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시간 속에 있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늘 바쁜 일상과 세상살이에 힘이 들고 여유란 먼 별종의 혜택인 듯 여긴다. 그러기에 사랑은 자칫 사치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런 탓일까? 이 시인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은 이 많지 않음을 오히려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자유, 자연- 의미의 사랑에 대한 현대인의 열정을, 잃어버린 열정을 일깨우게 하기 위한 매혹이게 한다.
시인의 시를 한 구절 한 구절 실핏줄같이 같이 들여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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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표지^^^ | ||
시인에게 자연은 분리된 외부의 것이 아닌 자신이 된다. 타인, 즉 사람 또한 네가 아닌 내가 된다. 시인에게 만물은 한 덩어리이며 그것과 더불어‘한 몸으로 낳은 푸른 하늘’과 같이 ‘세상 위에 밤낮 퍼져 있’기를 바람한다.
자연을 소재로 시를 쓴다는 것이 아닌 시인은 자연을 무한히 사랑함에 시가 자연 그것이기를 바란다.
우주란 무엇인가/ 풀을 들여다보는 일이여/ 열반이란 무엇인가/ 풀을 들여다 보는 일이여/ 구원이란 무엇인가/ 풀을 들여다보는 일이여 - 「풀을 들여다보는 일이여」
자연의 일부인 ‘풀’을 통해 ‘우주’와 ‘열반’과 종내에는 ‘구원’까지 이르게 된다.
만물 속에서 타오르는/ 저 생명의 아지랑이를/ 내 노래는 숨쉬느니/ 말이여, 바라건데/ 생명의 아지랑이여 - 「생명의 아지랑이」
시인은 ‘도무지 말 같지도 않은/ 꿩 소리 근처에나 갈까’ 라는 자신의 시가 곧 ‘생명의 아지랑이’ 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바램은 시를 통해 사랑의 대상인 자연과의 합일에 대한 커다란 소망과 원천이 된다.
하여간 사람의 몰골이되/ 쓸데없는 사람이 되어라 -「시창작 교실」
자연을 동경하는 시인에게 자연은 ‘싱싱한 혼란’ 이거나 ‘팔닥이는 심장’이 된다. 자연의 품속에 안기되 ‘행동 속에 녹아버리든’이 아니면 자연이 될 수 없으며 동시에 자유 또한 될 수 없다. ‘인습’과 ‘제도’에 익어버린 사람이길 거부하여 시인은 ‘쓸데없는 사람’이 되어 자유를 얻는다고 한다.
시인의 자유는 이미 굳어있음에 대한 강요에의 비난으로 표출된다.
잠을 깨운다 출근 안하냐고/ 부부처럼 외설스러운 게 어디 있으랴/ 제도의 외설/ 합법의 외설/ 타성의 외설/ 졸작 안정/ 걸작 연애/ 오호라 외설스럽구나 출근 - 「외설」
사는 것이 작위적인 경우에도 일상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의 ‘타성’은 살아있음이 아니다.
인간해방?/ 책에서 해방되야지/ 말에서 해방되야지/ 이 책에서 저 책으로는 해방 없고/ 이말에서 저 말로는 해방 없고 - 「빈방」
‘해방’ 즉 시인의 ‘자유’란 말 또한
내 평생 노래를 한들/ 저 산에서 생각난 듯이 들리는,/ 생명바다 깊은 심연을 문득 열어제끼는/ 꿩 소리 근처에나 갈까 - 「생명의 아지랑이」
하여 시인의 시가 ‘인습’과 ‘제도’ 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런 자신에게 있어 경계는 자신을 스스로 자유롭게 풀어놓기를 희구하게 된다.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떠나면/ 두루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시인의 자유는 자신이 속박됨이 자신인 것을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사소한 일처럼 벗어나고자 하며 그것은 매우 가벼운‘바람’이 되고자 한다. 그러한 바램은 시인 자신의 ‘몸’이 ‘몸이라는 건(무거운 거 같애도)/ 떳다하면/ 그냥/ 바람이니까’라는 ‘무거’움을 벗어나 일순 ‘바람’ 이 되고자 한다.
시인에게 있어 자유란 매우 소중한 것이고 자연은 그 다른 이름인 한 덩어리가 된다. 시인은 그 자연과 자유에 대해 ‘○’ 는 ‘거기서 와서 거기로 가는/ ○은 처음이며 끝/ ○은 인생의 초상/ ○은 다 있고 하나도 없는 모습/ 꽉차고 텅 빈 모습’이라고 애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2.
정현종 시인의 시어는 주로 자연을 많은 어휘 선택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연의 대상은 비유와 상징이 아닌 ‘꽃과 피와 나무와 물고기와 참외와 새와 애인과 푸른 하늘’처럼 단색적이다. 비틀거나 늘어지는 법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어휘를 선택하고 시인은 그것으로 자신의 시가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서게 한다.
또한 자연을 예찬하면서 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자연과 동일시함으로 자신을 정화시킨다. 예를들어 ‘마당에 세수대야 놓고/ 세수한 지는 또 얼마나 됐는지!/ 아침공기와 아주 하나가 돼버린 내/ 촉각을 나는 무한정 날려보냈고/ 공기 중에 아예 내놓은 허파는/ 푸른 심줄도 선명히 거기/ 허공에서 팽창하고 있었다’ 라고 한다.
시인의 자유에 대한 표현은 재미있는 일면도 있어 ‘제주도에게’이렇게 얘기한다. ‘멀리 멀리/ 국가/ 없는/ 데로/ 국가/ 아닌/ 데로// 아주 멀리/ 멀리 멀리’그것도 ‘떠내려가렴/ 어디로든지 멀리’라고 한다. ‘제주도’가 사면이 바다인 섬임에도 붙박혀 움직일 수 없음이 시인에겐 안타까움이 되고 그것은 일상에 젖어있는 시인 자신의 애처로움과도 비견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제도권에 대해 까탈스런 시인은 그것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보이곤 한다. 1985년 가을에 풍년이 들었음을 모든 매스컴이 지나치게 읊어대고 나서 곧 바로 수해가 일어나는 것이 시의 전반에 나오고 이에 시인은 ‘풍년 소리’란 ‘밥이 되어 입 속에 들어간 뒤라야/ 할 수 있는 애기일세’ 라며 ‘이게 어디 쌀에서 끝나는 애기리요/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이 모두/ 입속에 들어간/ 밥커녕은/ <풍년>이라는 년의/ 됫박으로 칠한 분 같아서야!’ 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 시인은 단순한 시어들의 어휘를 결합하여 확대된 독자의 상상력을 제공하며, 이 공간 속은 현대인들의 자신의 꿈의 공간이자 시인이 얘기하는 것, 즉 모든 의미에서의 사랑의 공간이 된다.
그럼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그 속에서 무한한 사랑의 시간들을 영위하게 한다. 또한 그것이 상상만이 아닌 현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열정과 사랑의 의미를 되찾는다는 것인, 매혹의 시집이 될 듯 싶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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