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학은 보수적인 주제 담아
이 사례만을 보면 마치 대중문학은 진보적인 성격을 갖고, 학계가 지지하는 순수문학은 보수적인 성격을 갖는 것인 양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대중문학이야말로 보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대중문학의 주인공들은 거의가 보통 인간이 모범으로 삼을 만한 全人的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줄거리와 주제도 惡을 퇴치하여 이 세상을 건전하게 유지하자는 범주에 머물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흥미를 유발하고, 독서를 통해 세상의 섭리를 자연스럽게 음미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순수문학은 인간의 본질 탐구 위해 세상의 裏面 담아
그러나 인간의 탐구를 목표로 하고 있는 순수문학의 경우 그 주제는 단순하지 않다.
가령 순수문학 작품의 대명사라고 할 만한 A.까뮈의 <異邦人>의 경우를 보면, '어머니의 장례식 날 섹스를 하고 바닷가에서 이유 없이 사람을 쏘아 죽인', 不條理의 전형을 보여주는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때로는 자신의 理性을 벗어나서 이해될 수 없는 부조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視線은 한 '破廉恥(파렴치)한 惡人'인 뫼르소의 입장에 서 있고 그를 단죄하는 재판관은 인간의 본질에 無知한 群像(군상)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순수문학의 경우 전쟁을 다루었다 하더라도 결코 영웅적인 업적의 칭송에 그치지는 않고 그에 따르는 인간적 고뇌와 세상가치의 모순과 허위 등을 파헤친다. 이로 인해 독자는 세상의 裏面(이면)을 보는 눈을 기르게 된다.
그러면 순수문학이란 이렇게 세상일을 뒤틀린 視角으로 바라보기만을 즐겨하는 반항적 좌파를 대변하는 문학이란 것인가?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으며 그 목적은 앞서 언급한대로, 독자로 하여금 인간과 세상의 원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기르기 위한 인간세상 裏面에 대한 탐구와 해석인 것이다.
순수문학의 표현에는 고급언어의 使用 필수적
이를 위해서는 상황묘사 또한 결코 단순하지는 않아야 하며 섬세한 분위기 설정과 전달을 위한 고수준언어의 동원은 거의 필수적이다. 독자는 줄거리를 따라가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상황을 세밀히 묘사하는 고급언어를 통해 情緖(정서)와 思考를 高揚(고양)함으로써 순수문학이 추구하는 목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H. 헷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으면, 국내소설에서는 순수문학이나 대중문학을 막론하고 사용빈도가 높지 않은 고수준 어휘로 메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어휘는 한글표기만으로는 표현이 달리는 것들로서, 한글전용의 국내작가들로서는 결코 이러한 소설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순수문학의 '비틀린' 주제를 한글전용으로 쉽게 써서 널리 보급하는 우리
이렇게 국내의 경우, 소설은 한글전용을 한다는 기본원칙(?)하에 순수문학의 경우도 한글로 '쉽게' 쓰여져 널리 보급되고 있다. 이것을 두고 우리나라가 순수문학('본격문학')의 대중전파도가 세계에서 이례적으로 높다 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측도 있다.
까뮈의 <異邦人>이후 허무주의를 강조한 亞流作들은 국외와 국내를 막론하고 무수하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섹스를 하고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자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는 글을 '쉽게' 써서 내면적 통찰능력이 부족한 대중들에 널리 보급한다고 해서 이 사회에 돌아오는 이익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영웅들의 이야기를 허무주의적이고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絶代善은 없다는 투로 고뇌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쉽게' 써서 대중에게 널리 전파하여 어떤 효과를 보겠다는 것인가.
공동체 붕괴조장의 문학에 공동체의 지원이 있어온 우리 나라
게다가 可恐(가공)할 일은 이러한 공동체 붕괴조장적인 문학을 그 공동체의 당국에서는 일찍부터 이른바 순수예술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시장논리를 넘어선 지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래의 베스트셀러이며 젊은 학생들의 '필독서'라 하는 조정래의 <太白山脈>과 60년대 출간이후 수십년간 우리 현대문학의 독보적인 금자탑으로 다소 과대평가되고 있는 최인훈의 <廣場>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반면에 추리작가로 알려져 있는 김성종은 출세작 <최후의 증인>에서 빨치산 출신인 자를 악인으로 묘사하는 '큰 실수'를 저지른 바 있었다. 이후 김성종은 熱火와 같은 추리소설 집필 청탁을 받아 추리소설작가로 굳어졌다. 본인으로서는 어느 정도의 富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이른바 순수문학작가로도 그 정도는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후 그는 정통 한국문학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
진정한 문화지도자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차이점 理解해야
근래 각처에서 '文化를 아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하는 文化人들의 기고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정말 文化를 아는 지도자는 바로 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역할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는 지도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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