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이론들 가운데 아주 오래된 주제는 ‘부의 분배’(distributions of wealth)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라 할지라도 부의 총부(total wealth)가 증가하는 한 사회적 응집력은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 같은 전체적인 성장은 그 부의 분배된 몫을 모든 사람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증가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총부(總富) 중에서 가장 적은 몫을 차지하게 되는 사람들도 작지만, 부의 증가를 경험할 수 있어 사회적 응집력은 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몫을 자진 부자들은 작은 몫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부를 제공하는 한 성장의 대부분을 계속해서 차지해 나갈 수 있다. 쥐꼬리만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라는 이름으로 부자들이 부를 키워가면 갈수록,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극히 일부를 지속적으로 떼어주면 사회적 응집력, 사회적 총화(總和)는 어느 정도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흔히 파이(Pie)에 비유를 많이 한다. 파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분배의 몫도 자랄 수 있다는 사실상 거짓의 논리이다. 현실에서는 큰 효과 없음이 이미 드러나 있다. 일단은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일부는 더 많이 자랄 것이고, 다른 일부는 덜 자랄 것이기 하지만 모두가 자란다는 점에서는 맞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자라면 사회적 안정이 촉진된다는 뜻이다. 사람들 모두가 불평등한 몫을 수용한다는 가정에서는 그럴듯하지만, 현실적 불평등은 갈수록 사회적 불안을 키워갈 수밖에 없다.
경제 성장을 시급히 필요한 것이라며, 이것을 우선시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논리를 줄기차게 펼친다. 그 결과는 ‘부익부, 빈익빈’(Polarization)일 뿐이다. 이는 개인, 지역사회, 나아가 국제사회에서도 작용 기제는 같다.
매사추세츠대학(UMass) 앰허스트 경제학 명예교수이며, ‘자본주의의 혼란’(Capitalism Hits the Fan)과 ‘자본주의의 위기 심화’(Capitalism’s Crisis Deepens)의 저자이자 ‘직장에서의 민주주의’(Democracy at Work)의 창립자인 리처드 울프(Richard Wolff)는 “사회의 인구(구성원)가 불평등이 덜한 몫으로의 이동을 우선시한다면, 경제 성장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기후 변화에 심각하게 적응한다면, 경제 성장은 훨씬 덜 중요해질 수 있다. 사회 운동이 성장하고 동맹을 맺는 데 대한 이러한 우선순위를 지지한다면 경제 성장에 대한 사회의 태도와 헌신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1820년에서 1980년까지의 미국 자본주의는 총부(總富)의 증가를 선호하고 촉진했다. 임금으로 가는 몫은 커졌고, 자본으로 가는 몫은 더 커졌다. 많은 격렬한 자본/노동 투쟁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전체적으로 상당한 사회적 응집력을 보였다. 이는 부분적으로 파이가 커지면서 거의 모든 사람이 실질 소득에서 어느 정도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모든’은 ‘백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승을 부리는 인종 차별은 여전했다.
반면, 지난 40년 즉 1980~2020년은 미국 내에서 변곡점을 나타냈다. 총부(total wealth)의 성장은 둔화 됐고, 기업과 부자는 상대적으로 더 큰 몫을 차지했다. 따라서 중산층과 빈곤층은 부가 크게 성장하지 않았거나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미국의 부의 성장 둔화 이유에는 주로 자본주의의 역동적인 중심지가 ‘이윤’을 위해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산업 생산은 서유럽, 북미, 일본에서 중국, 인도, 브라질 등으로 옮겨갔다. 남겨진 자본주의에서는 금융화가 우세했다. 중국과 브릭스(BRICS) 동맹국은 생산 수준, 기술 혁신, 대외 무역에서 미국과 G7 동맹국과 점차 비슷하거나 앞지르고 있다.
관세, 무역 전쟁, 제재를 부과하여 표현되는 보호주의가 증가하는 경쟁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미국 상황을 악화시키는 보복을 증가시켜 왔다. 이 과정은 이제 끝이 보이지 않는 채 계속되고 있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 달러의 역할은 감소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미국은 브라질, 인도, 이집트와 같은 이전 동맹국이 중국에 대한 충성심을 바꾸거나 미국과 중국에 비해 더 중립적인 입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의 중국과 러시아가 이끄는 브릭스에 매력을 느끼고 그들과 손을 잡기 위한 움직임이 빠르다.
총부의 성장이 둔화되고, 기업과 그들이 부유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가는 조합은 미국의 내부 사회적 응집력을 약화시킨다. ‘트럼프-해리스’ 대선 경선에서 날카롭게 드러난 미국 내부의 정치적, 문화적 분열은 미국의 세계적 지위를 더욱 약화시키는 사회적 적대감으로 변했다.
제국의 쇠퇴와 내부 사회적 분열은 종종 서로를 가속화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생각해 보라. 여기에는 현재 아이티인들이 애완동물을 먹는다고 비난하고 이민자에 비해 시민의 범죄성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무시하는 것이 포함된다. 백인 우월주의가 다시 부상하여 더욱 대중적이 되었고, 점점 더 분열적인 지역주의와 인종 차별을 부추겼다. 가부장제, 성적 지향, 젠더 문제에 대한 투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하다. 제국이 쇠퇴하고 성장이 둔화되고, 사회적 응집력이 풀리면, 사회적 조건에 대한 오랫동안 미뤄진 항의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평행 논리를 통해 중국의 문제는 매우 크게 다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미국보다 2~3배 더 빨랐다. 중국의 평균 실질 임금성장률은 미국보다 훨씬 더 큰 배수로 더 빨랐다. 이러한 차이는 극명하며 한 세대 동안 지속됐다.
중국 지도부(공산당과 정부)는 이를 통해 급속한 경제 성장의 결실인 증가하는 부를 내부 사회적 응집력 지원에 분배할 수 있었다. 실질 임금을 인상하고, 수억 명의 사람들을 농촌과 농업에서 도시와 산업으로 옮기는 정책을 통해 그렇게 했다. 중국인들에게 이는 빈곤에서 중산층 지위로의 역사적인 전환이었다. 부분적으로 시진핑 지도부의 ‘공동부유(共同富裕)’의 일정한 성공도 작용한다.
중국의 성장과 브릭스 동맹국의 성장은 2010년까지 미국과 G7의 주요 경쟁자가 됐다. 날로 커지는 브릭스 블록은 전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총 GDP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등 그 세력은 녹록하지 않다.
미국 중심의 블록과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두 블록 모두 현재 전 세계를 돌며 안전하고 저렴한 식량, 원자재, 에너지 공급원을 찾고 있다. 두 블록 모두 마찬가지로 시장, 안전한 운송 경로 및 공급망, 우호적인 정부에 대한 접근성을 추구한다. 두 블록 모두 최첨단 기술 발전에 보조금을 지급하여, 미국과 중국이 이제 사실상 그들의 업적을 독점하고 있다. 예전에는 유럽이나 일본이 그랬던 것과는 비교된다.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중국의 세계적 노력을 공격적으로 묘사하며, 미국 제국과 잠재적으로 미국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 정책입안자들은 미국의 노력 즉 보호주의 관세와 무역 제한, 남중국해 작전, 외국 군사 기지와 전쟁이 중국의 경제 발전을 늦추거나 중단시키려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미국은 중국의 성장 기회와 역동성을 차단하고 있으며, 중국이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수년간의 굴욕을 다시 예고하고 있을 수 있다. 국가 안보 불안은 양측의 수사학을 괴롭힌다. 임박한 군사적 갈등과 심지어 또 다른 세계 대전에 대한 예측이 퍼지기도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과 하마스(동시에 헤즈볼라 등)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즉각적인 휴전과 협상 타결을 요구했을 때, 역사는 지금 미국과 중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것을 시사할까? 영국은 두 번(1776년과 1812년) 전쟁을 이용해 북미 식민지의 독립과 성장을 늦추거나 멈추려고 시도했다. 영국은 두 번이나 실패한 후, 정책을 바꾸었다.
협상을 통해 새로운 미국과 영국은 점점 더 서로 무역하고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영국은 나머지 제국을 유지하고, 이익을 얻고, 건설하는 데 집중했다. 미국은 제국의 초점을 앞으로 남미로 하겠다고 선언했다(먼로 독트린). 이 거래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영국의 제국을 종식시키고, 미국이 자신의 제국을 확장할 수 있게 할 때까지 그렇게 유지됐다.
미국과 중국 간에 주요 선진 7개국(G7), 브릭스, 글로벌 사우스를 포함하는 비슷한 협정이 왜 없을까? 진정한 세계적 참여가 있다면, 그런 협정이 마침내 제국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지금 세계가 직면한 생태학적 위험과 지정학적 위험 모두 즉 매우 현실적인 위험은 다극 세계에 대한 어떤 종류의 협상 된 협정을 찾는 것을 장려한다. 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그런 목표가 ‘국제 연맹’에 영감을 주었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엔’에 영감을 주었다. 그 목표의 현실성은 그때 도전받았다.
지금은 다시 그런 모욕을 겪을 수 없다. 3차 세계 대전 없이 지금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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