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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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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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 가라>를 보고

^^^▲ 영화 <신과 함께 가라>^^^
지난 5월달에 국내에 개봉된 촐탄 스피란델리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 가라>는 사실 독일에서 작년 3월에 개봉했으나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해 촐탄 스피란델리 감독은 영광의 해였다. 바바리안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고,신인 남우주연상,신인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고 하니 말이다.

헐리우드 식 영화가 판치는 영화계에서 촐탄 그피란델리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 가라>(원제;vaya con dios)는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깨부수고,치고박고,피터지고 죽고,더 잔인하고 더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조용히 스며들게 하는 감동으로 오래 오래 여울지게 한다.

영화의 첫장면은 고요한 강의 수면을 보여준다.그 수면위로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이 마주보는 하늘의 표정으로 알게 한다. 언젠가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글을 올렸을 때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아준 어떤 분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명 대사를 써주었다.

'강물은 흐르고...말씀도 함께 흐른다...' (the rirer runs through it,and the word too.)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서 그 대사가 문득 생각이 났다.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찬송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찬송 입니다' 라고 우리 교회 음악목회자로 시무하시는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이 영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찬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을 향해,신을 위해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기쁨인가를 깨닫게 한다.

각기 개성이 다른 수도사 세사람이 함께 부르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찬송... 목소리는 신이 만드신 놀라운 악기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그문트와 골드문트'그리고 AJ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의 치셤신부 또한 다시 떠오르게 했다.

독일의 브란덴 부르크 지역의 외딴 수도원에서 늙은 수도원장과 세명의 수도사 벤노,타실로,아르보가 속세와는 먼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이 수도원은 찬송만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칸토리안 교파다. 그러나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17세기에 카톨릭 교단으로부터 파문을 당해 화려한 재단도 없고 신도들도 보이지 않는다.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는 수도원이다.

어느 날 문득,후원을 해오던 사람이 더이상은 후원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수도원장은 충격으로 인해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수도원장은 죽기전에 칸트리안 교단의 교리를 담은 규범집을 들고 유일하게 남은 또 다른 칸토리안 수도원을 찾아 떠나라고 말한다. 세 사람의 수도사는 규범집을 들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걸어서 이탈리아로 떠나는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수도원에서만 지내왔던 세사람의 수도사는 속세로 걸어가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들은 틈이 나거나 찬송하기 좋은 장소가 있으면 나란히 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아름다운 화모니를 이루어 찬송한다. 그들의 소리는 천상의 소리와 같다.

찬송만큼,신을 향해 노래하는 것만큼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듯 그들은 숙연한 모습으로 신이 부여한 인간의 악기,그 목소리로 노래한다.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신을 향해 찬송으로 그들과 함께 나아가게 한다. 세사람의 수도사는 이탈리아로 향한 여정 속에서 예상치 못한 유혹들을 만난다. 덩치크고 뚱뚱한 타릴로는 30년도안 보지도 만나지도 못했던 노모를 만나자 수도복을 벗고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노모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는 한마디로 숨만 쉬고 있는 날들이다. 어머니는 안타까워 하며 결국은 아들을 보내준다.

한편,세사람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벤노는 젊었을 때 라이벌이었던 친구가 카톨릭 교회의 후원을 받아서 으리으리 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본다. 그의 친구의 꾐에 넘어가 그곳에 머물며 그들 세사람의 수도사들이 소중히 여기며 이탈리아로 가져 가야하는 규범집을 친구의 손에 넘겨준다. 그는 떠날 생각을 않고 주저 앉아 타락한 친구 곁에 머물러 있다.

이때 젊고 어린 아르보는 벤노의 변한 모습에 실망한다. 아르보 또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 여자를 만나서 신앙과 사랑 사이에 갈등한다.그 가운데 아르보는 다시 벤노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벤노를 빼낼 대책을 강구한다.

웅장한 건물 안에서 예배가 시작되는데 아르보와 타실로가 조용한 가운데 찬송을 부르기 시작한다.거기 모인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바라보고,맨 앞에 강단위에 친구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던 벤노가 그들 두 사람의 노래 소리를 굳게 입을 다문채 듣고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함께 찬송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동안 찬송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벤노...그것은 마치 숨쉬는 것을 잊어버리고,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 세사람의 찬송소리가 회중 가운데 울려 퍼진다. 아르보의 연인이 아르보가 찬송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울며 뛰쳐나가버린다.그가 신의 아들이며 어쩔 수 없이 수도사라는 것을,그녀와 함께 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을 느꼈으리라. 속세의 사람인 자신과는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란것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아르보는 그녀가 뛰쳐 나가버린 곳으로 뒤따라 가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지만,여자는 멀리 떠나 버린다. 상심한 아르보는 이탈리아로 떠나는 것을 포기하려고 한다. 그가 벤노를 다시 눈뜨게 하고,찬송을 회복하게 하고 목적을 깨닫게 했지만, 한번도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가지 않으려고 한다.

벤노는 아르보를 설득해서 결국 이탈리아로 함께 떠난다.찬송하는 삶을 사는 가운데 아르보는 우편물 하나를 받는다.봉투속에는 아르보가 여자에게 주었던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였다. 수도원장이 임종직전에 아르보의 목에 걸어 주었던 것이었다. 그는 밖으로 뛰쳐 나간다. 하지만 여자는 없었다. 그녀가 직접 온 것이 아니었다.

훗날, 그녀는 아르보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것을 보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길로 아르보는 이탈리아의 수도원을 떠나 다시 속세로 떠난다. 마지막 인사를 나눈 벤노와 타실로의 얼굴에는 근심이 지나갔다. 그들이 젊었을 때 그랬듯이 그도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 오리란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아르보는 이탈리아의 수도원을 떠나 흔들리는 작은 버스에 몸을 싣는다. 수도복을 입은채 버스의 뒷좌석에 앉아 있는 아르보... 버스는 속세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는 속세를 선택했다. 사랑을 선택했다. 하지만 결국,그는 돌아올 것이다. 벤노도 그랬고,타실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언젠가는 또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단 한번도 자신이 선택해보지 못한 삶이었던 젊고 앳된 아르보. 그의 다시 돌아올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 영화의 포스터 문구가 '...그리고,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한다'라고 한다. 세상은 그들의 믿음의 시험장인 것이다. 아름다운 영화였다.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찬송이, 그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아직도 고요한 가운데 그들의 아름다운 찬송소리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퍼지는 듯 하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브리서 13장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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