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송은경 기자] 지방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복지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노후 기반시설 정비와 생활 인프라 개선에 들어가는 비용은 해마다 커진다. 시민이 행정에 기대하는 수준은 높아졌지만 지방정부가 쓸 수 있는 재원은 한정적이다. 세수는 흔들리고 고정지출은 늘어나는 구조 속에서 많은 지자체들이 결국 지방채 발행이라는 선택 앞에 선다. 당장의 사업을 위해 미래의 부담을 가져오는 방식이다. 그래서 요즘 지방행정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얼마를 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마련했는가’다.
그런 점에서 안산시의 최근 공모사업 성과는 분명 눈에 띈다. 안산시는 2022년부터 현재까지 366건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총사업비 4,415억 원 가운데 약 70%에 해당하는 3,130억 원을 국·도비 등 외부 재원으로 확보했다. 더 주목할 부분은 지방채 발행 없이 이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빚을 내어 도시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재원을 전략적으로 끌어와 도시를 움직였다는 점에서 행정의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자는 늘 숫자의 바깥을 본다. 몇 건을 선정됐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이 어디에 쓰였고, 시민의 삶을 얼마나 바꾸고 있는가다. 공모사업은 쉽게 말해 정부가 제시한 과제에 지방정부가 응답하는 구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정 자체가 아니라 그 사업이 도시의 미래와 얼마나 정확히 연결되느냐다. 보여주기식 실적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는가, 바로 그 지점이 행정의 실력을 가른다.
안산시는 공모사업 대응 방식부터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공모 공고가 나온 뒤 뒤늦게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 정책 흐름을 미리 분석하고 사업을 선제적으로 기획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급하게 서류를 맞추는 행정과 도시의 방향을 먼저 설계하는 행정은 결과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공모사업은 결국 누가 더 빨리 신청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먼저 준비했느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올해 선정된 사업만 봐도 흐름은 분명하다. 청년도전지원사업 약 10억 원, 상권매니저 사업 4억7천만 원, 우리동네 맑은공기 패키지 지원사업 20억 원, 이주배경 청소년 교육지원사업 1억3천만 원,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운영 특성화 지원사업,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 AI 분야 72억 원, 공공체육시설 개보수 지원사업 28억 원 등이 대표적이다. 청년, 상권, 교육, 환경, 복지, 산업, 생활체육까지 시민의 일상과 직접 맞닿아 있는 분야들이다. 특정 분야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균형을 고려한 재원 확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특히 산업 분야는 안산시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안산은 오랫동안 반월·시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산업도시다. 그러나 동시에 오래된 산업단지와 제조업 중심 구조라는 숙제도 함께 안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 산업도 바뀌어야 하고, 산업이 바뀌면 도시의 체질도 달라져야 한다. 이 지점에서 공모사업은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 도시 전환의 엔진이 된다.
AX 실증산단 구축 280억 원, 산업단지 환경개선 200억 원, 제조로봇 플러스 사업, 로봇직업교육센터 구축 259억 원, 강소형 스마트도시 조성사업 160억 원, AI 챌린지 프로그램,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 지정 등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기존의 산업도시 안산을 AI와 로봇, 스마트 기술 기반의 미래형 도시로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말로만 미래산업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예산과 사업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평가할 부분이다.
기자의 시선으로 보면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산업정책은 결국 사람이 남는 도시를 만드는 일과 연결돼야 한다. 기업은 기술만 보고 오지 않는다. 청년이 머무를 수 있는 도시인지, 교육과 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인지, 가족이 정착할 수 있는 생활환경이 갖춰져 있는지를 함께 본다. 도시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의 선택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교육과 정주환경 분야의 사업도 중요하다. 원곡초와 경수초 학교복합시설 건립 610억 원, 직업교육 혁신지구, 자율형 공립고 2.0, 경기청년공간 지원 등은 단순한 교육사업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 청년이 떠나지 않는 도시,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기반이다. 좋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사는 도시는 삶의 조건이 함께 따라줘야 한다.
복지와 문화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 재외동포 정착지원, 지역 특성 살리기 사업, 의료복지 사회공헌 사업 등은 규모만 보면 대형 사업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행정은 이런 생활 가까이에 있다.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에게 필요한 지원이 제때 닿는 것, 지역 공동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 정착이 필요한 이웃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것, 이런 것들이 결국 도시의 품격을 만든다.
환경과 교통 분야도 같은 맥락이다. 맑은 공기 패키지 사업, 수소도시 조성사업, 신재생에너지 융복합지원사업, 태양광 안심가로등 설치 등은 거창한 미래 비전이 아니라 시민의 오늘을 바꾸는 일이다. 출근길 공기가 달라지고, 퇴근길 골목이 더 안전해지고, 생활 속 에너지 부담이 줄어드는 변화는 시민이 가장 빠르게 체감하는 행정의 결과다. 행정은 결국 생활의 디테일에서 평가받는다.
안산시가 ‘2035 안산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비전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보한 외부 재원을 산업, 교육, 복지, 환경, 교통 등 도시 전반에 연결하고 공공기관과 학교, 기업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도시를 단순히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설계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각종 평가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약이행평가 SA 최우수 등급, 범죄예방대상 대통령상, 거버넌스 지방정치대상 최우수상, 교육도시 분야 고객만족브랜드 대상, 지방외교 우수사례 우수상 등은 단순한 상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물론 상이 도시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시민의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어떤 수상도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다만 행정의 방향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참고 지표로는 충분하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공모사업은 선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많은 지자체들이 ‘선정됐다’는 보도자료에는 익숙하지만 그 이후의 성과를 설명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시민은 몇 억을 확보했는지가 아니라 내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진짜 성과다.
청년사업이라면 실제 취업과 정착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 산업단지 개선사업이라면 기업 유치와 일자리 증가가 얼마나 있었는지, 교육사업이라면 학생과 학부모가 어떤 변화를 체감하는지, 환경사업이라면 시민 건강과 생활환경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끝까지 보여줘야 한다. 공모사업의 성패는 선정 건수가 아니라 결과의 설명력에서 갈린다.
이민근 안산시장이 “공모사업은 재정 여건 속에서 필요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중요한 재원 확보 수단”이라고 말한 것은 맞다. 그리고 그 다음이 더 중요하다. 균형 있는 투자와 재정 건전성 유지,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다. 좋은 행정은 발표자료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에서 증명된다.
안산시가 확보한 3,130억 원은 단순한 예산이 아니다. 그것은 이 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택의 결과다. 빚이 아니라 전략으로, 보여주기가 아니라 구조 변화로 도시를 움직이겠다는 의지라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기자는 늘 결과를 기다린다. 숫자는 시작일 뿐이다. 그 숫자가 골목의 변화가 되고, 시민의 안심이 되고, 청년의 미래가 되고, 도시의 신뢰가 될 때 비로소 행정은 평가받는다. 안산시의 공모사업이 진짜 성과로 기억되길 바란다. 좋은 행정은 결국 시민이 먼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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