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節墨偏宜 (늘그막은 묵자 쪽으로 치우치네)
- 김시습의 추강에 화답함(和秋江) 중에서 -
야구에서 아웃 카운트(out count) 셋이면 공수가 교체된다. 이때 아웃 규칙은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 현장에 참여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웃은 법(法)처럼 뚜렷하지만, 시(詩)처럼 흐릿하게 사용될 때도 있다. 가령 “안에서 밖으로 나서자마자”, “저 너머로 소멸되는 찰나”, “규정에서 탈출하는 돌기” 따위로 어떤 모멘트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는 자연과 서정이 어울려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 웅장한 아프리카의 대평원을 배경으로 서두름을 잊은 듯한 여자와 남자가 장면을 만들고 있는데, 그들은 건너는 말수도 적다. 그리고 석양은 그림자를 지고 있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가 낮게 깔린다. 아무런 방해 없이 다음날 아침까지 이렇게 이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여자는 틀에 박힌 남편과 농장에서 일탈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 역시 자유로운 독처와 사냥에서 일탈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는 방법이 달랐지만 상대를 통하여 지금까지의 삶이 하나의 소외에 지나지 않았음을 느낀다. 세모뿔은 어느 방향으로 조명하더라도 그 그림자는 세모꼴로 나타난다. 그 그림자 너머로 다른 세계가 있고, 둘은 만나서 사랑을 발견했다.
영화는 보따리를 싸던 여자를 데리러 오겠다던 남자가 사고로 죽음으로써 관객을 여자의 아픔에 동참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메시지는 사랑이나 죽음이 아니고선 아프리카의 마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곡 역시 그가 죽기 두 달 전에 죽음을 예감하며 작곡했다고 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같은 명작은 모차르트의 유산에 힘입었다.
But when you close your eyes 그러나 당신이 눈을 감을 때
It’s then I realize 그때 난 깨달았지요.
There’s nothing left to prove 더 풀어야할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고
So darling 그러니까 나의 사랑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아침이 될 때까지 내게 머물러줘요.
김시습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자유를 추구하던 남자와 비슷한 이미지를 남겼다. 우선 대중사회로부터 탈속한 아웃사이더(out-sider)였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세조의 찬역사태를 겪은 이후부터 그는 남자로서 권력, 출세, 지위 따위를 일체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다 그림자에 불과했다. 김시습은 가끔 방외(方外) 문학가로 남효온과 비교되나 근본이 다르다.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92)은 생육신 중에 하나로 김시습과 말이 통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추강은 청담파(淸談派)로서 동대문밖 대나무 숲에서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세월을 보내는 멋을 부렸다. 하인이 차린 술상을 받아놓고 시를 읊으며 한 세월을 보낸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자처했던 것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신선(神仙) 놀음을 즐겼다고 할 수 있다.
김시습은 결코 은자(隱者)가 아니었다. 사육신의 형장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 숨어있을 때 그는 홀로 나타나 그들의 시체잔해를 수습해 노량진에 묻었던 인물이다. 그뿐 아니라 그 이듬해(1456) 계룡산 동학사(東鶴寺)에서 단종과 사육신 등을 위한 단을 쌓고 초혼제까지 올렸다. 그러자 세조가 감동받아 숙모전(肅慕殿)을 짓게 하였다는데,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출가(出家)를 시도했던 그 여자의 진지한 표정을 오늘날 동학사의 비구니들에게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아침과 저녁에 종루(鐘樓)에 달린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의 사물(四物)을 울린다.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한 여승들은 “큰 남자(大雄)”에게 예불하고 있었다.
김시습은 “아웃 오브 코리아(Out of Korea)”를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실제로 선승(禪僧)이 되기도 했지만 종교적 제도에 얽매이지 않았다. 우주에는 중심이 따로 없다. 따라서 나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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