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5월 30일 제22대 국회 시대가 되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동부연합 소굴 성남시장 출신 이재명,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기관지 ‘우리사상’ 1·2호에 '류선종'이란 가명으로 막스-레닌폭력혁명을 주장한 조국의 세상이 될 것이다.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 이어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부정선거 증거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선거무효 투쟁과 ‘국회해산’ 요구가 불길처럼 타오르는 등 앞날을 가늠키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기는 하다.
각설하고 이재명 전과자와 더불어 민주당과 조국기 범죄집단 개혁당 등이 192석을 차지하여 겨우 108석을 얻은 국힘당이 탄핵의 구렁텅이로 내몰리고 있는 가운데 죽창가의 조국이, 덮어놓고 ‘쎼쎼’를 외치던 이재명이, ‘여의도 대통령’ 행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재명(1963.12.8.)과 조국(1965.4.6.)이 어디에서 배운 반일·친중(反日·親中)인지 쉽게 구분은 안 가지만.... 민혁당 동부연합과 사노맹 ‘류선종’의 공통점은 “수령·당 절대성과 무조건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노동당 노선과 정책(지령)을 행동지침”으로 삼아야 하는 ‘주사파’ 특성에 있는 게 아닐까 한다.
6·25 직후 북·일관계는 1955년 5월 25일 일본 내에 종북집단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설치를 비롯해 1958년 8월 14일 인도 캘커타에서 교포북송협정 조인, 1959년 12월 14일 1차 북송선 출발 이래 10만에 가까운 재일교포 북송이 이뤄지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를 이어 왔다.
그러던 중 1952년부터 13년을 질질 끌던 한일회담이 1965년 6월 22일 타결되어 한일기본협정 제3조에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 총회의 결정 제195호(III)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정부 임을 확인한다”고 명시함으로써 김일성이 뒤통수를 맞게 된 것이다.
김일성은 이에 대한 반발로 1970년 11월 2일 개최된 노동당 5차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당규약에 ‘남조선인민’에게 "일본 군국주의 반대" 투쟁을 종용(지령)한 데 이어서 1980년 10월 13일 6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당규약에서는 “'일본 군국주의의 재침기도를 좌절'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를 이재명과 조국의 입장에 대입해 보면, 1970년 당규약은 이재명 7세, 조국 5세 때로서 무엇이 뭔지 모를 때였으나 1980년 5·18 직후 채택한 당규약은 이재명 17세, 조국 15세 중고교 시절을 거쳐서 1987년 ‘남조선’ 민주화 선언에 이르러서는 이재명 24세, 조국 22세로 전대협과 주사파가 창궐하게 된 대학 시절과 연결된다.
이재명의 반일과 조국의 죽창가 배경은 1980년 이후 노동당 반일 투쟁노선과 개략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으나, 이재명의 쎼쎼의 배경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을 침략한 모택동 쎼쎼, 중공침략군 사령관 팽덕회 쎼쎼, 이재명 이 작자는 정말 아니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