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legy of Reasonable Writing in Flank Language

정론직필(正論直筆). 주장은 올바르고, 사실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하는 언론은 말한다.
그러나 최근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정론직필’과 거리가 먼 보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한국은 물론 일부 서방세계의 언론들도 마찬가지로 ‘정론직필(正論直筆, Reasonable Writing in Flank Language)’과는 거리가 먼 보도가 쏟아진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는 다양한 이유와 배경이 있겠지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상업적 이익(commercial interests)’이다. 많은 언론 매체들이 상업적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감정적으로 자극적인 뉴스나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보도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렸해졌다. 더 많은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여 광고 수익 등을 늘리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너무 치우친 나머지 당초 언론의 사명을 잊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상업적 이익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정치적 이해관계(political interests)’가 정론직필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언론사의 사주(社主)가 특정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겨우, 해당 정치적 입자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보도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거나 방어하면서 정치적 권력을 이용한 경제적 이득을 획득하려는 보이지 않는 탐욕이 언론이기를 포기한 매체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럴 경우, 객관성은 언론 사전에나 나오는 낱말로 전락하고 만다.
상업적 이익과 정치적 이해관계와 더불어 생기는 ‘편향성과 극단화(Deflection and Extremity)’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언론들은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에 대해 극단적인 시각을 취하거나 편향된 보도를 일삼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이러한 양상은 보다 강력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해 극단적인 의견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슬픈 노래(Elegy)를 불러야 할 판이다.
나아가 소셜미디어(SNS)의 등장과 급속한 발전은 많은 양의 정보를 순식간에 일시에 퍼뜨릴 수 있게 됐다. 그 수많은 정보 가운데 가짜뉴스도 함께 퍼진다. 그러나 SNS 이용자들 대부분은 사실확인 이전에 우선 그 정보를 접하게 된다. 동시에 또 다른 정보가 밀려오면 가짜정보조차도 사실 정보인 양 넘어가곤 한다. 일부 언론 매체는 클릭을 유도하거나 논란을 부각시키려는 보도를 함으로써 인권 등 기본권, 팩트 체크 등 신중한 접근보다는 자극적인 분위기를 일키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또 대중의 기대와 요구(public expectations and demands)에 부응하려는 차원도 있다. 대중이 특정 이슈에 대해 강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 언론 매체는 이러한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보도를 하기도 한다. 이는 대중의 감정과 관심을 자극하고, 더 많은 관심과 클릭을 유도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
정론직필의 엘레지는 이러한 복합적인 배경으로부터 나온다. 앞서 말한 상업적 이익, 정치적 이해관계, 편향성과 극단화, SNS 등장, 그리고 대중의 기대와 요구 이외에도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적, 글로벌 사우스와 노스 등 보다 더 국제적이고 ‘국가 이익’에 따른 언론 매체들의 이기주의가 발호(跋扈)되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간단하지만 매우 주요한 사례를 살펴보면, 서방 저널리즘의 죽음(Death of Western Journalism)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 중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 있다. 그 무엇보다도 많은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이 죽어갔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잘났다는 서방 언론들은 팔레스타인 기자들의 죽음에 그렇게 모른 척하고 있을까? 서방세계의 기자들만 생명, 인권, 기본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등한시하고 있다.
지난 7월 31일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자치구 자가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 2명을 더 살해했다. 이 두 기자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았을 당시 취재를 하고 있었다. 중동의 CNN이라 할 정도로 유명한 ‘알자지라’의 보도로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기자는 기자를 표시하는 조끼를 입고 있었다.
카타르 도하 대학원 미디어학 프로그램의 교수인 모하마드 엘마스리(Mohamad Elmasry)에 따르면, 최근의 살인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현재 진행 중인 대량학살(genocide)에서 살해한 언론인 수가 세계 최다인 최소 113명으로 늘어났다. 엘마스리 교수는 자신의 기억에 따르면, “다른 세계적 갈등으로 인해 이렇게 많은 언론인이 죽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언론인을 잔혹하게 공격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반드시 놀라운 일은 아니다.
2023년 언론인보호위원회(CPJ=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 보고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아 살해한 ‘수십 년간의 패턴’을 기록했다. 그 기록 중 하나는 ”휴먼라이츠워치(HRW)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012년에 4차례에 걸쳐 ‘언론인과 미디어 시설’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 공격 중에 두 명의 언론인이 사망했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또 2019년 유엔 위원회는 이스라엘이 2018년에 팔레스타인 기자 2명을 ‘고의로 총격(intentionally shot)’하여 두 사람 모두 사망시켰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인 2022년에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언론인 시린 아부 아클레(Shireen Abu Akleh)를 총살해 살해했다.
이 같이 이스라엘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후에는 항상 그렇듯이 책임을 부인하려고 시도했지만, 영상 증거가 엄청 많았고 이스라엘은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 조끼와 언론 헬멧을 착용하고 있던 시린 아부 아클레에게 총을 쏜 군인이나,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은 다른 사건에 연루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아무런 처벌도 내려지지 않았다.
CPJ는 이스라엘 보안군이 언론인에 대한 공격 사건에 대해 ‘거의 전면적인 면책권(almost blanket immunity)’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더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 현재의 대량 학살(genocide) 중에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며, 특이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정말 놀랍고 충격적인 점은 서방 언론인들이 상대적으로 너무나 조용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늘 그렇게 조용했던 것만은 아닌데도 말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CPJ와 같은 감시 단체를 중심으로 일부 보도와 동정이 있긴 했지만, 언론의 연대감은 거의 없었고, 이스라엘의 행동이 언론의 자유에 가하는 위협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와 소동은 전혀 없었다.
돌려 생각해 보면, 만약 푸틴의 러시아군이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우크라이나에서 100명 이상의 언론인을 죽였다면, 서방 언론의 반응이 어떨지 잠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때의 서방 언론은 벌 떼(swarm of bees)처럼 모여들어 쏘아대며 윙윙거렸을 것이다.
서방 뉴스 매체에서 현재 전쟁 시작 이후 살해된 팔레스타인 언론인에 대해 보도했을 때조차, 보도는 종종 이스라엘에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 이러한 살해 사건을 ”현대 전쟁의 의도치 않은 사상자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불가피한 사망이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보도 행태이다. 나아가 서방 언론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출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탓에 화려한 형용사와 비난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먹여주는 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먹는 어린아이처럼 일부 서방 언론 매체들을 보는 일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친(親)이스라엘 출처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때로는 갈등의 어느 당사자가 특정 살인 사건에 책임이 있는지 판단하기조차 어려워지게 됐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된 보도 행태이다.
통상적으로 서방의 뉴스 매체들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편견이나 편파성으로부터의 자유’(detachment : 초연함)와 ‘중립성’(neutrality)이라는 서방 매체의 보도의 원칙을 고수해 온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4년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의 고통앞에는 중립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기계적으로 중립을 지킨다는 언론을 꼬집은 것은 물론 실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겐 ‘중립’이라는 말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초연함과 중립을 그렇게 금과옥조로 여기던 서방 언론들도 실제로는 엄청난 소란을 피운 적도 있고 그들끼리 연대(SOLIDARITY)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가 있다. 이중 기준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2015년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기자 13명이 살해된 사건은 이에 대한 매우 유용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 공격 이후 서방 언론은 물론 아시아 언론들도 깊은 관심으로 보도에 열을 올렸다.
몇 주 만에 수천 건의 보도기사가 생성되었고, 연대 해시태그(”Je suis Charlie“ 또는 ”나는 샤를리다“)가 바이러스처럼 퍼졌으며, 언론의 자유 원칙을 고수하는 서방 언론인, 뉴스 매체 및 조직에서 연대의 성명과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예를 들어 미국 전문언론인협회는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공격을 ‘야만적이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또 프리덤 하우스는 이 공격을 ‘끔찍한 공격’이라고 부르고, 이것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펜 아메리카(PEN America)와 영국세속주의협회(British National Secular Society)는 샤를리 에브도에 상을 수여했고, 가디언 미디어 그룹(Guardian Media Group)은 이 출판사에 막대한 금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최소 1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언론인이 살해된 사건에 대해 서방 언론인들이 상대적으로 침묵하고 좋게 말해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은 모든 언론인을 위협하는 이스라엘의 언론에 대한 전쟁이라는 더 큰 맥락을 생각해 볼 때는 특히 충격적이 아니라 할 수 없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월경 로켓 공격으로 촉발된 전쟁이 시작될 무렵, 이스라엘은 서방 통신사에 가자 지구에 입국하는 언론인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국제 언론인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유지했고, 2023년 11월 전투가 잠시 중단되는 동안에도 국제 언론인이 가자지구에 입국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더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이 서방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 전쟁에 대한 서방의 보도 내용을 지휘하고 통제했다는 것이다. 서방의 뉴스 매체들은 종종 이스라엘의 조작 전략에 순순히 따른 결과였다.
예를 들어, 2023년 12월 이스라엘에 대한 전 세계의 분노가 고조 되자 이스라엘은 10월 7일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이 이스라엘 여성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조직적 강간을 저질렀다는 거짓 보고를 발표했다.
뉴욕타임스(NYT)를 포함한 서방 뉴스 매체들은 속아넘어갔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는 것을 축소하고 “조직적 강간(systematic rape)” 이야기를 두드러지게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2024년 1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에 대한 가처분 조치를 내렸다.
이스라엘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사업기구(UNRWA)를 상대로 터무니없는 테러 혐의를 제기하며 즉각 대응했다. 그러나 서방 뉴스 매체는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판한 임시 조치 기사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팔레스타인인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한 UNRWA에 대한 혐의를 부각시켰다.
이스라엘이 서방 뉴스를 조작한 이러한 사례와 다른 사례들은 현재 전쟁 이전부터 존재해 온 광범위한 영향 패턴의 일부에 불과하다.
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특히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죽일 가능성이 있는 공격의 경우 미국 뉴스 미디어가 무시하거나 축소 보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격을 일정에 맞춰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대량 학살 동안 서방의 언론 기관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콘텐츠를 검열하는 광범위한 관행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표현의 자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려해야 할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대량 학살 동안 이스라엘의 일부 행동을 비판한 소수의 서방 뉴스 보도는 물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는 이스라엘의 서사에 대한 묵인과 전반적으로 이스라엘 편향, 팔레스타인 반대의 프레임 속에서 거의 묻혀버렸다.
미디어 감시 센터(Centre for Media Monitoring)와 인터셉트(Intercept)의 분석을 포함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서방 뉴스 보도에서 이스라엘 옹호, 팔레스타인 반대 프레이밍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증거가 나왔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언론인들은 자신을 진실을 말하는 사람,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 감시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언론 장악을 한 일부 독재국가들과는 달리 보다 자유롭고, 공정하며,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도하는 서방 언론이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서방 언론들도 수두룩하다.
기자들은 보도의 실수를 인정하는 한편, 자신과 소속 언론사가 공정성, 정확성, 포괄성, 균형, 중립성, 냉정함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서방 저널리즘의 큰 신화에 불과하다. 불공정, 가짜뉴스와 왜곡, 편협성, 불균형, 편향성, 감정적인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언론 매체들이 있음을 자인해야 한다. 많은 학술 문헌에 따르면 서방의 뉴스 매체는 자신들이 선언한 원칙을 전혀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엄청난 실패가 일어나고, 서구의 뉴스 매체가 이상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광범위한 연구 결과 속에서, 서방 저널리즘의 이상에 대한 신화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유용한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서방의 저널리즘은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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