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호스트 역할 우리가 나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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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호스트 역할 우리가 나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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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의 협정을 통해 유라시아 철도나 북극 항로 개척을 주도할 수도
북한 개방을 전제로 중국 등 제3국에 중립형 남북 경협 모델을 개발할 수도
삼성전자 반도체/삼성전자

동아시아는 점점 더 아노미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적 침체기에 빠져든 중국과 일본, 고립이 심화하는 북한, 우크라이나 전쟁 수렁에 갇힌 러시아, 중국의 무력 시위로 수세에 놓인 타이완,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비전 앞에 선 한국.

역사상 한 지역 전체가 침체와 위축, 불안정성에 고민하는 시기는 없었다. 국가 간 갈등이 그 어느 지역보다 첨예한 동아시아는 늘 혼란기 때마다 강대국의 힘에 의해 질서가 재편되는 생존게임을 학습해 왔다. 만주 세력과 중국 중원 세력을 부단한 충돌,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 그리고 그 사이에 낀 한반도 역시 전쟁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온 터였다.

지금 상황은 많이 다르다. 가장 큰 변수는 역시 중국이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코로나 사태, 미중 갈등과 같은 위기 요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예상치 못한 중국의 경제적 몰락이 시진핑 체제의 미래에 위기를 불러옴으로써 중국의 대외 정책에도 큰 불확실성을 예견하게 만든다. 중국의 대외 발언권과 발언 강도도 약화했고, 최근엔 오히려 신중한 자세로 전환했다.

중국이 앞으로 수년 안에 빠른 경제력 회복세를 보이지 못한다면 대국이라는 장점이 오히려 체력 소모를 부채질하는 약점으로 작용하여 개혁개방 이전의 상태로 전락할 개연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사실 이는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전략을 감추(韜)지도 숨기(養)지도 않고 버젓이 국가 전략으로 내세울 때부터 자기모순과 불신을 자초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동훈 구미에코클러스터사업단 본부장<br>
이동훈 구미에코클러스터사업단 본부장

중국 의존도가 가장 높아 동반 몰락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던 두 나라가 한국과 타이완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건재한 나라가 바로 이 두 나라이다. 반도체의 힘이다. 거기다가 군사적 지배력까지 점점 강해지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지금 동아시아가 빠진 혼란과 갈등의 늪을 헤쳐 나가는 길은 외교밖에 없다. 지금으로서 북한은 전혀 변수조차 되지 않으므로 예외로 하자. 오히려 북한을 둘러싼 갈등이 문제다. 양안 간 갈등을 포함해 군사적 긴장감까지 누적됨으로써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진심으로 전쟁을 바라는 나라도 없다. 쌓인 갈등을 푸는 게 우선이다.

여기에 외교적 호스트로 나설 국가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러시아와 타이완은 호스트 자격이 약하고, 중국이 초대하면 상처받은 구석이 많은 주변국들로서는 경제적 의존도까지 낮아진 터라 “마음만 받을게” 할 판이다. 그렇다고 일본 역시 중국과 러시아의 마음을 사기엔 쌓인 감정이 많고 줄 게 없다.

물론 미국의 묵시적 동의가 필요하지만 한국이 호스트로 나서면 만남의 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에 대해서는 많이 참아준 공덕이 있어 이를 중국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고, 갈등 국면처럼 보이는 러시아와도 내심으로는 하트 사인을 주고받는 중이다. 타이완과는 반도체 동맹으로서 경쟁과 협력을 통해 얻을 것이 많다. 다만 북한은 UN 제재를 별개로 하더라도 당분간 동아시아 어느 나라와도 어울리기 어렵다.

우리는 이 호스트 역할을 통해 할 일이 아주 많다. 러시아와의 협정을 통해 유라시아 철도나 북극 항로 개척을 주도할 수 있고, 미국과 타이완이 동참하는 조건으로 거의 빈혈 상태에 처한 동아시아 반도체 공급망을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할 수 있다. 군사용 첨단 반도체를 제외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한 북한 개방을 전제로 UN 제재가 풀린다면 개성공단처럼 적진이 아닌 중국 등 제3국에 중립형 남북 경협 모델을 개발할 수도 있다.

중국 제재에 나선 미국의 동의가 쉽진 않을 것이다. 다만 중국이 자의 반 타의 반 순응적 태도로 나올 경우 트럼프를 중심으로 실리 외교를 지향해 동아시아에 대한 국방비 부담을 덜 수 있고, 이 평화로부터 반도체 시장 지배력 등 또 다른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중국이 가장 큰 아픔을 겪는 것도 반도체 부족이며, 미국이 간절히 원하는 것도 반도체다. 이것이 있고 없음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와 국방력 격차가 벌어져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다. 우리는 이 반도체를 ‘국운의 키워드’로 삼아야 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심볼이었던 한국이 지정학적 기회의 땅으로 변할 수 있다. 위험과 기회는 항상 그렇게 밤낮처럼 바뀌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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