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송은경 기자] 행정은 늘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민원은 끊이지 않고, 보고서는 쌓이며, 판단은 더 빨라져야 했다. 그러나 현실의 공공행정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과 경험에 기대어 움직여 왔다. 자료를 찾고 문서를 정리하며 법령을 검토하는 반복 업무는 공무원의 하루를 채웠고, 그만큼 시민을 향해야 할 시간은 내부 절차 속에 묶여 있었다. 시흥시가 인공지능을 전면에 내세운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들여오는 수준이 아니라, 행정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문제의식이다.
최근 시흥시가 내건 ‘AI 혁신도시’ 구상은 보여주기식 구호에 머물지 않는다. 내부 업무 처리 속도를 높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서비스 영역까지 인공지능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방향성이 분명하다. 행정은 더 빠르게 움직이고, 공무원은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며, 시민은 더 쉽게 필요한 정보를 얻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시와 행정, 시민 서비스를 동시에 켠다는 ‘온(ON)’의 의미가 여기서 읽힌다.
핵심은 지난 3월 내부 행정망에 도입된 생성형 AI 통합 시스템 시흥지니다. 이 시스템은 ChatGPT, Gemini, Claude 등 11종의 대규모 언어모델을 통합 제공하며 문서 작성, 자료 조사, 데이터 분석, 민원 응대 등 실무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보고서 초안 작성과 통계 정리, 발표 자료 구성에 드는 시간이 크게 줄면서 현장 반응도 빠르다. 공무원에게는 단순한 보조도구를 넘어 실질적인 업무 파트너로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다.
변화는 복지 현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가 자체 개발한 AI 기반 복지 시스템은 상담 과정에서 수급 자격 판정 결과를 즉시 확인하고 필요 서류 목록을 자동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기존 20분 안팎이 걸리던 상담 시간이 5분 수준으로 단축됐다는 점은 적지 않은 변화다. 이는 단순한 시간 절약이 아니라 시민 대기 시간을 줄이고, 담당 공무원이 보다 핵심적인 상담과 설명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흥시가 올해 초 수립한 ‘AI 혁신도시 3개년 추진계획’은 이러한 변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묶어낸 청사진이다. 반복 업무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그 여유를 시민 서비스의 질 향상으로 돌리겠다는 구상이다. 기술 도입 자체보다 그것을 행정 효율과 시민 편익으로 연결하려는 구조가 눈에 띈다.
특히 접근성과 보안성을 함께 고려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시흥지니는 새올행정시스템과 연동돼 별도 로그인 없이 활용할 수 있고, 개인정보 비식별화 방식을 적용해 보안 우려도 낮췄다. 공공부문에서 AI 활용이 늘 보안 문제와 충돌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무 적용성을 높인 선택으로 보인다.
최근 행정안전부 주관 공공형 민간 SaaS 이용지원 공모사업 선정도 시흥시의 디지털 전환에 힘을 보탰다. 협업 플랫폼과 보안 관리 서비스 기반이 마련되면서 부서 간 공동 문서 편집과 지식 아카이브 구축이 가능해졌다.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업무 이력이 끊기지 않고, 같은 자료를 반복해서 다시 만드는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제도적 기반도 갖춰졌다. 지난 3월 통과된 시흥시 인공지능 기본 조례는 기술 활용을 일회성 사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연결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기본계획 수립, 지원 사업 추진, 민·관·학·연 협력체계 구축 등을 명문화하면서 도시 차원의 중장기 전략으로 AI를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사람에 대한 투자다. 아무리 시스템이 정교해도 활용하는 공무원의 이해도와 역량이 따라주지 않으면 현장 안착은 어렵다. 시흥시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기초부터 심화, 전문가, 자격증 과정까지 단계별 교육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기초교육에서는 AI 개념과 프롬프트 작성법, 보안과 윤리까지 다루고, 심화 과정에서는 보고서 작성, 민원 처리, 데이터 시각화 등 실무 중심 교육이 이뤄진다.
조직 내부 문화 역시 변화하고 있다. 행정망 내 AI 활용·공유 게시판을 통해 직원들이 업무 개선 사례와 프롬프트를 공유하고, 우수 사례에는 추천이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신규 공무원이 제작한 공문 작성 실습 프로그램, 문서 배부 자동화 프롬프트, 미세먼지 안내 콘텐츠 등이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은 기술이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는 이를 연말 인공지능 경진대회로 확장해 조직 내 활용 문화를 더욱 확산할 계획이다.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라 현장의 창의적 사례를 조직의 자산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시민 접점에서의 변화도 분명하다. 시는 이미 시흥복지온을 통해 복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안내하고 있으며, 도로관리와 옥외광고물 안전점검, 호우 대응 계획, 불법주정차 단속에도 AI를 적용하고 있다. 올해는 여기에 더해 24시간 AI 일자리상담 서비스 ‘시흥-온’을 가동한다. 시민이 대화형 방식으로 맞춤형 일자리와 청년 창업, 기업 지원, 소상공인 혜택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음성검색과 다국어 지원은 지역 특성을 반영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외국인 주민이 많은 정왕본동 행정복지센터에는 AI 민원 안내 키오스크가 도입될 예정이다. 생활정보부터 교육·취업, 보건·복지, 출입국, 안전 정보까지 폭넓게 다루며 한국어,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태국어로 안내가 가능하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행정 접근이 어려웠던 주민들에게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 교육 기반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 시흥시 대야평생학습관이 2026 AI·디지털 배움터로 선정되면서 시민 대상 AI 교육과 강사 양성, 미래기술 체험 프로그램 운영이 본격화된다. 정왕평생학습관을 포함한 9개 주요 교육장을 통해 시민들의 디지털 활용 역량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지점도 있다. 기술이 빠르게 확산될수록 정확성과 책임의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복지와 일자리처럼 시민 권리와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AI의 답변이 어디까지 참고 정보이며, 최종 판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해야 한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그럼에도 시흥시의 이번 시도는 지방정부 차원의 디지털 전환 사례로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단순한 시스템 구축을 넘어 내부 업무 효율, 조직 역량 강화, 시민 서비스, 제도 기반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래된 절차와 관성은 늘 변화를 더디게 만든다. 그럼에도 시흥시는 그 느린 구조 안에서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보고서는 빨라지고, 상담 시간은 줄었으며, 시민의 접근성은 높아지고 있다. 작은 변화가 쌓이면 도시의 체질도 달라진다.
시흥이 켠 AI의 스위치는 단순히 시스템 하나를 가동한 것이 아니다. 도시 운영의 방식, 행정의 속도, 시민 서비스의 기준을 새롭게 바꾸는 출발점에 더 가깝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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