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도시의 중심에 다시 선 외교의 상징…이천, ‘서희’로 정체성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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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도시의 중심에 다시 선 외교의 상징…이천, ‘서희’로 정체성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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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표준영정 반영한 재건립…역사·교육·도시 브랜드 결합
서북방 322도 향한 동상, ‘강동 6주’ 외교 담판의 의미를 공간에 담다
이천시 중리동 서희동상오거리에 새롭게 들어선 장위공 서희 동상은 국가표준영정을 반영해 고려시대 복식과 역사성을 살린 상징 조형물이다. 높이 10m 규모의 동상은 서북방 322도를 향해 강동 6주를 응시하도록 설계됐으며, 외교와 담판으로 국익을 지켜낸 서희 선생의 업적을 공간 속에 담아냈다. /이천시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도시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언어는 ‘상징’이다. 이천시가 장위공 서희 동상을 새롭게 세운 것은 단순한 시설 정비가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는 작업에 가깝다.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가치를 현재와 미래로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외교로 국경을 확장한 인물을 도시 한복판에 다시 세운 결정은, 오늘날 지방정부가 역사와 도시 브랜드를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이번에 재건립된 서희 동상은 이천시 중리동 서희동상오거리에 들어섰다. 1965년 군민 성금으로 세워진 기존 동상이 약 60년 만에 교체된 것이다. 단순한 노후화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고증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배경에 있었다. 기존 동상이 조선시대 복식을 따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고려 성종대 인물인 서희의 시대성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전환점은 2015년이었다. ‘장위공 서희 영정’이 국가표준영정 제95호로 지정되면서, 보다 정확한 역사적 재현이 가능해졌다. 이천시는 이를 계기로 동상 재건립을 본격 추진했고, 고려 초기 복식과 시대상을 반영한 설계를 통해 상징의 ‘정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단순한 조형물 교체를 넘어 공공기념물의 기준을 끌어올리는 시도로 평가된다.

사업 추진 과정 역시 눈에 띈다. ‘서희선생선양사업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기본계획 수립과 타당성 조사, 주민공청회, 전문가 자문 등 단계적 절차를 거쳤다. 특히 고려시대 국가유산 자료를 토대로 한 고증 작업은 상징물의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행정 주도의 일방적 사업이 아니라 시민 의견과 전문가 판단이 결합된 구조라는 점에서 공공성 확보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새로운 동상은 높이 10m 규모로 조성됐다. 그러나 이 사업의 핵심은 크기가 아니라 ‘방향’에 있다. 동상은 서북방 322도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서희가 거란과의 협상을 통해 확보한 강동 6주를 상징적으로 바라보는 각도다. 공간 설계에 역사적 사건을 반영한 이 장치는 단순한 기념 조형을 넘어 ‘이야기를 담는 도시 디자인’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동상 전면에는 『고려사』 열전 기록을 바탕으로 한 코르텐강 아트월이 설치돼 시각적 서사를 강화했고, 인근에는 서희의 생애를 정리한 안내판이 배치됐다. 이 일대는 자연스럽게 역사 학습 공간이자 시민 휴식 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단순히 보는 동상이 아니라 ‘머무르고 이해하는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사업의 또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공공기념물이 교육 기능과 도시 경관, 시민 이용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동상이 ‘기념’에 머물렀다면, 이번 동상은 ‘경험’과 ‘해석’을 유도하는 구조를 갖췄다. 이는 도시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배치를 넘어 콘텐츠를 담는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천시는 이번 재건립을 통해 지역 정체성 강화라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서희는 단순한 역사 인물이 아니라 이천과 연결된 상징 자산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도시 중심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이는 지방 도시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이러한 상징 사업이 지속적인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후 활용’이 중요하다. 동상이 단순한 조형물에 머무르지 않고 교육 프로그램, 관광 콘텐츠, 시민 참여 행사 등과 연계될 때 비로소 도시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다. 공간이 만들어진 이후 어떤 이야기가 계속 생산되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이번 서희 동상 재건립은 과거를 복원하는 사업이 아니라, 현재의 도시가 선택한 메시지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무력이 아닌 협상으로 국익을 지켜낸 인물을 통해 이천시는 ‘지혜와 전략의 도시’라는 서사를 구축하려 한다. 동상이 서 있는 방향처럼, 이 상징 역시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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