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의사의 간절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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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의사의 간절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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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종기 첫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펴내

 
   
  ^^^▲ 마종기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표지
ⓒ 문이당^^^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몇 토막)


'부검대 위에 묵묵히 누운 그 환자 친구의 몸을 열고 폐를, 심장을, 간을, 신장을 잘라 내어 사인을 본다고 다시 세밀하게 자르고 한정 없이 몸 주위로 쏟아져 나오는 피를 물로 씻어 내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의사가 되려고 태연을 가장하던 그 수많은 날들.'

지난해, 미국에서의 오랜 의사생활을 훌훌 털어버리고, 서울과 플로리다를 오가며 시작활동에 매달리고 있는 마종기(64) 시인이 첫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문이당)을 펴냈다. 이 책은 시인이 지난 30년 동안 미국 교포사회의 신문과 잡지 등에 띄엄띄엄 발표했던 산문들을 모은 것이다.

미국에서 평생을 이방인 의사로 살아온 마종기.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의사생활을 하면서도 모국이 그리워 틈틈히 모국어로 시를 써 온 시인 마종기. 그는 왜 한국의 내노라하는 병원을 저만치 남겨두고 미국으로 건너갔을까. 그리고 의사직에서 물러나자, 이제는 그리운 모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것일까.

아버지(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쥐꼬리 만한 원고료에 의존할 수 없었던 마종기. 그래서 마종기는 담배 열갑 값인 5백원을 월급으로 주던 우리나라 병원을 마다하고, 담배 이천갑짜리 월급을 주는 미국의 병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미국은 마종기의 생각처럼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꿈의 나라 미국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 의사를 매몰차게 맞이한다. '겨울은 오는데 코트는 없고 자동차는 없고 영어는 안 통하고 담당 환자는 자꾸 죽고 미국놈들은 냉수같이 차고 맹맹하고 거기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도 여비가 없어 장례식에 참석 못하는' 그런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신비한 생명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소름 끼치게 느끼면서 이런 신선한 흥분을 날것 그대로 시로 쓰고 싶어서... 모국어도 없고 가까운 친구 하나도 없는 외국에서 일상의 외로움에 오금을 움츠리고 공포와 슬픔과 환희의 절정을 매일 오가면서 살았던 몇 해 동안의 내 의사 수련은 엉뚱하게도 내 문학의 확실한 물꼬였고 내 시의 본향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종기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이 시술한 80세 먹은 백인 할머니가 그만 죽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종기는 묘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신이 심전도를 잘못 읽고 시술한 탓에 고귀한 한 생명이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자책감.

하지만 그에게는 시가 있었다. 괴롭고 힘들 때마다 그는 모국어로 시를 썼다. 그에게 있어서 모국어로 된 시 쓰기야 말로 유일한 구원처이자 안식처였다. 그래. 그래서 마종기의 시편 곳곳에서 삶과 죽음의 내음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가 보다. 별도 마찬가지다. 아마 마종기가 바라본 그 별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그 어떤 구원의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의 개인사와 여러 가지 단상들이 담긴 '스와니강의 꿈',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할 당시 생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긴 '아들에게 주는 편지', 미국에서 이방인 의사로서의 삶을 다룬 '한 자유인의 작은 세상'이 그것들이다.

그의 시의 제목을 그대로 딴 표제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은 로키산맥 북쪽 샌드포인트라는 캐나다 접경 지역에서 시인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죽은 아버지와 동생이 나타나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대화를 나눴다는 그런 신비한 체험이 숨겨져 있다.

'내 키가 더 커진 것도 아닌데 별들이 이번에는 손에 잡힐 듯 더 가까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별을 향해 한 손을 올렸다... 그때 나를 보며 미소 짓던 그 많은 별들이 갑자기 흐리게 떨려 보이면서 나를 향해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하늘의 어디를 보아도 별들이 모두 눈물을 머금고 내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은 이방인 의사로서의 마종기, 그리고 모국을 애타게 그리워했던 시인 마종기의 60여 년의 삶이 소롯히 담겨 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책 속에는 의사로서의 힘겨웠던 삶과 모국에 대한 그리움만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종기의 개인사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 사회문제를 툭툭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인종주의 폭력의 심각성, 가까이서 경험한 9.11 테러에 관한 이야기, 기부문화가 자리잡히면서 세워진 톨레도 미술관의 역사, 해외 입양아 문제와 닫힌 혈통사회로서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 등은 이번 산문집에서 그가 실제 경험을 통해 일궈낸, 그리고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는 소중한 메시지이다.

"죽어 10년 이상, 오랜만에 세상의 공기를 대하는 죽은 이의 뼈와 갈색의 흙이 된 살을 만지면 멀리서 오는 비린내 같은 냄새가 난다. 부끄러움의 냄새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은 내 몸에서 나는 내 부끄러움의 냄새일까." ('부끄러움의 냄새' 몇 토막)

 

 
   
  ^^^▲ 문이당
ⓒ 시인 마종기^^^
 
 

시인 마종기는 누구인가?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생활

시인 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아동문학가 마해송이며, 어머니는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서양무용가로 활동한 박외선이다. 시인은 이러한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풍부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시인은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 데이턴시의 마이매미 밸리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마친 뒤,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조교수 겸 방사선 동위원소 실장으로 일했다. 그 뒤 오하이오 의대 소아과 임상 정교수, 오하이오 아동병원 초대 부원장 겸 방사선과 과장을 거쳐 톨레도 소아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인 1959년, <현대문학>에 시 '해부학교실'(解剖學敎室)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시인은 1968년에는 김영태, 황동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 1>을, 1972년에는 <평균율 2>를 펴냈다.

시인의 시세계는 주로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의사가 겪는 여러 가지 체험들을 아름답고 따뜻한 서정으로 수용하여, 맑은 지성과 세련된 언어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 살면서도 모국어에 의한 시작활동을 꾸준히 계속했다.

시집으로는 <조용한 개선> <두 번째 겨울> <변경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가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76년), 미주문학상(1989년), 제7회 편운문학상(1997년), 제9회 이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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