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남북 모두 친미국가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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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은 남북 모두 친미국가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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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미소중일(親美疎中日) 정책이 정답

^^^▲ 고구려 전성기때 모습^^^
요즘 북한이 핵무기 폐기까지 약속하면서 북미 국교수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반도가 북미간의 진지한 접근 모드로 돌변함에 따라 차디찬 눈발 날리던 겨울에서 갑자기 평화의 새싹이 파릇파릇 움트는 따뜻한 봄날로 옮겨가고 있다.

이에 짝사랑 상대를 잃어버린 아베 일본만이 아직도 ‘일본인 납치’와 ‘위안부 강제 연행 없었다’며 강짜를 부리고 있을 뿐이다.

한편 한국의 노무현정부는 그동안 백치외교로 많은 실수를 범했다.

특히 386으로 대표되는 정책 주도층이 너무도 나이브하고도 유치한 탓에 ‘반미일(反美日) 친중정책’ 일변도로 외교를 해왔다. 그럼에도 일본의 독도주장은 물론 중국조차 동북공정으로 만주지역은 물론 남쪽의 이어도 해역마저 중국 영해로 하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장차 한반도 전체를 식민지나 직접 지배하여 예속화 하겠다는 제국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중국의 무례하고 노골적 외교와 함께 일본의 독도주장 또한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야욕을 드러냄에도 우리의 노무현 정권은 ‘백치아다다 식 외교’로 일본 우익들의 간계에 빠져 현충일에 방일하고 북핵문제 해결하겠다고 친중 정책에 온 신경을 쓰니 한심할 뿐이다.

현충일 방일로 간사한 일본우익들은 그날 바로 유사법제를 통과시키는 외교적 결례를 뻔뻔스레 행하였고 중국은 중국대로 한국정부를 내려다보는지 오늘도 동북공정에 여념이 없다. 이처럼 간도 쓸개도 없는 망신외교를 일본과 중국으로 부터 당하고 있음이니, 이는 주변국을 너무 모르고 덤벙덤벙 아마추어적 외교를 하기 때문에 자초했던 대실수였다.

반면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때 한국의 역사관은 지나칠 정도로 축소지향적인 순혈주의(純血主義)를 추구하다가 일제의 식민사관과 합쳐져 오늘날 우리의 역사는 팍 쪼그라들고 말았다.

더불어 역사인식도 바람 빠진 풍선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발해의 역사를 잃고 청나라의 역사마저 오랑캐 역사라 버림으로써 한반도에 갇히는 우(愚)를 범함으로써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을 자초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는 고려시대 구 삼국의 사서를 기초로『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중국을 의식해 우리역사를 축소하여 사대적으로 기술한 것이 첫 번째 원인이요.

둘째로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성립된 정통성 약한 조선이 자주정신을 잃고 사대주의로 일관함으로써 고조선→고구려의 후속국가로 이어지는 발해→금나라→청나라 역사를 스스로 우리역사에서 지우고 말살함으로써 발생했다.

그들을 우리민족으로 포함시키지 못하고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에 함몰됨으로써 우리 역사를 스스로 축소한 것이니, 오늘날 중국으로부터 오만하고 거만한 동북공정을 당하고 있음이다.

게다가 일제시대의 식민사학은 독립 후 환갑이 넘은 대한민국 사학계를 유령처럼 감싸면서 아직도 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오호통재일 뿐이다.

이는 우리 역사를 크게 보고 중국 사서에 기록된 백제와 고구려의 영역이라든가, “금나라 태조 아골타(金太祖 阿骨打,1068년~1123년)의 8대조는 통일신라 왕족 출신의 김함보(金函普) (『宋史』)”라는 기록조차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에게 ‘자신의 역사도 모르는 바보’라는 비웃음과 업신여김을 당하며 동북공정을 보면서도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가위눌려 있음에도 우리 사학계가 그 속 좁은 틀을 깨지 못하고 있음이다.

중국 남조 사서에 “백제가 중국에 요서군과 진평군의 2개 군을 두었다” 거나, “백제가 위나라와 싸워 이겼다(동성왕 때)” 는 기록조차 우리의 일부 사학자는 이를 믿지 않거나 오기(誤記)라 우기는 용감함을 보이면서 계속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니 오호 통재요, 원통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금나라 왕족의 이름조차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말라!’고 애신각라(愛新覺羅)라 지었음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너무나도 만주지역에 대해 무심했음을 알 수 있다.

사대의 폐해는 끝이 없었다.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淸)나라의 조선에 대한 침입으로 일어난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싸움이 병자년에 일어나 정축년에 끝났다.

이때의 전쟁조차 북쪽 동포들의 조선 침입으로 보지 않고 오랑캐의 침입이었다고 하여 병정노란(丙丁虜亂)이라고도 하였으니, 유교의 폐해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중국, 일본은 영토 확대욕이 강한 나라

중국인들이 조선을 그렇다고 야만적인 동이가 아닌 중화(中華=華夏)민족으로 보아주었던가?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일방적으로 화답 없는 짝사랑에 불과한 큰 착각 속에 북쪽 동포들을 잃고 역사마저 내팽겨 쳐 버리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그처럼 실패한 역사를 보면서도 현 참여정부 또한 반미친중 외교로 일관하고 있음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큰 잘못이다. 중국의 속성을 너무 모르고 있다할 것이다.

대륙의 한족(漢族)은 서부에 있는 화산(華山)에서 처음 일어난 화하족(華夏族)이다. 그들은 은(殷) 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처음으로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한 주(周)나라를 세움으로써 그 세력을 키워왔다. 그들은 은나라 사람들이 만든 상형문자마저 한나라 때부터는 한어(漢語)라 주장하며 정리, 그때부터 주변국들도 한자(漢字)라 부르니 동이족이 만든 문자마저 강탈당하게 된 것이다.

한자를 중국 것으로 만든 한족은 이후 중화(中華)문화를 기반으로 타 민족을 문화적으로 흡수해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엄청난 잡식성(雜食性) 문화로써 소수민족을 흡수해버리는 괴물문화로 자리 잡았다.

중화문화의 소수민족 흡수와 북방 기마민족인 몽골족의 원나라와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면서 오늘날과 같은 큰 영토를 만들어줬다. 당나라 때만해도 중국에 당당히 맞섰던 티벳(토번국)이었다. 그러나 청나라에 의해 점령당한 후 오늘날 중국이 티벳을 지배, 점령하는 근거가 되고 있음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나타나듯 동서남북 사방을 가리지 않고 다른 나라를 직접 지배하려는 영토적 야심은 끝이 없다.

중국은 백제멸망 후 한반도 서부 백제 땅에 둔 웅진도독부를 7년여 두었던 것과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평양에 두었?안동도호부를 근거로 중국 영토라 주洋玖?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나라다. 가히 불가사리 영토욕의 탐욕스런 국가라 할 것이다. 하물며 신라까지 접수하려 계림도독부까지 차렸던 중국이다.

이웃 일본 또한 영토적 야심은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독도를 아직도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그들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 번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명나라와 강화담판을 할 시 38선을 남북으로 갈라 남북을 반씩 차지하자는 최초의 제안까지 했던 나라다. 그 후 메이지유신 성공을 발판으로 결국 한반도를 강제 병합하여 수중에 넣었던 일본이다.

우리 주변국 어디를 보나 영토적 야심이 끝도 없는 나라들뿐이다. 이에 비하면 미국은 비록 경제적 식민지 상태의 국가를 세계 각지에 두려하고 실제 군사거점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 영토에 대한 흑심은 제일 없다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영토적 야심을 바탕에 깔고 직접 지배를 노리는 불량국가라면 미국은 적어도 그런 흑심은 없다는 것이다.

친미소중일(親美疎中日)정책만이 한반도 국가의 유일 외교책

때문에 영토보전을 제일로 해야 하는 한민족, 한반도 국가는 남북을 가리지 말고 친미소중일(親美疎中日)국가로 가야한다. 미국과는 모든 면에서 친하게 지내고 강도처럼 땅 욕심이 강한 중국, 일본과는 일정 거리를 두는 외교정책을 행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그 길만이 우리민족을 영원히 한반도에 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장차 중국이 경제, 정치, 군사적으로 미국마저 압도할지라도 친미소중(親美疎中-미국과는 친하고 중국과는 소원) 정책으로 가야한다. 섣불리 386 무능정권처럼 오로지 친중 정책만을 고수하다가는 중국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함은 물론 나라마저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고 말 것이다. 작금 중국이 추구하는 동북공정과 억지 역사왜곡은 그 전주곡이다.

땅 욕심이 지나친 중국을 물리치기 위해서도 좌파정권의 유치한 반미일친중 외교가 아니라, 친미소중일(親美疎中日)정책이 우리나라 외교의 근간이 되어야한다는 점이다.

친미소중일 정책이란 미국과는 국방과 경제 문화적으로 친미 정책을 추구하되, 점차 대등한 관계로의 발전을 꾀함을 말하며, 소중일정책이란 중국, 일본과는 경제, 문화적으로는 친하게 지내되, 정치적으로는 멀리 소원하게 지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 역사를 만주평원으로 확대시켜 그들과 인종적인 면은 물론 역사마저 공유해야 함이요, 영토적 야심이 큰 중국과 일본과는 정치적으로 멀리 소원하게 지내고 땅 지배욕심이 없는 미국과 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이를 일러 원교근공(遠交近攻-먼 나라와는 가깝게 지내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와는 멀리함)정책이라 하는데, 일찍이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가 주장한 외교책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를 모름은 그 통치자가 무능하거나 형편없는 위인에 다름 아니라는 얘기다. 하여튼 대한민국의 현재는 난세요, 암울하고 불행한 긴 터널 시대를 지나고 있는 시각임에는 누가 봐도 틀림없다.

이러한 비상시국에 처하여 북한마저 친미외교만이 북한의 유일한 살길이라는 판단 하에 북미 평화 무드로 옮겨감은 우리민족의 평화적 통일과 후손들을 위해 좋은 일이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 후 한반도 전체가 친미국가로 외교노선을 정한다면 중국과 일본이 감히 한반도를 무력으로 침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고로 한민족 누구라도 이념과 당을 떠나 북미의 평화적 접근 모드에 박수를 보내며 적극 지지해야할 것이다. 그 길만이 평화통일은 물론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영원히 번영할 수 있는 외교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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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역사 2009-08-16 06:01:58
고대사(신라제외),중세역사까지를 보면 자주적인 정신과 정복욕이 강한 조상들의 흔적을 서적이나 인터넷 자료에서 많이 찾아볼수 있었지만. 근대사로 접어든 조선시대부터는 박사님이 쓴 글이 거의 맞습니다.
우리는 한 형제들이었던 여진족을 알아보지 못함과
그들의 나라를 왜 우리 국사로 편입해야되는지 조차 오히려 되 묻는 그런 일까지 발생되고 있는 현재죠...
나머지는 알고싶어하지도 않거니와...
천년가까이 중국을 상대로 이어져온 사대주의적 생각에
우리민족은 앞으로 그 독자적인 민족의 정신도 없이
어느 한쪽에 흡수될까 걱정입니다

삐삐 2007-03-14 22:40:07
박사님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이정부는 반미 반일 친중 정책으로 나가니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 미국때문에 우리가 독립ㅇㅣ된것이지 독립운동을 해서 된것은 아니지않읍니까 그리고 경제적인 원조도 많이해주었고 무었보다도 피흘려가면서 이자유민주주의를 지켜주었을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도 지켜주고 있는데 이런 나라를 멀리 한다는것은 배은망덕이 될 뿐만 아니라 실리적으로도 엄청난 손해일것입니다 그런것을 생각하면 이정부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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