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라차차 김일 박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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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라차차 김일 박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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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 선생님을 추도하며

 
   
     
 

온 동리가 야단이다. 이장 집 너른 마당에는 가마니가 깔려 있고 입장료 5원씩, 애들은 3원씩을 주고 입장하여 5원짜리는 마루로 3원짜리는 가마니로 각각 직행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 김일 레슬링을 관람 중이다.

저녁 7시에 시작한다던 김일 레슬링은 7시가 지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오픈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아니, 아니 오픈게임인지 지랄인지는 뭐땀시 저리 오래 하는겨. 당췌 속을 모르겠구먼”

오픈 게임을 보다가 지루해진 이장 집 마루에 앉아 있던 최 서방이 지루하다는 듯, 한 마디 내놓았다.

“맞어 저 마한놈들이 진을 뺄려고 그러는겨”

“그게 다 쑈여. 쑈. 작년에 장영철 선수가 레슬링은 쇼라고 했잖여”

“거어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자빠졌구먼 그랴. 그게 쑈면 김일 선수 이마를 면도칼로 잡아 짼 것도 쇼란 말이여?”

이장이 맞수인 최 서방을 향하여 볼멘소리로 한 마디 면박을 준다. 5원씩이나 받아먹는 입장료 수입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소리를 덤벙덤벙하고 있는 최 서방의 입을 막아 놓지 않으면 이 위인이 또 뭐라고 떠들고 다닐는지 알 길이 없다.

이장은 눈에 힘을 주어 눈도끼를 만들어 눈도끼로 최 서방을 한 방 놓고 나서 좌중을 둘러보았다. 마당에 가득 차 있는 동리 주민들의 입장료 수입이 꽤나 짭짤하여 요즘은 김일 선수가 할아버지로 뵌다. 할 수만 있다면 매일 김일 선수가 등장하여 레슬링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긴 그려, 지난번에는 김일 선수 이마가 찢어져서 20바늘이나 꼬맸다는디 말이여”

입맛을 쩝쩝 다시던 최 서방이 꼬리를 내리고 뒷막음을 한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이장에게 밉보여서 마당으로 쫓겨나서 동네 청년들과 함께 테레비를 보게 되면 그 낭패감을 어쩌겠는가.

드디어 김일 선수가 등장했다. 노오란 황포와 같은 가운에 용이 그려져 있는 휘황찬란한 가운을 입고 등장하자 온 천하가 고요해졌다.

“한 번 뇌뱅여 봐아”

“바악치기”

“저저저저 틀렸구먼 틀렸어”

왁왁대며 시끌벅쩍 요란하기가 그지없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화여대 농촌봉사대가 떠나고 난 뒤에 한 며칠 조용하던 우산리 바닥이 발칵 뒤집혔다.

박치기 대왕인 김일 선수가 등장하는 프로레슬링의 벽보가 전보산 대 마다 서 너 장씩 붙어 있어 손가락으로 날짜를 꼽고 있던 터에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올 아시아 태그 챔피언 결승전을 앞두고 챔피언 도전자를 결정하는 결정전이란다.

김일 선수와 당수 촙으로 유명한 천규덕 선수가 태그조가 되었고 상대방 선수는 모리 선수와 이자끼 선수가 태그조가 되어 1966년 12월 3일에 일본에서 열릴 올아시아 태그챔피언을 결정지을 결정전을 치루고 있다.

“아따 안테나 좀 돌려 봐여 잘 안 나오잖여”

이장은 지지직거리며 화면이 잘 안 나오는 테레비를 보며 끌탕을 하는 관중의 야유에 마당에 세워둔 장대를 이리저리 돌렸다.

“어뗘? 잘 나오는감? 어떻다구 크게 말해 봐 조옴”

있는 힘을 다해 장대에 매달려 용을 써가며 장대를 돌리고 있는 이장의 말에 대꾸도 없이 테레비만 보고 있으니 어찌 되는 심판인지 모르는 이장은 걱정 반, 울화 반, 김일 선수의 박치기가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에 대한 궁금 반으로 속이 버적버적 탄다. 애라 이노무 거 확 돌려 보자.

“되얏어 되얏어 인자 잘 나오는구먼”

안에서 감격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듣고 나서 이장은 용쓰기를 멈추고 장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꽉꽉 돌맹이로 다져 넣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큰 돌맹이를 하나 가져다가 그 위에 지둘러 놓고 나서야 손을 털고 마당에 가득 차 있는 손님들 사이를 뚫고 마루에 들어선다. 주인은 주인답게 방에서 봐야 하는 법이다.

같은 시각 칠복이도 마루 한쪽 귀퉁이에 엉덩이를 대고 테레비를 보고 있는 중이다. 마루에는 동네 처자들이 가득했는데 죄다 딸의 친구들이다. 용하게도 남자란 박 초시와 칠복이 뿐이다.

“바악치기”

“꽈당”

“와악 와아악”

“꺄약 멋있다”

상대편 모리 선수의 관자놀이에 김일 선수의 박치기가 꼴아 박히자 모리 선수가 흔들흔들 하더니 메트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버렸다. 동시에 폴에 들어간 김일 선수를 간신히 밀어 내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로프에 몸을 기대고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추스린다.

“동숙아 목탄다. 물 좀 한 사발 줘라”

“언니 나두 목이 타는디 좀만 기둘려 봐아”

큰 언니의 말에 테레비에 빠져 있던 동숙이 어깨를 움찔하더니 꿈쩍도 안 한다. 마루 끝에 앉아 있던 칠복이 대답했다.

“제가 떠다 드릴테니께 잠 기둘려유”

“아녀아녀 칠복오빠 내가 떠 올겨”

칠복이 머쓱해서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에 동숙이 반짝하고 일어나서는 마루를 지나는데, 종숙이가 뽀르르 일어나 정지에서 물을 한 사발 떠 가지고 왔다.

“언니 여깃슈”

큰 언니는 종숙이가 내어 미는 한 대접의 물을 받아 들고 한 마디 했다.

“저 저 저것은 칠복이라면 벌벌 떨어. 쥐방울만한 것이”

동숙이 큰 언니의 끌탕에 찔끔하여 어깨를 잠시 움츠리다가 종숙을 향해 도끼눈을 날린다. 종숙은 짐짓 태연한 듯이 자기 자리로 가더니 동숙이만 보도록 혀를 낼름하고 내밀고는 쏙 도로 넣었다. 동숙이는 약이 바짝 오른다.

‘틀림없이 나 약 오르라고 한 짓이렷다. 그려 내 두고 볼겨’

‘그래 어쩔래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겁 안 난다. 용용’

종숙과 동숙의 소리 없는 말싸움은 복화술로 하는지 남들은 전혀 눈치도 못 채도록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

로프에 의지해 정신을 추스르고 있던 모리 선수의 팔을 잡은 김일 선수는 모리 선수의 반발력을 이용해 건너편 로프로 힘껏 던져 놓고 로프의 반동으로 튀어 나오는 모리 선수를 향해 두발차기를 시도하여 매트 바닥에 다시 눕혔다.

이번에는 완전한 폴승을 거두려는 듯 김일선수는 신중히 모리 선수의 다리를 꺾으며 넉십자 굳히기로 기술을 걸었다. 김일 선수의 기술에 걸려 항복하려고 하자 기회를 엿보던 이자끼 선수가 튀어 나와 김일 선수를 걷어찼다.

“저저저저 숭한 눔 같으니라구”

“저누무 시끼를 한 방 뇌뱅여야 혀”

말이 떨어지기 전에 김일 선수의 박치기가 이자끼 선수의 관자놀이에 박혔다. 이자기 선수는 비틀거리며 주심의 퇴장명령에 비슬거리며 자기 편 로프로 돌아가고 있는 사이에 모리 선수가 김일 선수에게 잡혀서 박치기를 당했다.

“퍼어억”

하고 작신 부서지는 소리가 테레비까지 들린다. 이어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뒤이어 꽈당하고 뒤로 넘어가 메트 위에 뻗어버렸다. 김일 선수가 모리 선수의 한쪽 발을 어깨에 지고 무릎을 꺽으며 폴에 들어갔다.

“1. 와안”

칠복이 집에서 온 처자들이 숨을 죽이며 부르짖었다.

“2. 투우우”

금자네 집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이다.

“3. 쓰리이”

이장 집 마당에서 터져 나오는 감격에 찬 소리이다.

“땡땡땡땡”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땡땡땡 종소리에 온 마을이 들썩 떠올랐다 가라앉는 듯하다.

“동포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김일 선수가 박치기로 상대방인 모리 선수를 매트에 뉘이고 폴승을 거둔 감격의 순간입니다. 기뻐해 주십시오. 김일 선수가 올아시안 테그매치 결승전에 진출을 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시종일관 임택근 아나운서는 특유의 감칠 맛 나는 중계로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직 초등학교도 못 간 어린이들도 다 알아 먹을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리는 듯 박진감 있는 중계로 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임택근 아나운서는 사실감과 현장감이 있는 중계로 유명했는데 그이의 설명은 마치 그림을 그려서 보여 주는 것 같이 테레비 화면과 입이 동시에 움직였다. 임택근 아나운서의 최종 선포와 가슴 벅찬 승전보에 우산리가 들썩하더니 동시간대에 한국 전체가 들썩했다.

거구의 김일 선수가 미국선수를 썩은 짚단 넘어뜨리듯 하는 장면에서는 미군으로부터 꿀꿀이죽과 구제 우유 물을 배급 받아 연명하고 있던 한국인의 자존심이 되살아났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봐라 김일 선수는 미국선수들을 썩은 나무토막 쓰러뜨리듯 쓰러뜨리고 있지 않느냐. 미국선수와 일본 선수가 하나 둘 김일 선수의 박치기로 나가떨어질 때마다 한국민의 자존심은 하나 둘 되살아났다.

마치 꺼진 듯 불꽃을 감추고 있던 불씨처럼 재로 둘러 싸여 있어 불기운도 없이 소멸되어 버린 것 같았던 한국민의 자존심이었다. 꺼져버려 다시는 살아날 기력도 없어 보이는 한국민의 자존심은 살짝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고 종이를 넣으니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저 입으로 불어 주는 바람만 있었다면, 그리고 불태울 불쏘시개라도 있었다면 거침없이 활활 타오르며 사방으로 확장되어질 것이었다. 그 엄청난 폭발력과 화력을 재속에 감추고 잦아들어져 있는 한국민의 가슴에 김일 선수는 박치기를 통해 바람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래 하다하다 안 되면 박치기다. 당수촙으로 안 뻐드러지면 박치기 한 방이면 된다.

한 방. 한 방의 신화는 김일 선수의 박치기로부터 국민의 감정이 되어 한반도에 불길을 당겨 주었다. 한국인의 근성은 박치기이다. 니 머리가 깨지나 내 머리가 깨지나 단 한 방으로 끝장을 보자는 한국민의 감추어져 있던 근성을 김일 선수는 박치기를 통하여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간신히 왜정시대에서 벗어나 자유라는 큰 숨을 쉬고 있던 5년 동안 북한은 한결같이 앞에서는평화를 말했고 뒤로는 전쟁준비에 돌입해 있었다.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정이야 악한 것이든 거짓된 것이든 상관이 없고,

오직 결과물인 선만 이루면 된다는 공산주의 등식에 세뇌당한 지성인들이 서구문명으로 대체되어진 일본문화를 사갈시 하는 동안에 국민의 뇌리에는 일본을 통한 신지식이란 버려야 할 마땅한 서구문명의 한 가지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고 소련식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을 선으로 둔갑시켰다.

이에 반하여 자유민주주의는 선이라는 결과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는 선한 동기와 과정이 필연이라는 등식으로 동기와 과정이 선하다면 그 결과는 선이라는 등식으로 굳어져 있었다. 자연히 공산주의의 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뿌리는 같은 선을 추구하지만 동기와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졌다.

선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동기에서 공산주의는 혁명과 개혁의 논리를 앞세우나 혁명과 개혁이란 논리는 이미 기존세력의 숙청이라는 과제물을 끌어안고 출발하는 논리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창조가 되어야 한다.

창조가 아닌 혁명이란, 기존의 구조나 기존의 세력, 기존의 문화권이나 역사를 뒤집어엎는다는 논리로서 출발하기 때문에 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부모도 할아버지도 동지가 되어야 하며 목적을 이룰 수 없는 무용지물은 부모도 조부모도 될 수 없다. 다만 목적을 이룬 자만이 동지이며 부모이며 조부모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목적 앞에서는 그 어느 것도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로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며 혁명보다 약한 것은 개혁이라는 용어로 포장한다.

따라서 공산주의에서는 목적을 이룬 당이라는 단체가 인권보다 앞서게 되어 있고 공산당이라는 목적 앞에서 인민이란 언제나 소모 되어도 좋을 동지에 불과하며 당을 위해서 죽어도 좋다는 서약을 하고 입당한 만큼 언제나 당은 신적인 위치에서 선의 자리에 서 있다. 공산주의에서의 선이란 공산당을 말한다. 당 앞에서는 인권이란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다.

똑같이 선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동기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개혁이라는 말 보다는 갱신을 선호하며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과정에서 희생되어야 하는 개체가 생긴다면 그 목적 자체를 유보하거나 동기유발의 단계에서 사장시켜 버린다.

이는 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 그 결과에따라 누군가가 누릴 행복의 양이 상당하다고 해도 그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가 불행해 진다면 이는 결코 선한 것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국민이 원한다면 정권이나 정치도 폐할 수 있는 정치체제이며 국민 앞에서는 정부도 헌법도 국민을 대신하거나 국민을 초월할 수 없다. 인본주의 체계이다.

앞에서는 평화를 말하고 뒤로는 5년 동안의 전쟁준비를 착실히 마친 북한에 의하여 광복 5년 만에 조국강산은 유린을 당하였고 공산주의의 광신자들로 인하여 동족이라는 혈족의 개념은 개념자체가 망가져 버렸다.

혈족의 개념이란 이조시대의 근거인 유교의 뿌리를 말하는 것이며 유교는 혈족의 개념 위에 군(국가)의 개념을 세워 두었음으로 군(국가)은 혈족의 뿌리를 자극하여 충성심을 유발시키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군(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가치관을 부여해 주었다.

이에 대한 정신은 제사를 통하여 조상숭배의 정신으로 승화시켰고 그 승화의 끝은 결국 군에 대한 충성이었다. 내가 모시고 섬기는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대를 이어 충성한 군(국가)에 대하여 마땅히 나도 충성해야 한다는 정신이 박혀지게 된 동기는 유교가 종묘와 사직을 내세워 민을 통치하는 군의 정책 수행에 가장 적합한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조시대의 임금들은 유교숭상정책을 장려하여 국민의 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유교의 정신이 왜정시대와 동학을 통하여 심각하게 훼손을 당하고 난 뒤에 뒤 이어 밀려들어온 공산주의에 의하여 또 다시 수난을 겪게 되면서 유교정신의 자체에 모순이 대두되었고 합리주의와 과학주의에 의하여 유교의 정신은 군주의 통치방식이라는 점과 유교에서 말하고 있는 동양철학은 단순히 전통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지면서 한국인의 정신은 사멸되고 있었다.

3.1 운동 정신과 4.19운동 정신을 이어 받았다고는 하나 그 정신을 이어 받은 한민족이라는 북한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남한에 있는 내 조상의 땅을 거저먹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또 그 땅을 지키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싸웠다면 3.1 운동 정신이 뭐고 4.19정신이 뭐란 말인가.

당장에 100여만 명이나 되는 전쟁피해자가 나왔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겨우 목숨 하나 건진 것인데 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외국의 구호물자에 명줄을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처지가 이런 처지에 무슨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나 애국심이 생길 수가 있다는 말이던가. 부산항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으며 서서히 전쟁의 상처가 아랫역부터 치유되어 올라오는 중이다. 물론 서울이야 높은 분들과 미군 사령부가 있는 곳이니 벌써 치유가 되었을 터이다.

정신의 공황이 계속되고 있던 터에 김일의 박치기는 한국인의 정신구조에 “한 방”이라는 구체적인 표지를 세워 주었다. 그 독한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았는데 까짓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이다. 어쨌든 필살기인 박치기 한 방이 남아 있다.

이 정신으로 혼미한 1960년대를 버티어냈다. 김일 선수는 공식적으로 1955부터 1960년대에만 500회 이상의 경기전력이 있고 이후 1970년대와 1980년을 주름잡으며 은퇴 시까지 통산 1500회라는 경이적인 공식 경기의 전력을 남겼다. 이는 10일에 한 번 꼴로 경기를 치러냈다는 결론이다.

김일의 박치기는 한국민의 정신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의 수요를 급속히 앞당기는 일에도 한 몫 단단히 했다. 가장인 남편은 김일의 박치기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구입을 서둘렀고 주부들은 연속극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구입했다. 결국 부부가 텔레비전 구입에 뜻을 두니 텔레비전은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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