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엄령 선언은 한국의 깊이 양극화된 사회를 그대로 노출
- 한국 혼란의 역사적 뿌리 :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 한반도에서 글로벌 게임

“한국의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밖에서 정부군 간의 대치는 한국의 악명 높은 난폭하고 혼란스러운 정치에 익숙한 관찰자들에게도 놀라운 사건이다.”
미국의 AP통신은 6일(현지 시간) 한국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과 관련해, 이같이 평가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놀라운 결정을 내린 데 따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통신은 “탄핵된 윤석열 대통령은 몇 주 동안 자신의 관저에 머물렀으며, 체포 및 수색 영장에 응답하지 않았다”면서 “지난주 말에 수십 명의 수사관이 수백 명의 대통령 경호원과 바리케이드 상태의 관저 내로 진입하는 것을 막으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과의 소통 없이 일상적인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는 놀라운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혼란이라고 AP는 지적했다.
AP통신은 이 기사에서 최근 사건들과 대한민국의 격동하는 정치적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겠다며,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축출되고, 체포되고, 투옥되고,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서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소개했다.
* 한국에서 벌어진 최근 뉴스는 무엇 ?
부패와 싸우는 정부 기관(공수처)이 윤석열을 체포하기 위한 보다 강력한 조치를 경찰과 논의하고 있었다. 이 기관과 경찰의 수십 명의 수사관은 지난주 윤석열의 경호처와의 대치 이후 윤을 체포하려다 실패했다.
윤석열을 체포하고 그의 거주지(관저)를 수색하기 위한 법원 영장이 발부되었다. 체포 및 수색 영장은 6일(자정)에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공수처는 윤의 체포 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새로운 영장을 요청했다. 윤은 지난해 12월 3일에 내린 단명한 계엄령에 대한 심문을 거부해 왔다.
윤석열은 자신의 권력 장악을 입법부 다수당으로 자신의 의제를 좌초시킨 자유주의 성향의 야당(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 대한 통치의 필수적인 행위로 묘사했다. 윤은 자신을 축출하려는 시도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에게 편지를 써 보이면서 다짐했다.
계엄령은 몇 시간 동안만 지속되었지만, 국가의 정치, 외교, 금융 시장은 몇 주 동안 흔들렸다. 이 계엄령은 또 한국의 깊이 양극화된 사회를 드러냈다.
윤의 변호인은 6일 오동운 공수처장과 다른 6명의 공수처 및 경찰 관계자를 상대로 지난 3일의 체포 시도를 조직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이 고발장이 불법이었다고 주장했다.
* 이런 대치 상황은 무엇 때문에 발생했으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는 일련의 정치적 여파를 불러왔다.
경찰과 군과 합동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공수처는 윤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포위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후 반란 혐의를 검토해 왔다. 봉쇄를 통과한 의원들은 몇 시간 후 계엄령을 해제하기로 투표, 통과시켰다.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2분쯤 통과)
윤의 대통령 권한은 의회가 12월 14일에 그를 반란 혐의로 탄핵하기로 투표한 후 정지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윤을 공식적으로 해임할지, 복직시킬지에 대한 심의를 시작했다.
3일 약 150명의 수사관이 윤을 체포하려고 시도했고, 대통령 경호처와 5시간 30분 정도 긴박한 대치가 이어졌다.
수사관과 경찰은 관저 주변을 지키던 군부대를 우회한 뒤 윤의 주거 건물에서 200m(220야드)까지 접근했으나, 약 10대의 차량으로 구성된 바리케이드와 대통령 경호처 및 군인 약 200명에 의해 저지당했다.
박종준 대통령 경호처장은 성명을 통해 자신의 조직이 윤석열의 ‘사병’이 되었다는 비판에 반박하며, 현직 대통령을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 왜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걸까?
그 이유는 정말 까다롭다. 하지만 역사와 지리의 혼합이 이와 관련이 있다.
한국은 수천 년 동안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었으며,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 모두 아시아의 동해안에서 뻗어 있는 반도에서 거대한 글로벌 게임을 펼치고 있었다.
한국은 깊이 분열되어 있으며, 그 분열은 문화, 계층, 성별, 정치 등 삶의 많은 부분에 걸쳐 있다.
깊은 정치적 분열의 대부분은 2차 세계 대전 말, 미국과 소련군이 한반도 중앙에서 만나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지원하는 세력권으로 땅을 나누기로 합의했을 때 일어났던 일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1948년에 독립적인 경쟁적인 한국으로 굳어졌고, 1950년에는 전쟁과 영구적인 분단으로 폭발했다. 그 후, 한국은 1980년대 후반에 민주주의가 도래할 때까지 일련의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었다.
한국 정치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열정은 최근 대통령들이 직면한 혼란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대통령들이 퇴임 후 부패 혐의로 투옥되었다.
특히 충격적인 사건은 2016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보수층 박근혜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사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중에 한국이 민주화된 이래 처음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강제로 축출된 사람이 되었다.
2021년 말에 진보적 경쟁자이자 후임자에 의해 사면된 박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 등의 범죄로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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