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도생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정치 지도자와 새로운 교황의 지향이 상당히 엇갈리는 상황에서 종교가 정치에 어떤 역할을 할 수는 있는 것일까?
로마 가톨릭교회는 2025년 새로운 교황으로 미국 태생이자, 20년 동안을 페루(페루 시민권 보유)에서 사목활동을 한 사제를 교황 레오 14세(Pope Leo XIV)로 뽑아, 그는 14억 신자를 거느리는 가톨릭 수장이 됐다.
전 세계의 뉴스 매체들은 개 교황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세계가 직면한 과제들을 집어 보는 등 꽤 열광적으로 보도했다.
* 도널드 트럼프, 세계는 그의 거래 시장
보수화되고 극단화 돼가는 세계에서 새 종교 지도자 레오 14세 교황은 교회의 개혁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종교의 힘은 다시 한번 정치의 혼란스러운 현실, 그리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자국 우선주의’ 보호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각국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세계는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지난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새롭게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과 세계를 호령하겠다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세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영적 세계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종교 지도자와 속세를 요리하는 정치가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만, 정치와 종교는 모두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혼돈을 다스리는 중심적 역할에 활용된다고 볼 수 있다.
독특한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트럼프는 자신의 정책을 통해 미국이 세계의 지팡이, 세계의 경찰이라며 세계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역할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그는 세계의 문제보다는 미국 내부의 문제, 미국인들의 부를 축적하는 문제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살아생전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두 사람의 죽음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떨어지면, 뉴스는 크게 그 소식을 다룬다. 주식 가치가 인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라고 현세(現世)를 한탄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전 세계를 향해 이미 보호주의 입장을 천명하고 세상에서 가랑 아름다운 것이 ’관세‘라며, 세계 각국을 향해 무차별 보통 관세에 상호 관세, 품목별 관세를 매기겠다고 윽박지르고, 세계 공통의 문제인 기후 변화 협약인 파리협정을 탈퇴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무역기구(WTO)를 비롯한 다수의 국제기구에 대한 트럼프 미국의 자금 지원을 동결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방위비를 5%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며 압박은 하면서도 동맹국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이거나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국제적 협정, 국제기구, 군사 동맹으로부터 충분한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가장(家長)이 힘없고 나약한 동생들에게 왜 나를 돌보지 않느냐?”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트럼프는 세계 질서 유지를 위한 인프라, 즉 공공재를 지출한 비용을 상업적 거래로 보는 인식을 나타내면서 공공재는 도외시되고 있다. ’거래 제일주의‘를 주창해고 있는 트럼프는 “패권 국가가 없는 국제 질서가 어떻게 붕괴되면서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넓은 세계는 오로지 시장으로 간주하고 ’돈벌이 정치‘(Pork Barrel Politics)로만 보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한계
미국의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는 “세계적 리더십 공백이 통화 불안정, 세계 경제의 격동, 1930년대 보호무역주의 증가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경험하고 있던 미국은 기세를 잃은 영국으로부터 세계 경제 패권을 명백히 넘겨받아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이익에만 집중했고, 패권국의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않았다. 킨들버거에 따르면, 이것이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이 그토록 오래 지속된 주된 이유였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영국은 더 이상 ’국제 공공재‘의 공급자 역할 수행할 의지와 능력이 없었다. 국가 간 거시경제 정책을 조율하고, 세계 경제 인프라의 기반인 자유 시장과 안정적인 통화 시스템을 지원하는 등 패권국의 책임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었다. 반면, 경제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세계 무역과 환전이라는 공공재를 안정화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한 적이 없다.
킨들버거의 관점을 오늘날의 미·중 갈등과 워싱턴의 최근 ’미국 우선주의‘로의 전환에 적용하면 무엇을 보게 될까? 세계가 혹독한 현실에 직면해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역 전쟁이 심화되고, 자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어떤 나라도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패권 국가로서의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팍스 아메리카나 시절에 세계 평화를 국제 질서의 핵심으로 여기면서 어느 정도 다뤄왔던 미국은 특히 트럼프 2기 임기 출범과 함께 기존의 세계 질서는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세상은 쉽게 원시 세계의 혼돈과 야만성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 국제 질서의 붕괴는 인류에게 위기이자 시험대이다. 그러나 종교는 이 혼란 속에서 사람들에게 희망, 방향, 공동체성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종교가 과거의 배타성과 권력 추구에서 벗어나 ’섬김과 평화의 사도‘ 역할을 자임할 때, 무너진 세계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세계인은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그리고 이란과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 미국의 이한 직접 공격 등을 통해 이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 양립할 수 없는 목표
이런 상황 속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새 교황은 사회 문제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소 다행스럽다.
그가 1980년대에 페루의 빈곤과 정치적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 것과 교황 이름인 “레오(Leo)”를 선택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Pope Francis)의 사목활동, 즉 ‘사회교리’를 통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관심에 새 교황 역시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교황 레오 13세(1810-1903)는 1891년 가톨릭교회가 사회 문제, 즉 노동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것을 선언한 획기적인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네룸 노바룸)를 발표됐다. 이 회칙은 급속한 산업화로 경제적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던 시기에 ‘인간 존엄성’의 관점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사유 재산권의 한계를 다루었다.
교황 레오 14세는 21세기 새로운 산업 혁명으로 인해 발생한 로봇과 인공 지능(AI)의 확산과 관련된 문제들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새 교황은 전임 교황 레오 13세의 길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결의를 다진 지도자로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과학과 기술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 과학과 기술은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면 불행의 원천일까?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간단한 답은 없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과 기술에서 우월한 문화는 뒤처진 문화에 스며들어 압도적인 힘으로 동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가지 예가 있다. 12세기 유럽은 이슬람 문화의 유입을 경험했는데, 이는 의학, 천문학, 화학과 같은 경험 과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담고 있었고, 이로 인해 유럽에는 다양한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오늘날에도 주로 미국에서 시작된 과학 기술에 의한 동화주의적 경향이 만연하면서 AI가 인간을 능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기초한 관점에서 인류에 대한 재검토를 강요하는 이러한 문제들을 관찰해 온 가톨릭교회가 최근의 문제들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어할 것은 자명하다.
트럼프의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미국 유수 대학들에 대한 정책 또한 큰 격변을 일으키고 있다. 교황 레오 13세는 대학 내 교육과 연구의 자유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이른바 ‘옥스퍼드 운동’(Oxford Movement)을 지지했고, 영국 신학자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과 그의 대학 자유교육 사상을 깊이 존중했다. 옥스퍼드 운동은 결국 “가톨릭으로 회심하게 된 존 헨리 뉴먼과 다른 가톨릭 회심 성직자들이 빈민가에서 사목하면서 당시 산업 혁명으로 대두된 영국 내 빈민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논의하게 된 계기”가 된 운동이었다.
당시의 정치권력을 지지하든 비판하든,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도 자유롭게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은 사회에 필수적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대학이 단순히 국가적 힘과 경제적 힘을 위한 인적 자원을 양성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인정했다. 오늘날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원래의 지향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사관학교 정도로 치부되는 학문 중심이라는 보다는 실용주의 인간을 배출해 내는 공장과 같은 역할도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 정치가와 종교가의 차이와 합일점
트럼프와 교황 레오 14세의 목표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분명하다.
서구 사회는 종교의 정치 개입을 둘러싼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주류가 된 정교분리 원칙은 매우 명확하다. 정치권력은 종교 권력과 분리되어야 하며, 어느 쪽도 다른 쪽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은 물론 서구는 이 원칙이 무엇을 억제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최근 한국 정치 세계는 기독교의 교리에도, 일반적 상식에도 맞지 않는 참으로 독특한 비이성적 논리도 인권을 무시하고, 사리사욕에 함몰되어 트럼프식 자본주의 사상에 철저히 물들어 세상을 정화해야 할 종교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물론 종교의 일부 집단의 일이긴 하지만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할 수 없다.
현대 한국에서는 하나의 종교 집단이 정치를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랜 자유 수호 운동의 역사를 가진 서구 사회에서는 종교가 정치에 휘말려 약화되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해 왔다. 그만큼 제대로 된 종교는 인류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혼돈과 야만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마음에 질서를 가져다주는 종교의 힘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국제 질서가 붕괴된 세계에서 종교는 오히려 혼돈 속의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보편 윤리와 연대의 회복이 중요하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종교적이면서도 인류의 천부인권과 그 존엄성은 본질이다. 인류 공동선 회복이 중요할 것이다. 나아가 약자 보호에서는 종교도 정치도 공통 문제이다. 전쟁, 박해, 기후 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구호, 안식처 제공, 희망의 메시지 제공, 종교의 자선과 정치와 정부의 기본적 역할은 다르지 않다.
특히, 종교와 정치 세계에서는 다원성과 공존의 메시지 전파가 필요하다. 이른바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가 없는 세계는 야수의 세게나 다름없다. 정치나 종교 모두 하나의 절대 진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 다양성, 생명 존중의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는 점 역시 공통이다. 종교가 편가름과 분열의 도구가 아닌 통합과 치유의 언어가 되도록 이끌 필요가 있듯이 정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격동하는 정치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새 교황은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할까? 새 종교지도자의 비전, 방향성도 좋지만, 그의 희망 메시지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생각과 삶을 재점검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부자되는 방법을 알리는 책’만 보다가 정작 ‘부자되는 시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듯, 희망의 메시지도 스스로 명상과 그 노력에 의한 자신만의 희망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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