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녀는 영화 초반부에 친구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엄마에게 다른 친구랑 놀겠다며 엄마 일을 방해한다. 알고보니 엄마와 아이가 말하는 친구란 마당의 두 인형과 자일란이란 기계 음성이 녹음된 인형을 말하는 것 아닌가.
조금 무섭게 생긴 엄마는 시종일관 '안돼', '못해'를 연발하며 반항하는 아이와 맞선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통해 해맑은 이란 아이들을 대한 적이 있어 큰 두 눈동자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순간. 아이는 일부 체념을 하고 다시 마당에 나가지만 때 마침 이웃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반가워 놀고싶은 친구가 바뀌어 버린다.
'왜 집 밖으로 나가서 놀지 못하는가'라고 답답해 하는 국내 관객이라면 이란의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소라야가 엄마로부터 입버릇처럼 듣던 '이웃집 아이와 친구가 되기 위해 먼저 상대방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것. 즉, 관계와 어울림에 철저히 통제된 이란 여성의 벽을 통과해야 아이는 비로소 또 다른 세계와 관계를 갖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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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더 플레이>의 주인공 소녀 소라야, 그 뒤로 옆집 아이들과 엄마가 보인다. ⓒ giff.org^^^ | ||
아마도 해외에 소개된 이란 감독의 영화에서 이란 내 영화검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어린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현재 영화라는 매체 수단을 통해 자기 표현을 시도하는 영화감독 자신일지도 모른다.
영화 <더 플레이>의 소라야도 그들을 많이 닮아 있다. 세계적인 유명 영화감독을 배출해 낸 이란 영화의 저력은 '엄격한 제도에 계산됨 없이 맞서는 아이들과 같은 자아를 지닌 영화 감독들이 계속 배출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 영화에서도 6살의 소라야는 말하는 인형을 꺼내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가구를 옮겨 놓고 까치발로 서거나 이웃집 벽을 오르기 위해 자신의 키보다 다섯 배가 긴 사다리를 가져오는 등 자신의 판타지를 이루기 위해 이를 막는 엄마의 세계보다 앞선 생각을 지녔다.
통제하는 엄마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결국 이웃집 아이들이 넘긴 공을 숨긴 채 이웃집 소녀와 벽을 사이에 두고 공놀이를 할 수 있게 되자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오래 전 국내에도 소개된 이란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미소와 다르지 않다.
이제 소라야는 엄마가 차도르를 걸친 채 이웃집 엄마에게 친구 요청을 온 것에서 천국을 갖게 된 것이고 자기의 꿈이 어울림을 통해 '천국의 아이들'이 된 것이리라. 또한, 마지드 마지디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 이은 또 한 명의 이란 감독으로 골람레자 라메자니를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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