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선거판에 올라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흔들리는 국가 전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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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선거판에 올라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흔들리는 국가 전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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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마디 "산업보다 정치가 앞서고 있다...선거는 표로 결정되지만, 산업은 구조로 결정된다"
김병철 기자
김병철 기자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국가 전략산업이 선거 국면에 휘말리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논의의 중심은 정책이 아니라 정치로 이동한다. 최근 반도체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은 그 경계선이 이미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은 산업 전략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의제 설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용인 이동·남사 일대에 조성 중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니다.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이 얽혀 있고, 글로벌 반도체 경쟁 속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를 유지할 것인가와 직결된 프로젝트다. 설계부터 연구개발, 생산, 장비·소재 기업까지 연결되는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른바 ‘집적의 경제’가 작동해야 경쟁력이 유지되는 구조다.

이 구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기본 조건에 가깝다. 반도체는 공정 간 연계성이 높고,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며, 협력 네트워크의 밀도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생산라인과 연구개발 기능, 협력업체가 물리적으로 가까울수록 의사결정과 대응 속도가 빨라지고, 이는 곧 비용과 기술 격차로 이어진다. 글로벌 기업들이 특정 지역에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최근 정치권과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분산’이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국토 균형 발전, 지역 산업 육성, 에너지 문제 등 다양한 명분이 붙는다. 겉으로 보면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는 주제다. 실제로 수도권 집중 문제와 지역 격차 해소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에 추가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추진 중인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로 논의의 초점이 이동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기존 클러스터의 일부 기능을 다른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산업 구조를 새로 만드는 것과 이미 설계된 구조를 흔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토론회와 지역 포럼 등에서 제기된 다양한 주장들은 이 같은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구개발과 생산시설의 물리적 거리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 공급망 안정성과 국토 효율성을 이유로 분산 배치가 유리할 수 있다는 주장, 지방 인재 양성과 산업 기반 확대를 위해 기업의 지역 이전을 유도해야 한다는 제안 등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논의에는 빠져 있는 전제가 있다. 기업이 왜 특정 지역에 투자를 결정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반도체 산업은 정책적 유인만으로 움직이는 산업이 아니다.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장기 프로젝트에서 기업은 인력, 인프라, 협력망, 리스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미 계획된 투자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재설계’에 가깝다.

정책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산업의 기본 원리를 거슬러 설계될 수는 없다. 분산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거점을 키우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 클러스터를 약화시키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전체 경쟁력을 낮출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내부 구조를 흔드는 선택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이러한 논의가 정책 검토의 수준을 넘어 정치적 이슈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 유치 논리가 전면에 등장하고, 각종 토론회와 행사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면서 하나의 ‘선거 의제’처럼 소비되는 양상이다. 산업 전략이 선거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논의는 정교함을 잃고 단순화되기 쉽다.

정책의 언어는 복잡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정치의 언어는 단순하고 직관적일수록 힘을 가진다. 문제는 이 두 언어가 충돌할 때다. 반도체 산업과 같은 고도의 기술·투자 집약 산업이 단순한 구호와 메시지로 다뤄지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리스크가 된다. 투자 주체인 기업 입장에서는 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 정치권의 대응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논쟁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명확한 기준과 근거를 제시하기보다, “문제 없다”는 식의 안이한 메시지로 일관하는 모습은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산업 정책은 낙관적 발언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 의지로 지켜지는 영역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반복될 경우의 후폭풍이다. 반도체 산업은 단기간 성과로 평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한번 흔들린 신뢰는 투자 지연, 계획 수정,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세계 각국은 반도체 산업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적으로 산업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장기화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보기 어렵다.

균형 발전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그 방식이 전략산업의 기반을 흔드는 방향이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산업 거점을 키우는 것과 기존 핵심 거점을 약화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선택이다.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면, 경쟁이 아니라 역할 분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첫째, 이미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방향성과 안정성을 명확히 재확인하는 것. 둘째, 지방 산업 육성은 별도의 전략으로 설계하는 것. 셋째, 정책 논의와 정치적 메시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논쟁은 계속되겠지만 해법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선거는 일정이 끝나면 마무리된다. 그러나 산업은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흔들린 정책은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현재의 논쟁이 단기적인 이슈에 그칠지, 아니면 장기적인 전략 재검토로 이어질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다. 국가 산업 전략이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에 가깝다. 그 기준이 정치가 아니라 산업의 원리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기자수첩 한마디 "산업의 논리보다 정치의 셈법이 앞서는 순간, 전략산업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선거는 표로 결정되지만, 산업은 구조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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