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송은경 기자] 정책 문장에는 종종 두 개의 언어가 공존한다. 하나는 시민에게 들리길 바라는 언어, 다른 하나는 내부의 업무 방식으로 남는 언어다.
경기 광주시가 내놓은 ‘가까이에서 촘촘하게!’라는 기조는 얼핏 보기엔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 어디든 붙일 수 있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지역경제 활성화 종합 시책을 훑다 보면, 그 문장이 단지 표어로 소비되지 않으려는 방향이 드러난다. 지역경제를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큰 그림보다, 행정이 실제로 손을 뻗을 수 있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정해 놓았다는 점이 그렇다.
지역경제는 늘 “살리자”로 끝나기 쉽다. 경기는 어렵고, 소비는 줄고, 상권은 버티기 힘들다. 이 진단까지는 누구나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지속할지, 그리고 그 결과가 지역 안에서 어떻게 순환할지. 광주시가 내세운 전략은 크게 네 줄기로 읽힌다. 첫째, 관급공사에서 지역 내 구매를 더 분명하게 밀어붙인다. 둘째, 소상공인·중소기업에게 체감형 지원을 이어간다. 셋째, 국책사업과 민간 대형 공사장까지 ‘지역 상생’의 문턱을 세운다. 넷째, 농산물 팔아주기와 골목상권 소비 촉진을 생활 영역으로 끌어온다.
이 네 줄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결국 “돈이 지역 밖으로 새지 않게, 지역 안에서 한 번 더 돌게”다. 말이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지역경제는 ‘정책 하나’로 반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선택이 반복되고, 그 반복이 시민의 습관과 기업의 거래 구조에 닿을 때 변화가 나타난다. 그래서 지역경제 정책에서 중요한 건 자극적인 신규 사업보다 ‘운영 방식’이다.
광주시가 강조한 첫 번째 축은 관급공사와 물품·용역 계약에서의 지역 내 업체 이용 확대다. 2025년 기준 지역 내 구매 비율이 85.7%, 금액으로 655억 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잘했다”로 끝낼 수도 있지만, 흥미로운 지점은 ‘어떤 단계에서’ 지역 참여를 설계했느냐에 있다.
시는 설계·발주 단계부터 지역 생산품을 적극 반영해 지역업체 참여를 높였다고 설명한다. 이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지역업체 참여가 보통 계약이 임박한 시점에 “가능하면 지역 업체를”이라는 권고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 단계에선 이미 게임이 끝나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설계와 발주 단계에서 지역 생산품 반영을 전제하면, 참여는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 된다. 행정의 역할은 결국 기본값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로 나타난다.
공사 분야에서 97% 이상을 지역 내 업체가 수행했다는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 수치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할 수는 없다. 지역 업체의 참여가 늘어난 만큼, 공정한 경쟁과 품질 관리, 하도급 구조의 투명성 같은 다음 과제가 따라온다. 그럼에도 ‘지역 참여를 늘리는 행정적 장치’를 일상 업무로 끌어내리려는 방향성은 분명해 보인다.
지역경제가 어려울수록 시민들의 체감은 골목에서 먼저 나타난다. 그런데 골목을 살리려면 골목만 바라봐서는 부족하다. 지역 안에 큰 공사장이 들어서면 그곳은 지역경제의 엔진이 될 수도, 반대로 지역 밖 자본만 지나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국지도 98호선, 제2외곽순환도로 같은 국책사업은 지자체가 전권을 쥐기 어렵다.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오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목표를 설정하고 참여를 끌어냈다는 것은, 행정이 할 수 있는 지점에서 끝까지 밀어보려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역경제 정책이 ‘권한’의 경계에 부딪힐 때 쉽게 멈추지 않겠다는 태도다.
민간 대형 공사장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 중앙공원·송정공원·곤지암역세권 등 대규모 민간 공동주택 공사 현장에서 지역업체 참여를 유도해 508억 원 규모의 지역 실적을 거뒀다고 한다. 민간 사업에서 지역 상생을 이야기하는 건 늘 민감하다. 강제할 수 있는 방식이 제한적이고, 자칫하면 보여주기용 협약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적 수치를 제시하며 ‘지역 참여’를 성과로 관리하려 한 점은, 이 정책이 문장에 머물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지역화폐는 칭찬과 비판이 늘 함께 붙는다. 효과가 있다, 없다. 예산 대비 효율이 낮다, 소비 촉진에 도움이 된다. 논쟁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지역화폐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적어도 현장에서 느끼는 건 이것이다. “지역에서 쓰도록 유도하는 가장 단순한 설계”라는 점. 광주사랑카드는 2025년 누적 발행액 1천833억 원을 기록했고 지역 내 소비 촉진수단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기자수첩에서 이 부분을 바라볼 때 중요한 건 “발행액이 크다”가 아니라, 지역 안에서 돈이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장치로 작동하는가다. 돈은 빠르게 이동한다. 특히 대도시권 생활권에서는 소비가 지역 경계를 넘어가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럴수록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머무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광주사랑카드는 그 이유를 가장 단순하게 제공한다. 다만 단순한 만큼, 지속성은 관리의 문제로 바뀐다. 발행과 운영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행정의 체력, 그리고 시민이 피로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설계가 관건이다.
여기에 특례 보증, 경영 안정자금, 경영환경 개선 사업 등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을 결합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지역화폐가 소비 촉진의 ‘앞단’이라면, 금융·경영 지원은 버티기의 ‘중간단’이다. 지역경제 회복은 앞단만 밀어서는 안 된다. 버티는 시간이 길수록 폐업은 늘고, 상권은 얇아진다. 그 사이를 메우는 정책이 필요한데, 광주시는 그 조합을 유지하려는 쪽으로 가고 있다.
온라인 판로 확대를 위한 광주e장터에는 320개 기업이 입점해 있다고 한다. 플랫폼 하나 만든다고 판로가 열리지는 않는다. 입점은 시작이고, 이후에는 노출, 물류, 고객 대응, 결제, 마케팅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판로’라는 단어를 정책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지역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가장 크게 느끼는 벽 중 하나가 “만들어도 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생산 지원, 시설 지원이 아무리 늘어도, 마지막에 팔리지 않으면 남는 건 재고와 부담뿐이다. 광주e장터는 그 마지막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로 읽힌다. 성공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최소한 행정이 ‘지역 기업의 판매’라는 결과를 성과로 관리하려는 방향은 긍정적이다.
자연채 푸드팜 센터, 농협 직매장, 지역축제 직거래장터 운영을 통해 2025년 87억 원 규모의 농산물 판매 실적을 올렸다는 내용은, 지역경제 정책이 산업이나 건설·계약 영역에만 머물지 않도록 만든다. 농산물 소비는 결국 생활의 선택이다. 시민이 어디서 사느냐가 농가의 수입으로 이어진다.
농업 정책을 취재하다 보면 “생산은 늘었는데 판로가 없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래서 ‘팔아주기’라는 표현이 등장하면, 어떤 방식으로 연결했는지가 중요해진다. 광주시는 직매장과 축제 직거래장터 등 시민 접점이 있는 공간을 활용했다. 이는 지역경제 정책을 ‘행정의 숫자’에서 ‘시민의 습관’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다. 시민 참여가 정책의 일부가 되는 순간, 정책은 지속 가능해진다.
정책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공직자 참여다. 1천400여 명의 공직자가 부서별로 월 1회 ‘외식UP의 날’을 운영하며 골목상권 이용에 나선다는 대목은, 단순한 소비 촉진 캠페인을 넘어선다. “시민에게 하라”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하겠다”는 메시지다.
이 정책은 수치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지역경제는 결국 분위기와 심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특히 골목상권은 더 그렇다. 손님이 줄어들면 가게는 위축되고, 위축된 가게는 다시 손님을 줄인다. 그 악순환을 끊는 데 필요한 건 ‘처음 한 번의 선택’이다. 공직자들의 참여는 그 선택을 행정 조직 내부에서 먼저 만들어보려는 시도로 읽힌다.
시는 2026년 지역경제 활성화 목표를 2천637억 원 규모로 설정했다. 관급공사 지역 내 구매, 광주사랑카드 발행, 농산물 팔아주기, 중소기업·소상공인 육성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기자가 보고 싶은 건 목표 숫자보다 ‘끊김 없이 이어지느냐’다.
지역경제 정책이 시민에게 체감되려면, 최소한 1~2년 단위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정책이 바뀌면 시민은 지친다. 특히 상인과 기업은 더 빠르게 지친다. “이번에도 잠깐 하다가 끝나는 거 아니냐”는 회의감이 생기는 순간 정책 효과는 반감된다. 광주시는 ‘지속 추진’ 방침을 밝혔다.
여기에 2026년 경기도종합체육대회 기간 광주사랑카드 적립금 행사로 전통시장과 외식업 소비를 집중 유도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이벤트성으로 끝날 수도 있는 스포츠 행사를 지역경제 정책과 연결해 ‘지역 내 소비 집중’으로 설계하겠다는 뜻이다.
시의 지역경제 활성화 시책은 행정 권한과 자원을 지역 내 소비와 연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급공사는 행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쥔 레버이고, 지역화폐는 소비의 흐름을 바꾸는 장치이며, 판로 지원과 농산물 유통은 생활 영역으로 정책을 확장한다. 여기에 공직자 참여 같은 상징적 실천까지 더해졌다.
물론 지역경제는 이 한 번의 발표로 바뀌지 않는다. 숫자와 목표는 선언에 가깝고, 실제 평가는 집행 과정에서 드러난다. 이번 정책은 ‘가까이에서 촘촘하게’라는 기조 아래 지역 내 실행 과제를 중심에 둔 내용으로 제시됐다. 앞으로 예산과 사업 집행 과정에서 이 기조가 어떻게 반영되는지가 정책의 실질적 평가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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