.^^^ | ||
세인의 비상한 관심의 표적이 된 여순 반란사건은?
당시 전라남도 여수에는 국군 14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과 같이 불순 분자들이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처음은 40여명의 병사들이 14연대 병기창을 점령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선동을 하면서 ‘불응하면 용서 없다’며 위협을 했다.
이들의 대한민국 국군의 복장과 장비를 그들의 수효는 점점 불어났고 자의인지 타의인지 도 모르는 가운데 순식간에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날뛰는 이들의 만행에 반대할 자가 없었고 반대자는 죽임을 당해야 했기에 동료나 상관도 없고 지휘자도 없었다.
누가 조종하는 것조차 모른 체 처절한 참상만이 그들의 지나간 발자취 였다. 군대는 수라장이 되었고 부대 내부나 외부를 막론하고 반항하던 국군의 시체가 싸늘하게 뒹굴 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담한 반란군의 수는 무려 1천여명에 달했고 반란군은 여수 경찰과 지방 치안의 주력을 손아귀에 넣었다.
먼동이 트기전에 이미 여수지방은 완전히 그들의 지휘권 아래 장악된 뒤였다. 아침 10시경에는 온 지방이 국군 복장을 한 반란군에 의해 무참하게 죽어간 사람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의기 양양, 반란군은 여수 지방의 빨갱이 청년들과 합세하여 날뛰기 시작하니 여수는 완전히 인공화 되고 말았다.
이들은 병기창에서 내온 무기를 나누어 갖고 강제로 양민들을 합세하도록 종용하고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여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죄없이 죽어가는 양민의 수는 늘어 난체 학살에 학살은 거듭 되었다. 이제 그들은 인민해방이라는 미명아래 무참한 살육전을 일삼고 인민을 해방하고 공산화하여야 한다는 마음이 여수만으로는 부족하였던지 이들은 동서남북으로 철도편이나 트럭으로 또는 도보로 번져갔다.
여수를 중심으로 모든 기관은 반란군의 손에 장악되었으므로 여수와 순천간의 학생 통학 열차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승차했다. 장비를 싣고 순천 및 남원, 광주 등지로 갔고 일부는 순천역에서 그곳 철도 경찰과 교전을 벌였다. 경찰은 반란군과 대항하기에 총력을 기했지만 반란군을 당할 수가 없었다.(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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