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괴뢰군의 공격^^^ | ||
9월 5일은 전쟁이 개시된 이래 가장 치열한 전투가 낙동강변 곳곳에서 벌어졌다.
승승장구로 밀고 내려오던 공산군은 유엔군과 국군의 완강한 반격을 처음 당하자 장기전을 각오하고 곳곳에 참호를 파기 시작하였다.
적의 주 공격점인 대구 정면에서 적은 8월 5일 낙동강의 도하를 강행하여 8월 10일에 이르는 동안 왜관에 교두보를 설치하고 유엔군 후방에 소수의 병력을 침투시키면서, 일대 공격 준비에 나섰다. 유엔군은 이 중대한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8월 16일 B29 폭격기 99대로 왜관지구 적의 집결지에 대하여 2차대전 이후 최대의 폭격을 감행하여 이 지역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러나 적은 다음날인 17일 4개사단을 수습하여 군위에서 북쪽으로부터 대구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고 18일에는 대구 북방 12킬로 지점까지 육박하였다. 정부의 일부기관은 부산으로 이전하고 대구시에는 소개령이 내렸다. 사태는 붕괴 직전의 위급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다.
미해병사단과 24사단으로부터의 응원군이 국군 제1사단, 미 제1기갑사단, 영국 제27보병여단이 방어진으로 급파되었다. 이렇게 하여 적의 공격은 저지되고 이어 개시된 추격전은 8월 20일까지 적의 공격부대 전부를 격퇴, 소위 적의 8.15공세는 분쇄되었다.
이후 8월말까지 소규모의 전투만 벌어지고 전선은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이러는 동안 국군은 반격 준비에 바빴으며 적은 제2차 공세를 계획하여 이를 최후의 공격으로 삼았다. 즉 대구 정면에서 방어선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적은 공격점을 동부의 국군 방위지구로 결정하고 남부에서는 마산지구에서 공격을 개시하기로 하였다.
즉 동부에서는 대구작전에 참가하였던 공산군 15사단이 청송 방면으로 이동되고, 제17전차연대가 의성 방면으로 증강되어 제5, 제8, 제12, 제15의 4개 보병사단과 전차 1개연대가 집결하였다. 남부에서는 괴뢰군 4개 보병사단과 전차연대가 총집결하여 9월 1일 12시를 기하여 남북 양면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여 왔다.
이 공격의 성패 여하에 따라 그들의 침략이 성공을 거두느냐 못 거두느냐의 마지막 결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적의 병력은 보병 10만, 포 110문, 전차 52대를 헤아렸다. 그러나 이미 적의 사기는 저하되고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 나온 인민군 병사들은 전의를 잃고 있었다.
9월 4일 북부에서 적은 최후의 공격을 시작하여 그 공격의 선봉으로 하여금 영천-포항 가도를 넘어 남하시켰고, 9월 6일에는 영천에 돌입하였다. 국군 제2군단은 이들의 위협을 훌륭히 격퇴시켰고, 9월 13일에 이르러서는 최강을 자랑하던 괴뢰군 제15사단은 포병연대와 함께 국군의 포위망에 끌려들어 완전히 섬멸당하고 말았다.
9월 12일 미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최대의 위기는 지나갔다”고 발표했고 남부에서는 새로이 편성된 미 제9군단인 제2사단과 제25사단이 강력한 야습을 감행, 적을 격퇴하였다. 이로써 남북 양방면에서의 적의 최후의 공세는 끝나고 전쟁이 시작된 이래 계속하여 온 후퇴와 지연 작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11회-북괴군의 패주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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