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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에게 남겨진 삶이 3일밖에 없다면> 표지 ⓒ 생각하는 백성^^^ | ||
"그렇다. 사흘 중에 이틀은 여행하는 일로 보낸다. 산을 오르는 것도, 내 글을 읽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다. 아니 살아 있는 시간 동안의 모든 행위가 여행이다. 맞다. 여행이 모든 삶의 근간을 이룬다는 말은 온당하다. 내 글 속에 내가 있고, 내가 가고 싶었던 정신의 착륙지가 거기에 있다." (작가 임동헌)
너에게 주어진 시간이 72시간 밖에 없다면 너는 어떡할 것인가? 질문 자체가 황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면 무언가 짚이는 게 있다. 삶과 죽음.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도인도, 대통령도, 철학자도, 문필가도 누구나 한번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죽음의 시간이 불과 3일 뒤라면 당신은 어떡할 것인가? 정치평론가 정관용처럼 "다 그만두자. 그냥 떠나자. 무조건 떠나자. 가급적 아무도 없는 곳,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으로 가자. 술 한 병들고, 그 누구도 날 볼 수 없는 곳이라면 아무 데라도 가자"라며 어디론가로 훌쩍 떠날 것인가.
아니면 소설가 이재운처럼 "그냥 무더운 여름에 옷을 벗거나 추운 겨울에 옷을 덧입는 것처럼 몸도 벗기도 하고 입기도 한다"라며 그냥 그렇게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도 아니면 철학자 황필호처럼 "첫째 날은 육체를 청산하는 날이고, 둘째 날은 정신을 청산하는 날이며, 셋째 날은 영혼을 청산하는 날"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소설가 구효서, 임동헌, 현길언씨, 시인 정희성, 정우영, 신현림씨, 문화평론가 김지룡씨, 경희대교수 장우현씨, 철학자 황필호씨, 방송인 정관용씨, 영화칼럼니스트 이경기씨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18명의 사람들이 쓴 <나에게 남겨진 생이 3일밖에 없다면>(생각하는 백성)이란 책이 나왔다.
하지만 질문 자체가 워낙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지 이에 대한 필자들의 반응은 질문처럼 그렇게 심각하지만은 않다. 정관용이나 임동헌처럼 72시간 뒤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글들은 죽음을 강 건너 불구경하 듯이 추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친다.
소설가 구효서는 "오늘은 오늘 아닌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라는 글에서 작중인물인 소설가 안중익의 입을 통해 죽음을 이야기한다. 구효서는 아파트 옆에서 시금치밭을 일구다가 지나가는 아낙에게 "다 자라면 뽑아다 드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처럼, 죽음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소설가 이재운은 "살아가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죽음도 생노병사 순환현상 중의 하나로 이해해온 동양의 선인들에게는 그다지 복잡한 개념이 아니었던 듯하다"며 72시간 뒤에 다가온 자신의 죽음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시인 장석주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꽤나 많은 집과 만나고 헤어졌지요. 내가 거쳐온 그 하나하나의 집들은 그 자체로 삶의 흔적들이고, 개인의 역사겠지요. 대부분의 그 집들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집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노병사의 업과 저마다의 타고난 운명을 그 내면에 갖고 있겠지요" 라며 죽음을 시처럼 말한다.
문화평론가 김지룡은 자신의 딸아이와 몸이 부서지도록 놀아주겠다며, 죽음을 다소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중 죽음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치평론가 정관용이다. 정관용은 "사흘이 너무 짧다, 사흘은 너무 길다, 사흘, 딱 맞는다"라며 횡설수설한다. 질문에 가장 근접한 대답을 한 셈이다.
죽음은 늘 저만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오늘도 하루하루 나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다. 죽음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도 몹시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는 것 또한 더없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저만치 머물고 있는 죽음이 살아 꿈틀거리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화두이다.
<나에게 남겨진 생이 3일밖에 없다면>에는 구효서, 김지룡, 김영수, 박기현, 신현림, 이경기, 이기현, 이재운, 이평재, 임동헌, 원재훈, 장우현, 장석주, 정관용, 정우영, 정희성, 황필호, 현길언씨가 필자로 참여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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