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부근에는 봉래시장이 있고 봉래시장 입구 골목에는 서민들이 이용하는 각종 식당이 즐비하다. 한때 이 골목은 매우 번창했다. 이들의 주 고객은 주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이었다. 부산 근무시절 봉래동 식당골목에 돼지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어 자주 찾아간 기억이 새로워 지난 2011년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그 식당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즈음 이 일대는 희망버스를 타고 내려 온 원정시위대로 인해 매우 어수선한 시기였다. 식당 주인은 그 동네의 통장을 맡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과거의 단골손님을 반가워하기도 전에 한진중공업 사태와 원정시위대의 비난에 열을 올리기에 바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였다. 부산 근무시절, 어쩌다 태종대를 가기 위해 청학동을 지나다 마주치는 영도조선소를 보면 그 웅장한 대형 크레인에 압도되기 일 수였다. 그토록 오랜 역사를 자랑했던 영도조선소에서는 해마다 격렬한 파업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났고 그때마다 부산지역 신문에 주요기사로 취급되기도 했다.
연이은 파업의 여파로 영도조선소의 경영은 날로 악화되어갔고 그러다가 결국 대형 강경 파업에 휘말리게 되었다. 특히 타워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의 장기농성에 이어, 노조원 자살에 따른 금속노조의 시신투쟁 등의 여파로 인해 전국적인 이슈로 부상함에 따라 날로 모여드는 원정시위대로 인해 이 지역 일대는 몸살을 앓았다.
이 사태의 여파로 인해 영도조선소는 5년간 단 한건의 일감도 수주를 하지 못해 순환휴직에 들어가는 직원이 날로 증가했고 협력업체 직원도 하나둘 직장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의 상권도 고사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급기야 영도주민이 나서 원정시위대와 맞서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강경 파업이 장기간에 걸쳐 전개되자 신규 수주물량은 제로베이스를 유지했고 한진중공업의 경영 상태는 부도일보 직전으로 몰리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은 무작정 흘러갔다. 이 기간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 만에 설립한 수빅조선소를 확장하기 위한 조치를 단행됨에 따라 영도조선소는 서서히 기억에서 사라져갔고 봉래시장 일대 상권은 죽은 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랬던 영도조선소가 2011년 11월 이후 4년 만에 터키의 모 선사에서 수주한 18만톤급 벌크선을 건조한다고 하여 예전에 없던 희망찬 활기가 돌고 있다고 조선일보가 지난 금요일 경제면에서 소개했다. 특히 극심한 노사분규 이후에 새로 들어선 노조집행부가 국내외 선사를 찾아다니면서 "노조가 납기 준수와 품질을 보증할테니 제발 건조 수주 물량을 달라"면서 읍소하고 다닌 노력이 먹혀들어 2013년부터 여러 선사로부터 수주계약을 따내는데 성공했고 특히 올해 들어서도 신규 선박 3척의 물량을 수주하는 성과도 있었으며 이에 따라 그동안 순환유급휴직에 들어섰던 1300여명의 직원도 모두 직장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또한 노사분규 당시 100여명으로 줄었던 협력업체 직원도 지금은 1500여명 수준으로 늘었다고 하니 이와 같은 신선한 뉴스가 짓눌린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다. 한 때 강경파에 속했던 김외욱 노조위원장의 말이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김 위원장은 " 한때는 파업이 능사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파업은 공멸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을 모두가 갖고 있다. 앞으로 외부세력이 갈등을 부추 키더라도 동조하는 노조원은 한명도 없을 것" 이라고 단언했다니 참으로 신선한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한진중공업에 버금가는 낭보도 있었다. 철도노조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말이 강성, 나태, 적자, 방만, 철밥통이라는 단어였다. 2013년 불법파업을 주도한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강경파였다. 하지만 코레일에는 최연혜라는 사장이 있었다. 최연혜 사장은 강경파 노조위원장과 끈질긴 협상을 벌였다. 특히 회사가 망할 판인데 노조원들은 먹고 살 궁리만 하고 있다면서 뚝심과 원칙으로 나서 끈질기게 노조를 설득한 결과 매우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동안 코레일 직원들은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일정한 근속연수만 채우면 자동으로 승진되는 암적인 내규가 있었다.
코레일은 전체 직원 2만 8천명 가운데 간부급인 3.4급이 무려 2만 명에 육박하는 역삼각형 구조를 가진 전형적인 비효율의 조직이었다. 그중에서 자동 근속 승진제도는 건성으로 일해도 세월만 가면 자동으로 승진하는 요술단지와도 같았고, 파업을 하고 징계를 받아도 때가 되면 자동으로 승진하는 철밥통의 대명사였다.
이런 비정상적인 조직형태로 인해 해마다 영업적자가 발생할 밖에 없었고, 인건비의 비중이 매출액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기형적인 경영구조를 가진 기상천외한 회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최연혜 사장은 노조의 파업이후 각종 수당을 손질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한 결과 인건비 비중을 36%까지 낮추고 2014년도에는 영업이익도 흑자로 전환시켰지만 여전히 비정상적인 조직형태는 변함이 없었다.
최연혜 사장은 강경파 김영훈 노조 위원장에게 노조가 자동근속 승진제도를 폐지하지 않으면 단협을 해지하고 노조사무실도 폐지하겠다면서 강압과 끈질긴 설득으로 지난 1년을 분주하게 보냈다. 그 결과 얼마 전 끝난 임,단협에서 노조원 60.7%의 찬성으로 마침내 자동근속 승진제도를 폐지하는데 합의함으로써 코레일의 철밥통을 깨는 이정표를 마련해 냈다.
특히 아무리 강성 노조위원장 김영훈이라고 해도 회사의 경영 상태를 공개하고 설득하는 최연혜 사장의 끈기에 마침내 경영합리화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김영훈 위원장은 회사와의 협상을 극구 반대하는 막가파식 강경노조원들에게는 "위원장을 심하게 몰아붙이면 사퇴하겠다" 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민노총 산하 중에서도 가장 강경파에 속했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노조 위원장과 코레일의 노조위원장은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자기들이 소속된 직장의 존재가치를 최우선 선택하는 결단을 보여주었다. 물론 경영진의 원칙 고수와 끈질긴 설득도 주효했을 것이다.
특히 민노총에 가입한 여타 직장 노조는 그동안 건전한 노조활동보다는 강경한 정치투쟁에 더 몰두했다는 점에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노조와 코레일 노조가 보여준 발상의 대전환은 노조가 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본다. 특히 비루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정치권이 이들처럼 환골탈태를 한다면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랄 뿐아니라 국민이 더 놀랄 것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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