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공포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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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공포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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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누군가 있다, 영화 <숨바꼭질>

^^^▲ 지하실에서 공포의 원형을 찾는 두 주인공
ⓒ 21세기 폭스코리아^^^

언제부턴가 스릴러물의 전형이란 말이 생겼다. 공포영화나 범죄영화에서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은 목욕 중에 죽는다거나, 뒤돌아보면 죽는다거나 하는 공식과 달리, 하나의 전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스릴러물의 전형을 만든 것은 유주얼 서스펙트(Usual suspect)의 계보를 잇는, 이른바 반전영화에서 출발했다. 그 뒤를 이어 디 아더스(The others), 아이덴티티(Identity), 식스센스(six sense) 등 관객의 허를 찌르는 반전들이 스릴러물을 구성하는 요소가 됐다.

영화 아이앰 샘(I am Sam), 맨 온 파이어(Man on fire) 등 헐리우드에서 몇 안 되는 아역배우, 다코타 패닝의 출연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게 한 ‘숨바꼭질’ 이 영화가 숨기고 있는 반전은 무엇인가. 혹은 그 반전을 정말 꼭꼭 숨겨놓았는가.

반전의 이중성이 주는 공포

최근 유행하고 있는 반전은 이중인격, 혹은 자아의 실체를 분명히 파악하지 못 하는 인격장애를 겪는 이들에 대한 결말이 대부분이다. 가장 공포적으로 느낀 대상의 실체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점을 알게 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원형적 공포를 환기시킨다.

어느 날 죽은 아내, 그 후로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 딸 아이, 그리고 일어나는 사건의 반복. 끝없이 반복되는 숨바꼭질 노래처럼 영화속의 사건들은 크게 몇 가지의 사건들이 나열성으로 반복되고 있다. 관객들이 지루하다 싶을 쯤, 한번씩 얼굴을 드러내듯, 영화 속 얼굴은 좀처럼 선명한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로버트 드니로, 엘리자베스 슈, 다코타 패닝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배우들이 열연하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끝을 보고 싶었던 것은 관객의 궁금증이 아니라, 단순한 반복과 나열에서 오는 지루함이었다.

다코타 패닝의 섬뜻한 연기와 로버트 드니로의 섬세한 내면 연기는 무료함을 해소시켜 줄 정도로 훌륭한 연기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결말로 갈수록 ‘설마’가 ‘결국’이 되어버린 관객들의 실망감까지 모두 날려버려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딸과 정신과 의사로써 겪어야 하는 삶의 중압감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는 이미 영화 ‘아이덴티티’를 통해 충분히 재현되었던 소재이기도 하다. 이같은 식상한 스릴러의 코드를 찾아낸 순간, 결국 관객들은 이 영화는 “꼭꼭 숨지 못한 공포”를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 유리창에 비친 모습처럼 또 다른 자아가 공포의 실체일수도 있다.
ⓒ 20세기 폭스코리아^^^

네 친구, 찰리는 누구지?

영화는 21세기형 자아에 대해 끝없이 반문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나와 너를 구분짓는 경계가 어디인지.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자아가 타자를 억누르며 ‘나 아닌 너’를 기르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어째서 현대의 공포 영화는 모두 하나같이 “네 친구, 찰리는 누구지”를 반문하는 형식의 영화를 자꾸 생산해내는 것일까. 이러한 공포영화의 한 맥은 헐리우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이어져 흔히 ‘식스센스(six sence)'류의 영화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식스센스류의 영화란 것은 자아와 타자의 경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공포감을 반전의 소재로 삼은 영화를 칭하는 것이다.

식스센스에 이어 디아더스(The others)에서 들어난 공포는 인간과 귀신. 육체적인 존재와 영적인 존재의 경계에 대한 인식의 혼란을 주로 삼았다. 그러나 영화 ‘아이덴티티’에 이르러서 내 안의 무수히 많은 심리적 자아와 타자를 주제로 삼은 인격장애에 대한 심리적 영화가 나와 관객들에게 허를 찌르는 반전을 선보였다. 인격장애라는 것은 한 명에게 수많은 인격이 존재해서, 그 인격이 각자의 특성을 존재할 때, 인격끼리 충동을 겪으며 나타나는 장애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심각한 장애자들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그 경계가 심한 사례가 많이 발견돼 자의와 상관없는 범죄 등이 벌어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평소 사회적인 인간이거나, 사회적으로 아주 관심밖의 인물의 전형에서 이러한 장애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사회가 기대하는 인격을 수반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기대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영화 숨바꼭질은 공포영화의 탈을 썼지만, 실제로 인격을 숨겨두고 관객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으며, 그 본질을 찾기란 매우 쉬운 것이었다. 때문에 영화 속에 충격적인 결말이나 반전을 기대하는 요즘 관객들의 심리에는 상당히 위반되는 반전 아닌 반전이었다.

공포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숨통을 매어오는 공포와 스릴을 즐기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는다. 스크린속의 박진감과 비명을 내지르는 스피커를 원하는 이유는 오직 그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단조로운 스토리속에서 반전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공포영화의 매혹이 전혀 다른, 일부의 매력으로 전이되어 가고 있다. 공포영화의 큰 매력이 아닌, 사소한 매력을 쫓는 영화감독들과 관객들. 반전의 문화를 만든 것은 그들이지만, 그속에서 더 나은 반전을 찾아야 하는 것도 그것이다. 그리고 마니아들이 즐기던 공포영화는, 그들이 쫓는 반전속으로 꼭꼭 숨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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