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샤콘느(Chaconne)
스크롤 이동 상태바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샤콘느(Chaconne)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하(Bach)와 비탈리(Vitalich)의 독특한 개성이 살아있는 곡

음악감상을 하든, 미술 감상을 하든, 정해진 것은 없다. 느끼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옆에서 '이것이 저것보다 훨씬 좋다'라고 훈수를 둔다고 하더라고 제입맛에 맞지 않은면 그만이다.

값비싼 옷이 있더라도 자기에게 맞지 아니하면 소용없듯이, 많은 사람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곡이라고 해도 정착 본인의 귀에 '별로'라고 생각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작품은 그 사람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한 작품이 되고 만다. 모든 예술작품이 모든 독자의 마음을 끌어 안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겠다. 이러한 예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하(Bach)와 비탈(Vitalich)의 샤콘느(Chaconne)가 아닐까 한다.

두 작곡가는 분명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동일한 작품명을 걸고 곡을 썼다. 하지만 이 두 곡을 듣는 독자는 (물론 이 곡을 어떤 연주가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또 그 느낌이 달라 질 수 있다) 한동안 난감함에 빠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곡의 부제에 연연하여 어떤 작곡가의 곡이 더 슬픈가에 주력할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둘 중 한명의 작곡가에게 표를 던져 줄것이다. 사람이 심리가 그렇지 않은가? 꼭, 순번을 정해야 하고, 우열을 가려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그렇기에 샤콘느(Chaconne)만큼 독자의 취향이 분분한 곡 또한 없다고 보인다. 어떤 이들은 바하(Bach)의 샤콘느(Chaconne가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다고 말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비탈리(Vitalich)의 샤콘느(Chaconne)가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이곡들이 왜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지?' 하는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감상은 독자의 몫이므로 이들의 의견에 할말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하(Bach)의 샤콘느(Chaconne)든 비탈리(Vitalich)의 샤콘느(Chaconne)든 이 두곡이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인 것에는 이의을 제기 할 수 없다고 본다. 이 두 곡은 분명 두 작가의 개성이 충분히 들어간 역작(力作)이기 때문이다. 바하(Bach)의 샤콘느(Chaconne)가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연주자의 4개의 바이올린 줄에 휘감긴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한다면, 비탈리(Vitalich)의 샤콘느(Chaconne)는 눈을 감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서서히 심장을 죄어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곡이다.

눈이 내려 아름다운 이 겨울.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지상에서 가장 슬픈음악' 샤콘느(Chaconne)를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