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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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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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침묵에 대해 인간이 조심하지 않으면, 언젠가 인공지능을 숭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용해 권력자들은 또 다른 영구 집권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침묵의 인공지능을 십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묵에도 입이 있다.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를 넘어, 상황과 의도에 따라 다양한 목적과 종류가 있다.

좋은 침묵은 경청과 존중의 의미가 있다. 상대방의 말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극적인 경청(active listening)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 상대방의 존재와 의견을 깊이 존중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도 있다. 이 경우, 침묵은 아주 좋은 발언(Silence is a very good statement)이라 할 수 있다.

침묵은 또 사고와 성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성급한 반응을 내보이는 게 아니고, 생각할 여유를 제공,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자기 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침묵은 성직자의 명상과 같다. (Silence is like a priest's meditation)

갈등이 고조될 때, 침묵은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을 되찾을 시간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침묵은 억제력이다. (Silence is a deterrent.)

메시지 전달 전 침묵은 청중의 기대감이나 주의 집중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협상이나 법적 공방에서는 상대방에게 압박을 주거나 추가 정보를 이끌어 내는 전술로 사용될 수 있다. 침묵은 전술가이다.(Silence is a tactician)

침묵은 심리적, 신체적으로 유리한 점도 있다. 소음에서 벗어나 침묵 속에 머무는 것은 혈압 감소,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 등 신체적 건강 증진과 창의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침묵은 전술가이다.(Silence is a tactician)

침묵은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이다. 침묵은 암처럼 소리 없이 커진다. 그 유명한 가수 폴 사이먼’(Paul Simon)의 노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The Sound of Silence)에서 침묵은 암처럼 자라난다”(Silence like a cancer grows)는 가사를 썼다. 인간의 침묵은 마치 암처럼 커지면서 퍼져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폴 사이먼은 노래에서 개인적 소회를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침묵의 목소리라는 이 노래를 통해 침묵이라는 암적인 존재에 대해 경고음을 울린 것이다.

침묵은 무관심의 결과일 수도 있다. 암과 같은 침묵은 무지, 탐욕, 광신, 폭력, 심지어는 화석연료를 사랑하는 일과 같은 개인적, 사회적 암이 번성하고 전이(轉移)되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암과 같은 침묵을 방치하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를 파멸로 몰고간다.

(Cancer)기회주의자이기도 하다. 행동주의 시인, 작가, 블로거 이자 다섯 권의 논픽션, 세 권의 시집 “Children to the Mountain, The Last recurrent Dream, Conversations with Poetry”과 회고록 “Finding Myself in Time: Facing the Music”의 저자 게리 린도르프(Gary Lindorff)는 미국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후 암이 얼마나 기회주의자인지 목격할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이다.

린도르프는 “(당시) 미국 전역을 뒤덮었던 그 침묵. 푸른 하늘에 비행기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불길한 침묵, 적절한 침묵, 기도하는 침묵, 의미심장한 침묵, 위험한 침묵이었다.”면서 그 침묵 속에서, 집단 심리 속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그 순간이 이 나라가 정신 분열증에 걸린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니, 그냥 생각을 멈추고 있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마치 모든 생각을 멈추고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참사는 일종의 업보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 미국 기업 제국의 막강한 권력이, 비록 문자 그대로 무너지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몰락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린도르프는 그 후 며칠 동안, 빌딩의 독성 잔해 속에서 다른 종류의 미국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의 감히 바라는 듯한 침묵이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복수만을 갈망하는 암적인 침묵도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크고 작은 집단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감당하기 너무나 힘든 사건의 여파 속에서 침묵으로 추모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침묵 밖의 워싱턴 막후에서는 권력자들이 이 순간을 어떻게 이용할지 궁리하는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이 내놓은 것은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청사진이었다. 미국에서 테러리스트는 곧 반미(反美)적인 악당에 불과했다. 부시 정권(아들 부시)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치권력자들은 그 침의 순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순수한 국민들의 침묵을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아예 침묵의 목소리(the sound of Silence)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침묵에는 힘과 지혜, 그리고 선택이 있다. 의미 있는 침묵, 사려 깊은 침묵이 있다. 하지만 폴 사이먼이 경고했던 침묵도 있다. 바로 무의미하고 생각 없는 침묵, 암적인 침묵, 하나의 예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초토화할 당시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나타났던 침묵이 바로 암적 침묵이다. 그런 침묵은 가르침 없는 이야기, 생각 없이 소비하게 만드는 광고, 그리고 피상적인 이야기로 쉽게 채워진다. 권력자들은 이렇게 침묵을 이용, 사회를 권력 유지에 좋도록 꾸며 나간다.

과거에 겪어 보지 못했던 첨단 기술이 인류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 속도이다. 인공지능은 대부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인공 지능은 침묵의 대명사이다. 소리는 없지만 수많은 것들을 쏟아내면서 인류를 압박하려 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침묵에 대해 인간이 조심하지 않으면, 언젠가 인공지능을 숭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용해 권력자들은 또 다른 영구 집권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침묵의 인공지능을 십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기 전에 인공 지능(AI)에게 인류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 협조하는 AI를 만들어 가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침묵은 이 세상을 또 다른 침묵의 세상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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