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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산수국 ⓒ 우리꽃 자생화 ^^^ | ||
가겟집 끝순이랑 가재 잡으러 갔다
마을에서 한 마장 떨어진 산 개울 응달
작은 돌을 뒤집으며 머리를 맞대면
꽃향기였다 순이의 머리칼
빨래비누 냄새
작은 가재 구멍으로 더 작은
두 손을 포개어 디밀면 늘 물리는 쪽은 순이 손가락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깨알 만한 생채기에 몰리는 깨알 만한 피
이내 둘이는 가재의 알을 떼어먹으며
겸연쩍게 웃기도 했지만
미국 레이션 깡통에 가재가 그득하고
엉킨 가재들 사이에 어둑살이 비집고 들면
돌아오는 길이 무섭지 않았다 여우가 나온다던
서낭당도 비탈밭둑 모서리 상여집도
몇 해전 난리 통에 마을 사람들이
생매장되었다던 개울을 건널 때도
갈림길에서 순이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몇 걸음 딸려오다 잽싸게
도망치던 귓불 발간 끝순이
학교 옆 언덕빼기 제멋대로인
참옻나무 새순을 막대기로 후려쳐 보지만
아무 약속도 없었다 아버지 따라
읍내 학교로 전학했고 오랜 날
세상을 바람처럼 떠돌다
그때 너 만한 새끼들도 가졌다
순이야 부질없는 세월 따라
중년이 되어버린 나처럼 그 개울가
가재 잡던 기억을 떠올릴까 떠올리며
더 고단한 세월의 가재를 잡으며.
내가 어릴 때 살았던 동산이라는 마을 앞에는 유리구슬보다 더 맑은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바닥이 환히 드러다 보이는 그 도랑가에 나가 물 속에 잠긴 납작돌을 뒤집으면 어김없이 가재가 납작돌처럼 닙작하게 엎드려 있었습니다. 간혹 그 납작돌 아래에서 자라 새끼나 거머리가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굳이 숲이 우거진 계곡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도랑에 널린 게 가재나 고디(다슬기)였습니다. 그 도랑에는 늘 반짝거리는 은어떼가 날쌔게 몰려다녔고, 민물새우, 물방개 등을 비롯한 쉬리, 송사리, 송어, 잉어, 미꾸리, 장어, 메기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수없이 많은 물고기가 살았습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가시나 머스마 할것없이 그 도랑에 나가 발가벗고 물장구도 치고, 개헤엄도 치면서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눈동자가 토끼눈처럼 발갛게 물들 때면 물밖으로 나와 물 수제비를 날리기도 하고, 납작돌을 뒤집어 가재를 잡기도 하면서 그렇게 배 고픈 하루를 보냈습니다.
또한 그 도랑은 우리 마을 사람들의 훌륭한 빨래터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밤이면 우리 마을 누나들은 그 도랑에 나가 허연 살을 드러내고 목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만 해도 정겨웠던 그 마을도,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던 그 도랑도, 큰 집게를 벌리며 아둥바둥대던 그 가재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시인은 어린 날 "가겟집 끝순이랑 가재 잡으러 갔"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한 마장 떨어진 산 개울 응달"에서 끝순이랑 "작은 돌을 뒤집으며 머리를 맞대"다가 문득 꽃향기를 맡습니다. 하지만 그 꽃향기는 다름 아닌 "순이의 머리칼"에서 나는 "빨래비누 냄새"였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기억 속에도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가 숨어 있습니다. 또한 이 시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그때 가재를 잡아 넣었던 그 깡통은 한국전쟁 때 미군이 먹고 버린 레이션 깡통이었습니다. 그리고 끝순이와 건너던 그 개울가에서 "마을 사람들이/생매장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릴 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시인 또한 그러한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기억 속에도 이데올로기가 남긴 상처는 결코 지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반드시 추함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그렇게 말입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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