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레오 14세(Leo XIV)가 탄생했다. 역대 교황 가운데 최초의 미국인 출신이자 페루 시민권자인 그는 가장 국제화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교황을 뜻하는 Pontifex(폰티펙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다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의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교황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는 ‘가장 위대한 교황’이라는 뜻으로 “가장 위대한 교황이 ‘다리-bridge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 역시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새 교황 레오 14세가 읽었던 치클라요(Chiclayo) 주교(페루 시절의 자신의 지위)의 모토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다수이지만, 한 분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입니다.”(Although we Christians are many, in the one Christ we are one)라는 말이 있듯, 다양하고 복잡한 다수를 하나로 묶어내기 위한 ‘다리(橋梁)’를 만드는 임무가 교황에게 있어야 한다는 기대감 역시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로마의 일곱 언덕 위에 하얀 연기(white smoke)가 피어오르면서 새 교황 막시무스 선출을 알렸다. 그가 레오 14세이다. 전 추기경이자 페루의 치클랴요 교구장이었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는 당일 정오 ‘강복의 발코니’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자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있던 15만 명의 신자와 군중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미국의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편집장인 제임스 힘버거(James Himberger)는 “레오 14세가 전통적인 붉은색 교황복인 모제타(mozzetta)를 입고 나온 새 ‘그리스도의 대리자’는 신자들과 온 세상에 축복을 내리고 가톨릭교회에 대한 자신의 소망을 밝혔다.
그는 ”우리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합니다. 다리를 놓고 대화하며, 항상 열린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 광장처럼, 우리의 자선, 우리의 존재, 대화, 사랑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된 이 추기경단 비밀회의(콘클라베, conclave)는 바로 전날에 소집되었는데, 분열된 교회가 결국 무너지고 장기화 된 교착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요즘 세계는 곳곳에서 분열, 갈등, 난민 발생, 극단적 성향의 부상 등 매우 혼란한 세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국인 출신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택할지 매우 의문스러웠다는 게 외신 다수의 관측이었다.
미국 출신의 사상 첫 번째 교황인 프레보스트는 1955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바티칸의 공식 전기에 따르면, 그는 1982년 사제로 서품되기 전에 빌라노바 대학교(Villanova University)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새 교황의 미국 혈통은 교황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로 국제적인 인물이다. 그는 성직 생활의 상당 부분을 페루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Augustinian Order)에서 보냈고, 페루 시민권을 취득했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Pope Francis)에 의해 교황청에 임명된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주교성성 장관(Prefect of the Dicastery for Bishops), 교황청 라틴아메리카 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the Pontifical Commission for Latin America) 등을 역임했다.
새 교황이 존호(Regnal name : 성스러운 세상의 이름, 즉 교황 이름)를 선택한 것은 교회 내 ‘자유주의’와 ‘보수파’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신호라는 게 제임스 힘버거의 풀이이다.
1878년부터 1903년까지 재위한 마지막 교황 레오(13세)는 교리에 대한 날카로운 ‘전통주의’와 ‘사회 개혁’에 대한 열렬한 지지로 유명했다. 유명한 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Of New Things, 새로운 사태)에서 레오 13세는 산업 자본주의의 과잉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톨릭 노동조합의 형성, 공정한 임금, 인도적인 근무 조건을 옹호했다.
레오 13세는 또 다른 문제에서 19세기 유럽에서 부상하는 민족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유지했다. 이를 통해 레오 13세는 교황의 세속적 권력이 약화된 후에도 국제기관으로서 교황의 중요성을 높였다. 이탈리아 통일과 교황령 정복(1870년 로마 함락으로 정점을 찍음)으로 레오의 전임자인 비오 9세는 ‘바티칸의 포로’(prisoner of the Vatican)가 됐다.
레오 13세와 레오 14세의 세계는 유사성이 많다.
2025년의 세계와 레오 14세 교황은 점점 커지는 민족주의와 강대국 간의 경쟁 속에서 레오 13세 교황의 세계와 적지 않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레오 14세 새 교황은 아직 세계 정세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공식적으로 무신론적이고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가 주교를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중국과의 ‘바티칸 협정’(Vatican concordat)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
이 바티칸 협정은 2028년에 갱신될 예정이다. 그는 곧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2018년에 이 협정을 협상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 추기경과 그가 어떻게 협력하는지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이 협정은 “교황청은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를 받아들이고, 중국은 교황을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로 인정하며, 주교 임명과 관련한 최종 결정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욱 시급한 문제는 레오 14세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포함해 자국의 지도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이다.
미국 대통령과 미국 교황의 동맹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중세 시대 교황과 신성 로마 황제 사이의 우호 관계를 기대했던 사람들만큼이나 실망할 것이다. 추기경 시절 프레보스트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는데,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민, 난민, 환경 보호와 같은 초국적 문제의 대변인으로서 교황직을 강화해 온 방식과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69세의 레오 14세 교황은 당분간 성 베드로의 왕좌에 앉아 통치할 가능성이 높다. 그 기간 동안 강대국 간의 경쟁은 국제 및 다자간 기구들을 계속해서 압도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전개됨에 따라, 전 세계 13억 명이 넘는 가톨릭계의 수장으로서 교황은 세속적인 권위에 반대하거나 혹은 그들과 협력하여 지구 공동체의 우려를 표명하는 독특하고 외로운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교회 내부의 뿌리 깊은 분열과 심각한 재정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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